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아닌 정치”라는 李, 본인도 조사 아닌 정치?
  • 공성윤 기자 (niceball@sisajournal.com)
  • 승인 2023.01.30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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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의도 엿보이는 이재명 대표 검찰진술서…조사 도중 전문 공개하고 검찰∙여당 비판해
檢 2차 출석 요구에 “부당하지만 오라니 또 가겠다”…”세력 집결과 검찰 압박 노린 것”

1352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8일 공개한 ‘검찰진술서 서문’의 글자 수다. 전체 검찰진술서 글자 수인 1만1065자의 12.2%를 차지하고 있다. 진술서 원본의 쪽수와 비교하면 총 33쪽 중 5쪽이 서문이다. 해당 서문은 검찰 비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통해 이 대표는 “검찰은 정치 아닌 수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를 마친 뒤에도 “수사가 아닌 정치를 하는 느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진술서의 전반적 내용과 검찰조사 전후 행보를 보면, 이 대표 역시 정치적 의도를 깔아 놓았다는 시각이 짙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입장을 밝힌 뒤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출석해 입장을 밝힌 뒤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진술서가 올라온 시각부터 절묘하다. 이 대표는 1월28일 오전 10시22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출석을 앞두고 포토라인에서 “진술서를 곧 여러분께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검찰의 주장이 얼마나 허황된지, 객관적 진실이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곧이어 이 대표가 검찰 현관문을 통과할 때쯤인 오전 10시27분, 진술서 서문이 우선 이 대표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비슷한 시각 박성준 민주당 대변인은 진술서 내용 일부를 기자들에게 공유했다. 이후 당일 오후 1시20분경 점심식사가 끝나고 조사가 재개되자 진술서 전문 33쪽이 페이스북에 공개됐다. 간인(間印)이 찍혀진 것으로 미뤄보아 검찰의 확인절차를 거친 원본으로 추정된다.

검찰조사와 동시에 진술서 공개…선제공격?

피의자 신분의 정치인이 검찰진술서를 공개하는 건 이례적이다. 앞서 이 대표는 1월17일에도 페이스북에 성남FC 후원금 의혹 관련 검찰진술서를 올린 바 있다. 다만 이는 1월10일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서 해당 의혹으로 조사받은 지 일주일 뒤에 공개한 것이다. 이와 비교했을 때 이 대표가 이번에는 ‘선제공격’을 한 게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된다. 검찰조사 직후 검찰 입장으로만 기사가 나가는 걸 막고, 본인의 입장을 언론이 적극 인용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당일 저녁 방송뉴스와 다음날 조간신문 마감 시간을 고려한 것으로도 풀이된다.

진술서 내용 중에도 정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이 대표는 대장동 개발사업 추진 경위를 설명하면서 “국민의힘(당시 한나라당) 신영수 국회의원은 2009년 국정감사에서 LH에 대장동 개발사업 포기를 종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대장동 투기 세력은) 신영수 의원의 동생에게도 수억 원의 뇌물을 제공해 LH 공영개발 포기를 위한 로비를 하다 적발돼 처벌받았다”고 했다. LH가 공공개발하려던 토지를 여당과 대장동 일당이 결탁해 빼앗았다는 취지다. 이는 이 대표가 2021년 대선 경선 때부터 해온 주장이다. “대장동 사업은 국민의힘 게이트”란 기존 주장을 되풀이한 셈이다.

이재명 대표가 검찰조사 도중인 1월28일 오후 1시20분 페이스북에 올린 검찰진술서 전문 ⓒ 이재명 대표 페이스북
이재명 대표가 검찰조사 도중인 1월28일 오후 1시20분 페이스북에 올린 검찰진술서 전문 ⓒ 이재명 대표 페이스북

 

배임 의혹에 반론을 펼칠 때도 여당 인사를 끌어들였다. 이 대표는 “저는 투기세력의 이익을 위해 시에 손실을 입힌 게 아니라 오히려 민간사업자에게 1120억원을 추가 부담시켜 그들에게 손실을 입히고 시와 공사의 이익을 더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개발이익이 100% 민간에 귀속되도록 특정 개인에게 민간개발을 허가해도 적법하다”며 “검찰은 부산시장, 양평군수, 제주지사가 부산 엘씨티, 양평 공흥지구, 제주도 오등봉지구에 민간개발을 허가해 개발이익을 100% 민간업자들이 취득한 것을 배임죄라 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거론한 지자체장들은 각각 허남식 신라대 총장, 김선교 의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등이다. 모두 국민의힘 또는 한나라당 소속이었다.

검찰 비판도 빠뜨리지 않았다. 이 대표는 본인에게 불리한 의혹의 진원지를 소위 ‘검찰발 기사’로 지목했다. 이 대표는 ‘터널공사를 뒤늦게 확정해 수용을 저렴하게 한 게 배임’이란 의혹의 출처를 “검찰이 소스를 제공한 게 거의 확실한 일부 언론의 보도”라고 주장했다. 또 ‘1공단 공원화 사업 분리가 배임’이란 의혹에 대해서도 “검찰이 소스를 제공하고 모 언론이 쓴 단독성 기사의 주장”으로 간주했다.

여기서 터널공사란 대장동과 판교를 잇는 서판교터널 개설을 가리킨다. 검찰은 “성남시가 대장동 수용가액 산정이 마무리될 무렵인 2016년 11월 서판교터널 개설 계획을 공개함으로써 민간업자들이 토지 취득 비용을 절감했다”고 보고 있다. 반면 이 대표는 “터널공사는 2000년대부터 성남시 계획에 들어있던 것으로 공개된 사업”이라며 “원래 성남시 예산으로 개설해야 하지만 2016년 대장동 실시계획 인가 시 개발사업자에게 부담시켰다”고 주장했다.

여당 지자체장 들어가고 김용∙정진상 빠져

1공단 공원화 사업의 경우 이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공약이었다. 당초 이 대표는 1공단 공원화와 대장동 개발을 한묶음으로 추진하려 했다. 그런데 공원화를 추진했던 사업자가 법적 문제를 제기하며 진행이 늦어졌다. 이에 대장동 일당은 빠른 개발을 위해 사업 분리를 요구했다. 검찰은 성남시가 이를 받아들임으로써 특혜를 줬다고 판단했다. 이 대표는 “소송 때문에 분리는 불가피했다”며 “일부러 공사를 지연시킨 것도 아닌데 공사 지연 기간의 금융비용 상당의 이익을 주고 시에 손해를 입혔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 외에 이 대표는 “검찰은 제가 투기세력과 결탁하거나 그들로부터 재산상 이익을 받기로 약속한 것처럼 몰아가고 있다” “천화동인1호의 재무상태나 추가이익환수는 검찰도 다 아는 것인데 이런 객관적인 증거를 무시한다” 등의 주장을 펼쳤다. 검찰에 내는 진술서인데 검찰을 객관화하며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결정적으로 진술서에는 핵심이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 측근인 정진상 전 민주당대표실 정무조정실장과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에 관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뇌물수수 등 혐의로 구속기소된 두 사람은 대장동 의혹과 이 대표와의 연관성을 입증할 연결고리로 지목돼 왔다. 서울중앙지검에서 정진상 전 실장을 담당한 반부패수사1부와 김용 전 원장을 맡은 반부패수사3부는 이번에 모두 이 대표 조사에 들어왔다. 검찰이 이들과 관련된 질문을 준비했다는 걸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은 만들어온 질문지는 150여쪽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월28일 오전 대장동 사건으로 소환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서울중앙지검 출석이 예정된 가운데 이재명 대표 지지 집회와 반대집회가 길을 사이에 두고 열리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1월28일 오전 대장동 사건으로 소환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서울중앙지검 출석이 예정된 가운데 이재명 대표 지지 집회와 반대집회가 길을 사이에 두고 열리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검찰독주 부각 의도”…’방어논리 준비 전략’ 시각도

검찰은 곧바로 2차 출석을 요구했다. 이 대표는 1월30일 “모욕적이고 부당하지만 패자로서 오라고 하니 또 가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가 또 출석하더라도 검찰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이 대표는 왜 굳이 검찰의 소환 요청을 피하지 않는 걸까. 여기에도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단 분석이 있다.

검찰 특수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대표가 아무리 민주당 의원과 지지자에게 오지 말라고 해도 모일 걸 안다”며 “세력 집결과 검찰 압박을 노린 것”이라고 봤다. 이어 “강추위에 제1야당 대표를 오라가라하는 검찰의 독주를 부각시켜 권력자의 이미지를 굳히려는 것”이라고 했다. 그 외에 검찰이 갖고 있는 의문점과 증거를 파악하려는 전략이란 시각도 있다. 어찌 됐든 기소가 유력한 이상 법정에서 펼칠 방어논리를 미리 준비해 두겠다는 속셈이다. 검찰은 일단 이 대표가 2차 출석에 응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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