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도 거리로 나섰다…연금 개혁 몸살 앓는 프랑스
  • 이동진 프랑스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1.29 08:05
  • 호수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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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대통령 “지금 바꾸지 않으면 재정으로 적자 메워야” 의지 확고… 이번에도 실패 시 곧장 레임덕 올 수도

프랑스도 연금 개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해 4월 재선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정년을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연금제도 개혁을 재시도하자 프랑스 전체가 들끓고 있다. 1월19일(현지시간) 노동단체들과 시민 최소 100만 명 이상이 거리로 나와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2019년 연금 개혁을 처음 시도했으나 당시에도 반대 시위와 코로나19 여파로 한발 물러났던 마크롱 정부가 이번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강한 의지를 피력하는 가운데, 반대 목소리도 결코 쉽게 꺾이지 않을 분위기다. 과거 프랑스 정부도 노동제도 개혁 등 기존 정책 변화를 시도했다가 대규모 반대 여론에 의해 좌초된 뒤 곧장 레임덕에 빠진 전례가 있다. 자칫 이번 사태가 2기 마크롱 정부의 운명을 뒤흔들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REUTERS
1월19일 프랑스 파리에서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출동한 경찰 병력과 충돌했다. ⓒREUTERS

정년 2년 연장에 반발하는 112만 시민

프랑스 정부의 이번 연금제도 개편안은 2019년과 비슷하다. 1월10일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가 개편안에 대해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설명했다. 요약하면 우선 직군별 연금제도 시스템을 하나의 보편적 제도로 간소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몇몇 직군에만 적용돼 왔던 특별연금제도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공정하고 평준화된 연금 납입 비율과 은퇴 연령을 가지게 된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설명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직군별 연금제도 통합을 통해 최소연금 상한을 최저임금의 75%에서 85%로, 월 1200유로(약 160만원)까지 인상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는 부분은 정년을 62세에서 점차 늘려 2030년에는 64세부터 연금 수령이 가능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연금 전액을 받기 위한 근속 기간도 42년에서 43년으로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해 보인다. 그는 2023년 신년사에서도 “연금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재정으로 (연금) 적자를 메워야 한다”면서 “우리는 더 오래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계속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는 ‘공정’과 ‘균형’이다. 그는 공정이 결핍된 현재의 연금 시스템이 결국 균형을 깨트릴 것이기에 여기서 연금제도를 “구해 내야” 한다고 표현했다. 브뤼노 르메르 재정경제부 장관은 현행 제도를 유지할 경우 2030년 연금제도 적자는 135억 유로(약 18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울러 프랑스 정부는 이번 개혁을 통해 경제 도약 또한 꿈꾸고 있다. 42개로 구성된 복잡한 연금제도를 하나의 보편적 제도로 통합하면 직종 간 혹은 직장 간 노동 이동이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게 마크롱 정부의 설명이다. 노동 개혁을 통해 노동 유연성을 높여 프랑스의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정부 의지는 강해 보이지만, 여론은 동조하지 않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오독사(Odoxa)에 따르면 프랑스 국민 응답자 5명 중 4명이 정년을 62세로 현행대로 유지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국제여론조사기관인 IFOP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8%가 개혁안에 반대한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호소에도 불만은 더 끓어오르고 있다. 정부의 연금제도 개혁 계획 발표에 프랑스 최대 노조인 일반노동총연맹(CGT) 등 8개 주요 노동단체가 1월19일 총파업을 선언하고 전국적으로 시위를 펼쳤다. 노조원뿐만 아니라 내무부 추산 112만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전국 주요 각지에서 계획 철회를 요구했다. 주최 측은 파리에서만 80만 명, 전국적으로 200만 명이 시위에 참여했다고 추산했다. 현지 언론들은 툴루즈(3만6000명), 낭트(2만5000명), 리옹(2만3000명), 보르도(1만6000명), 몽펠리에(1만5000명) 등 파리 외 지방 각 도시에서도 대규모 인원이 모였다고 보도했다.

파리 시위대는 바스티유 광장을 거쳐 나시옹 광장까지 행진했다. 시위대는 피켓을 들고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내용의 요구를 노래로 부르기도 하면서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대의 주된 주장은 ‘이미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정년은 늘리겠다면서 임금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총파업과 시위로 시내 지하철·버스 등 대중교통이 멈춰섰고, 학교·병원·관공서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셧다운에 가까운 마비가 발생했다. 다행히 큰 충돌은 없었지만, 일부 급진 시위자로 인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체포가 이뤄지기도 했다. 일각에선 경찰이 과도하게 강경한 진압을 했다는 논란도 빚어졌다. 시위에 참여했던 20대 남성이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한쪽 고환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저조한 임금상승률 불만 맞물려 더 증폭

한동안 시위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 측은 1월31일에도 두 번째 총파업을 예고했다. 일각에선 시위가 점점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따라서 자크 시라크 정부 당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반대하며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던 2006년의 장면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당시 반대 시위로 인해 프랑스 사회가 마비되다시피 하자 결국 정부가 백기를 들었다.

프랑스에서 대규모 시위는 자주 벌어지지만, 이번 시위는 학교 선생님부터 소방관 등 공무원 사회까지 들고일어났으며 민간기업의 일반 직장인 또한 상당수 참여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프랑스 정치평론가들은 이번 시위가 물가상승률 대비 저조한 임금상승률에 대한 직장인들의 불만이 연금 개혁과 맞물리며 더욱 거세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장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은 10·20대 학생들의 시위 참여다. 이번 반대 시위엔 청소년부터 대학생까지 많은 젊은이가 거리로 나와 반감을 표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06년 시위의 가장 큰 주체도 학생이었던 만큼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처럼 대규모 거리 시위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정부는 적자가 불가피한 연금제도를 지키기 위해 연금 개혁은 피할 수 없는 조치라면서 변함없는 결의를 밝히고 있다. 올리비에 뒤솝트 노동부 장관은 1월23일 국무회의를 마친 후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은 “2030년까지 연금제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조치”라고 재차 강조했다.

엘리제궁은 당장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마뉴엘 세르베라 마르잘은 “(마크롱 대통령이) 그저 거센 여론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거대한 부담에도 마크롱 대통령이 연금 개혁 의지를 고수하는 건 지금은 비록 침묵하고 있지만 적지 않은 파업 반대 여론을 믿고 있기 때문이란 풀이도 있다. 마르잘 역시 총파업이 장기화돼 시민들의 생활이 불편해지면 연금 개혁 반대 여론도 파업 반대 여론에 부딪혀 힘을 잃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2019년 연금 개혁 반대 파업이 한창일 때 시민들 생활에 불편을 끼치는 파업에 대해 일부 부정적 여론이 조성됐던 것도 사실이다. 마르잘은 또 재택근무자 수가 늘어남에 따라 파업이 프랑스 사회에 미치는 영향 또한 줄어드는 추세라고 덧붙였다.

과연 상황은 마크롱 정부의 바람대로 흘러갈까. 일단 공을 넘겨받은 하원은 2월6일 심사에 들어간다. 하원에서도 야권을 중심으로 강도 높은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뜨거운 논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특히 하원에서 과반수를 얻지 못한 마크롱 정부로서는 더욱 험난한 여정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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