김여정이 북한 후계 1순위…최대 변수는 김정은의 건강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19 07:35
  • 호수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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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에 싸인 평양 주석궁 엿볼 수 있는 《김정은과 김여정》의 5가지 패러다임
김여정, 사망 직전 아버지 김정일에게 “정치하고 싶다”

북한 김정은 권력은 베일에 싸여 있다. 핵과 미사일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에서는 ‘먹는 문제’로 표현되는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결하지 못해 전전긍긍이다. 권력의 핵심 세력에 대한 재편과 체제 결집을 위한 선전·선동의 목소리도 여전하다. 집권 후 11년을 넘겼지만 ‘공사 중’ 간판이 서있는 모양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2023년은 매우 중대한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어느 한 해도 북한 문제로 어수선하지 않았던 때가 없었지만 올해는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가 격동에 휩싸일 것이란 전망이 유력하다. 지난해 41차례의 미사일 도발을 감행한 김정은은 한 해를 마감하는 12월31일 600mm 신형 대형방사포를 쏘아올린 데 이어 새해 첫날에도 미사일 도발을 벌였다. 2023년에도 그가 어떤 노선을 걷게 될 것인지를 예고한 초강력 시그널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국면 속에서 김정은 권력의 내부를 들여다보려는 시도는 중요하다. 이른바 ‘수령 유일지배’ 체제를 구축한 북한에서 김정은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씨 일가의 세습체제가 70년 이상 이어지는 상황이라 평양 로열패밀리로 불리는 그룹과 그 인물들의 행태와 상호관계를 추적하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중심에는 김정은과 여동생 김여정이 자리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생모 고용희(2004년 5월 사망) 사이에 태어난 두 사람은 10대 시절 스위스 베른 국제학교에서 함께 유학하며 돈독한 남매관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장남 김정철이 건강 문제 등으로 후계 지위에서 낙마하면서 김정은이 최고지도자로 등극했고, 김여정은 2인자로서 오빠의 최측근 보좌관이자 대외·대남 문제를 사실상 관장하는 실세로 자리했다.

마키노 요시히로의 책 《김정은과 김여정》(한기홍 옮김, 도서출판 글통)은 북한 권력 들여다보기를 위한 몇 가지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한반도 문제를 다뤄온 일본 아사히신문 기자인 저자가 한·미·일의 정부 당국자와 탈북 인사, 전문가 그룹 등과 접촉하면서 취재한 정보를 토대로 흥미로운 이슈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검증되지 않은 듯한 첩보 수준의 이야기가 제기되고, 북한 권력을 관음증적 시각으로 보는 일본 사회의 고질병적인 측면이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그간 우리가 간과했던 김정은 체제의 내밀한 모습이나 흘려보냈던 이야기들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짚어볼 대목도 적지 않다. 5가지 주요 장면들을 통해 북한 권력 내부를 재조명해 본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부인 리설주와 함께 2018년 11월4일 평양국제비행장을 통해 방북한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영접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 김정은 부부 뒤에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붉은색 원)의 모습이 보인다. ⓒ조선중앙통신 연합

1. 김여정, 아버지에게 “정치하고 싶다” ‘붉은 귀족’에 막대한 영향력

마키오 기자는 가장 먼저 ‘김여정이 누구인가’를 묻고 있다. 그러면서 김여정이 권력에 대한 남다른 욕망을 갖고 있음을 2008년 8월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의 긴박했던 상황에서 찾는다.

당시 김정일에 대한 접근과 간병이 허락된 건 여동생 김경희와 남편 장성택, 내연녀로 지목된 김옥, 그리고 김정은 삼남매뿐이었다고 한다. 여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 김정일은 권력승계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게 마키노 기자의 취재 내용이다.

김여정은 이때 김정일에게 “나도 정치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후계 지명 자리에 배석했던 김경희는 김여정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다는 것. 남존여비가 당연시되던 분위기에다 오빠인 김정일이 평소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속담을 즐겨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김여정에게 공식 석상에 나서지 말 것을 조언했고, 실제 김여정은 김정일 장례식에서야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마키노 기자의 말처럼 김정일 사후 김여정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지근거리에서 늘 보좌하면서 김정은 체제의 정책 노선과 통치 방향을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대남·대미 문제와 관련해서는 전면에 나서 담화 등을 통해 북한 입장을 밝히면서 오빠 김정은의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다.

한가지 주목할 건 김여정이 당과 군부의 고위 인사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다는 점이다. 마키노 기자는 이들 고위층 가운데 핵심인 3층 서기실과 당 조직지도부 세력을 ‘붉은 귀족’이라 칭하고 있다. 사실 그간 고위 탈북인사나 대북 정보 관계자들은 북 고위층 사이에서 ‘모든 길은 여정 동지로 통한다’는 말이 나돈다고 전언해 왔다. 오빠의 후광을 업고 승승장구하는 김여정이 그만큼 파워가 있고 조직이나 인사는 물론 자금까지 틀어쥐고 있어 여기에 줄을 대려는 당 간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검증해 봐야 할 부분도 있다. 김정일 와병이나 사망 당시 권력 내부의 내밀한 이야기, 특히 김정은을 비롯한 가족들이 나눈 대화의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는 건 북한 체제의 특성상 있을 수 없는 일이란 지적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다.

일부 탈북 지식인 그룹에 의해 제기된 ‘김정일 유서’와 관련한 사안도 국가정보원 등 대북 당국은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김정일이 후계 문제와 관련해 가족이나 핵심 그룹과 나눈 이야기들이 회자되고 심지어 유서 형태의 문건으로까지 나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단언했다. 김정일 후계 문제도 일찌감치 김정은으로 낙점된 정황이 대북 정보 당국의 첩보 등을 통해 속속 확인된 바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의 도움을 받아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 해외 방문 땐 배설물까지 수거…김정은 건강에 쏠리는 관심

김여정이 오빠로부터 총애받는 배경을 △고독한 남매로 태어나 자란 강한 애정 △김정은에게 신뢰할 수 있는 부하가 없기 때문 △김정은의 불안한 건강 상태 등으로 본 마키노의 분석은 합리적이다. 특히 할아버지 김일성 때부터 가족력으로 내려온 심장질환 등은 김정은에게 큰 부담일 수 있다.

북한은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김정은이 싱가포르와 하노이를 방문했을 당시 분뇨는 물론 숙소 쓰레기통까지 모두 수거해 가져갔다.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혈맹이라는 중국에까지 노출시키고 싶지 않은 김정은의 건강 상태에 관심이 쏠리는 건 당연하다. 북한 체제의 구조로 볼 때 김정은의 건강이 곧 평양 정권의 내구성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측면에서다.

마키노는 김정은의 건강 상태와 관련해 “김정은 가계는 대대로 심장질환에 시달려 왔다”고 기술하고 있다. 고혈압과 당뇨병, 통풍 등에도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김정은의 건강 상태를 가장 잘 알고 유사시 기밀을 유지하면서도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김여정도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동행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고 있다는 게 마키노의 분석이다.

물론 올해 39세란 점에서 김정은의 건강에 당장 큰 위험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엄청난 스트레스에 통제되지 않는 흡연·음주 등이 이뤄지고 있을 것이란 점에서 북한 권력 핵심에서는 대안 마련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북한이 김여정을 유사시 김정은의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김정은의 자녀는 1남2녀로 추정되지만 아직 10세 안팎의 어린 나이란 점에서 김여정이 4대 세습을 위한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평양 순안비행장에서 이뤄진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때 김정은이 딸 주애를 데리고 나온 건 상징적이고 관련 첩보 수집과 신중한 분석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이를 후계 문제와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로 보인다. 소위 ‘백두혈통’이란 점에서 김정은의 자녀를 북한 관영 선전매체들이 존귀하게 거명하고 떠받드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어린 딸을 후계자로 상정해 동행한다고 보는 건 섣부른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3. 김정은을 후계자 세우려던 생모 고용희, 김정남 입국 사실 일본 당국에 흘려

한때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되던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의 몰락 배경과 관련한 마키노의 주장은 흥미롭다. 그 중심에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의 음모가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김정남은 1960년대 말 김정일 위원장과 동거를 시작했던 배우 출신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맏아들이다. 장자계승 원칙에 따르면 후계 1순위다. 하지만 성혜림은 김정일로부터 버림받은 197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을 떠나 모스크바에서 요양생활을 했다.

김정남의 후계 지위에도 빨간불이 켜졌고 김정일과 28년간 동거하며 김정은을 비롯한 2남1녀를 낳은 고용희 세력은 점차 힘을 얻어갔다. 마키노는 “김정일 본처의 지위를 굳혀가며 사실상 권력투쟁에서 승리한 고용희가 김정남에게 마지막 철퇴를 가하는 일이 발생했다”며 일본 밀입국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인 정황을 소개했다.

2001년 5월1일 일본항공 싱가포르발 나리타 도착 편에 김정남이 탑승하고 있다는 첩보가 일본 공안조사청에 접수됐는데, 이를 제공한 게 한국 정보기관이었다는 것이다. 한국 측은 이를 싱가포르 정보기관으로부터 얻었는데, 당시 관계자가 “싱가포르에 정보를 흘린 것은 고용희의 뜻을 받든 자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는 게 마키노 기자의 전언이다.

마키노는 “김정남이 위조여권으로 일본에 몰래 입국하려 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고용희 세력은 싱가포르 정보기관에 이 정보를 흘렸다”며 “결국 이 정보는 일본 공안조사청을 거쳐 도쿄 입국관리국에 전달됐다”고 책에서 밝히고 있다. 리제강 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등 김정은을 후계자로 밀던 고용희 측근 세력의 작전이었다는 것이다.

일본 입국관리국 나리타 공항 지국은 김정남 등이 도미니카공화국 위조여권을 사용하고 있어 입국 난민법 위반으로 그를 연행했다. 이 사건으로 북한은 큰 망신을 당했고 김정일 위원장이 대노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마키노는 “이 사건은 고용희 등의 의도대로 김정남을 밀어내는 결정타가 됐고, 김정남은 후계구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고 말했다. 고용희는 유방암으로 치료받던 프랑스에서 객사했지만, 그의 아들을 권좌에 올려놓을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이런 마키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건 그가 일본 유력지의 기자로서 특히 김정남 밀입국 사건 당시 일본 공안 당국의 내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는 측면에서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첫 정상회담(2000년 6월 평양) 개최 등으로 한국 정부로서는 매우 민감할 수밖에 없던 이야기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큰 부담 없이 꺼낼 수 있는 정보였을 수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오랜 기간 함께하면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했던 고용희가 자신의 소생을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어떤 음모와 계책을 꾸몄는지도 들여다볼 수 있다. 평양 안방권력의 암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4. ‘남조선 스파이’로 처형된 류경, 서울에 하루 더 머물렀다 봉변

오랜 기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북한 보위부 실세 류경 처형 사건도 마키노 기자의 책에 등장한다. 보위부 제1부부장이던 류경은 2002년 9월 제1차 북·일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 관여하면서 일본 측으로부터 ‘Mr. X’로 불린 인물이었다. 그는 2009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성사시켜 공화국 영웅 칭호를 두 번이나 받았다는 것.

하지만 2010년 12월 서울을 극비 방문한 게 그의 운명을 돌이킬 수 없는 쪽으로 몰아갔다. 마키노는 “국정원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는 2009년 무렵부터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간 정상회담 개최를 모색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듬해 3월 발생한 북한 어뢰 공격에 의한 천안함 폭침 사건, 11월 북한군의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상황은 꼬였다. 이때 북한은 통 큰 해결을 주장했고, 국정원 김숙 차장 등이 평양을 먼저 극비리에 방문하고 그 답례 형식으로 류경 등이 서울에 왔다. 정상회담은 날짜도 대략 정해졌다.

마키노는 당시 상황과 관련해 “류경은 김정일에게 보고할 때 한국 측의 뜻을 제대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이명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강력하게 요구했다”며 국정원장 면담으로 충분하다는 한국 측과 맞서며 하루 더 서울에서 묵었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 중앙정보국(CIA)은 ‘류경이 남쪽 스파이 혐의로 숙청됐다’는 첩보를 입수했다. CIA와 국정원이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류경의 보고를 들은 김정일이 “왜 대통령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바로 짐을 싸서 돌아오지 않았는가. 왜 사흘이나 있었는가”라고 격노했고 조사 과정에서 집에 숨긴 수십만 달러의 현금까지 나와 가족과 함께 처형됐다.

1인 지배체제의 북한에서 ‘김정일과 단둘이 술잔치를 벌이는 사이’라고 떠들어 표적이 된 류경의 처신도 문제가 됐지만, 그의 숙청에는 장성택과 리제강의 권력암투가 자리하고 있었다.

ⓒAP 연합
2001년 5월4일 김정일의 장남 김정남이 일본 도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베이징행 비행기 탑승 준비를 하고 있다. ⓒAP 연합

5. 한국 망명 꿈꿨던 김정남

김정남은 일본에 자주 들렀고 재일 조총련에는 김정남 방일 때 도와줄 전담자가 배치돼 있을 정도였다는 게 마키노의 주장이다. 그는 “1990년대 일본을 자주 방문한 김정남이 다녔던 가게가 롯폰기 근처 아카사카 변두리에 있던 한국 클럽 ‘베라미’였다”며 “한국 정보기관은 몰래 베라미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불러 김정남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고 전했다.

마키노는 “김정은도 어머니 고용희와 함께 일본을 방문했던 적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첫 번째는 1991년 9월, 두 번째는 1992년이었는데 김정은 등은 브라질 위조여권으로 일본을 방문해 도쿄 오쿠라 호텔에 투숙했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 측은 7~8세였던 김정은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이 김정남을 후계자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북한 로열패밀리의 일원이 한국에서 공공연히 북한에 반기를 들면 북한 체제가 흔들릴 것으로 생각한 이명박 정부는 김정남에게 망명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정남은 “나에게는 아내도 자식도 있다. 마지막까지 중국에서 살겠다”며 한국의 권유를 거절했다. 결국 김정남은 2017년 2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북한 공작원에 의한 독극물 VX 테러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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