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빗썸 상장부터 시세조종까지, “빗핵관” 소행이었다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1.31 07:35
  • 호수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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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썸 상장피 대납하고 MM 유도한 기업가, 빗썸 관계사 임원으로 확인돼
빗썸은 관계 부인, 당사자는 침묵…모두 탈세 혐의 있을 때 실시되는 특별세무조사 받아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관계사 임원이 코인의 빗썸 상장과 시세조종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증권시장으로 치면 한국거래소 외부 관계자가 기업공개(IPO)와 주가조작에 개입한 셈이다. “심판이 승부를 조작한 격”이란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빗썸은 의혹을 부인했고 당사자는 대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장·시세조종에 관련된 법인들이 세무조사를 받으면서 당국 역시 예의주시하는 상황이다.

사건의 중심에 선 ‘빗썸 관계사 임원’은 블록체인 스타트업 헥슬란트의 노진우 대표(38)다. 헥슬란트는 빗썸에 기술을 지원하는 동시에 암호화폐 상장 프로젝트에 관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다. 2018년 설립한 지 4년도 안 돼 NH농협, 신세계, 롯데, SK 등 대기업과 손을 잡아 업계에서 전도 유망한 스타트업으로 꼽힌다. 중소벤처기업부로부터 ‘아기유니콘(기업 가치 1000억원 미만)’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노진우 대표와 빗썸의 인연은 헥슬란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의 이름은 빗썸의 사내 벤처로 출발한 암호화폐 커스터디(자산 보관·관리) 업체 볼트러스트의 등기부등본에도 나온다. 볼트러스트에는 빗썸의 고위 경영진이 다수 모여 있다. 지분 구조가 일부 다른 점을 빼면 사실상 인적분할된 회사다. 실제 2019년 빗썸은 글로벌 진출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볼트러스트를 포함한 14개 기업을 ‘빗썸 패밀리’로 지칭했다. 볼트러스트 등기이사 중에는 이상준 빗썸홀딩스 대표, 허백영 빗썸코리아 대표를 포함해 빗썸코리아 부사장·CTO·상무·감사 등이 포진해 있다. 이들과 함께 이름을 올린 등기이사 중 한 명이 노진우 헥슬란트 대표다. 헥슬란트는 볼트러스트의 투자사이기도 하다.

노진우 헥슬란트 대표 ⓒ헥슬란트 홈페이지

블록체인 스타트업 신성 노진우, 빗썸 중역과 이사진 구성

빗썸은 줄곧 브로커를 통한 암호화폐 상장에 대해 엄단하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그런데 노진우 대표는 상장에 직접 손을 댔다. 그는 배우 배용준이 투자한 암호화폐 발행 업체 퀸비컴퍼니와 2020년 1월11일 ‘빗썸 상장을 위한 금전적·전략적 지원’ 계약을 맺었다. 시사저널은 해당 계약서를 입수했다. 여기에 따르면 노 대표는 헥슬란트가 아닌 개인 명의로 계약에 참여했다. 그는 본인의 계약상 의무로 “상장비(상장피) 75만USDT 납부”를 기재했다. USDT는 미국 달러와 동일 가치를 지닌 가격 고정 코인으로 75만USDT는 75만 달러(약 9억원)와 맞먹는다. “상장피는 없다”는 게 빗썸의 공식 입장인데, 노 대표는 오히려 상장피를 내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2020년 1월11일 퀸비컴퍼니와 노진우 대표가 맺은 '빗썸 상장을 위한 금전적·전략적 지원 계약서' 일부. 상장피 75만USDT의 납부 주체가 '노진우'라고 적혀 있다. 동시에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전략 수립 및 계약 진행"을 의무사항으로 적시했다. ⓒ 제보자 제공
2020년 1월11일 퀸비컴퍼니와 노진우 대표가 맺은 '빗썸 상장을 위한 금전적·전략적 지원 계약서' 일부. 상장피 75만USDT의 납부 주체가 '노진우'라고 적혀 있다. 동시에 "유동성 공급을 위한 전략 수립 및 계약 진행"을 의무사항으로 적시했다. ⓒ제보자 제공

노 대표는 동시에 “유동성 공급을 위한 계약 진행”을 의무사항으로 못 박았다. 이에 퀸비컴퍼니는 2020년 1월22일 ‘렛츠컴바인’이란 회사와 MM(Market Making·시장조성) 위탁계약을 맺었다. MM은 증권시장에서 합법적인 시장 안정화 전략이다. 주가가 심하게 널뛰거나 거래가 부진할 때 유동성을 공급해 투자자들을 보호한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에서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MM 과정에서 화폐 가격을 의도적으로 띄우는 시세조종 행위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MM을 맡은 렛츠컴바인과 노 대표는 한 몸으로 추정된다. 그 근거는 퀸비컴퍼니-렛츠컴바인 계약서에 자세히 나와 있다. 해당 계약서에는 “상장에 사용한 75만USDT를 렛츠컴바인이 지불했다”고 적혀 있는데, 앞서 노 대표 역시 상장피 75만USDT를 본인이 냈다고 밝혔다. 납부에 쓰인 암호화폐 지갑 주소도 같다. 렛츠컴바인과 노 대표가 지갑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또 계약서에는 “상장 준비를 위한 코인 발행·배분, 오딧(회계) 등의 비용은 헥슬란트의 별도 계약에 따른다”고 나와 있다. 노 대표와의 비용 분담을 명시한 것이다.

 

‘아로와나 사태’ 관여 의혹도…"심판이 승부 조작한 격"

결정적으로 렛츠컴바인이 MM을 할 때 사용한 빗썸 계정이 노 대표의 가족 것이었다. 시사저널은 퀸비컴퍼니 측과 노 대표, 렛츠컴바인 대표 등이 2020년 10월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입수했다. 당시 빗썸은 자금세탁 방지시스템(AML)을 강화해 MM에 쓰인 걸로 추정되는 계정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렛츠컴바인 대표는 이와 관련해 막힌 계정 9개의 소유주를 카카오톡에 공유했다. 그중 한 명이 노 대표의 동생 노아무개씨로 확인됐다. 노 대표가 MM을 유도했을 뿐만 아니라 직접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정황이다. 렛츠컴바인 대표 김아무개씨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실무진이 시킨 대로 일했을 뿐 아는 게 없다”며 “노 대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2020년 10월5일 퀸비컴퍼니 측과 노진우 대표, 렛츠컴바인 대표 등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부. 김아무개 렛츠컴바인 대표가 MM에 이용하는 자사의 계정 중 빗썸의 자금세탁 방지시스템(AML) 강화 조치로 이상금융거래탐지(FDS)된 계정의 목록을 공유했다. 이 가운데 노 대표의 동생 노아무개씨가 발견됐다. ⓒ 제보자 제공
2020년 10월6일 퀸비컴퍼니 측과 노진우 대표, 렛츠컴바인 대표 등이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일부. 김아무개 렛츠컴바인 대표가 MM에 이용하는 자사의 계정 중 빗썸의 자금세탁 방지시스템(AML) 강화 조치로 이상금융거래탐지(FDS)된 계정의 목록을 공유했다. 이 가운데 노 대표의 동생 노아무개씨가 발견됐다. ⓒ제보자 제공

퀸비컴퍼니는 노 대표와 계약을 맺은 직후인 2020년 2월 빗썸에 퀸비코인을 상장시켰다. 그러나 “사업 성과가 확인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2021년 7월 상장폐지됐다. 퀸비컴퍼니 관계자는 “당시 노 대표가 ‘상장 화폐를 내가 거래 정지시킬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하기도 했다”며 “노 대표는 빗썸의 내부 핵심 관계자”라고 주장했다. 앞서 2021년 4월에는 한글과컴퓨터(한컴)의 암호화폐 아로와나 코인이 빗썸에 상장하자마자 1000배 폭등한 일이 있었다. 그로 인해 비자금 조성 의혹이 일었는데, 이 아로와나 코인의 지갑을 관리한 곳도 헥슬란트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1월10일 빗썸과 헥슬란트에 대해 특별세무조사를 했다. 특별세무조사는 주로 탈세나 비자금 조성 혐의가 있을 때 실시한다.

빗썸 홍보팀 관계자는 세무조사와 관련해 “진행 내용과 배경에 대해 알 수 없다”고 했다. 노 대표와는 거리를 뒀다. 빗썸 관계자는 “노 대표는 볼트러스트 설립 당시 기술적 자문을 해서 ‘기타비상무이사’로 참여했을 뿐 내부 관계자가 아니다”며 “볼트러스트가 2021년 4월 해산하면서 (노 대표는) 사임했다”고 말했다. 시사저널은 노 대표에게 수차례 연락했지만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메일을 통해 질의사항을 전달했으나 수신 후 반응이 없었다. 헥슬란트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는 MM을 제공하지 않는다”며 “MM 제공을 사칭하는 불법 브로커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암호화폐 업계에 밝은 익명의 발행업체 대표는 “심판이 선수 뽑고 승부조작까지 한 격”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노 대표를 비롯한 소수의 플레이어들이 친분과 이력을 내세워 암호화폐를 주무르고 있다”며 “거기에 멋모르고 투자한 다수의 사람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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