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 이 여행] 맛과 멋을 빚는 고장, 강진
  • 글 강은주·사진 신규철 (unddu@seoulmedia.co.kr)
  • 승인 2023.02.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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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대구면 고려청자 요지 일원에서 강진청자축제가 열린다. 축제를 따라 손맛 좋은 강진의 먹거리, 즐길 거리도 찾아 나선다. ⓒKTX매거진 신규철

때 이른 봄바람과 담청색 바다가 일렁이는 2월, 강진청자축제가 다정한 초대장을 보내왔다. 고운 청자와 맑은 술과 잘생긴 메주를 빚어 낸 땅, 전남 강진으로 떠나야 할 이유다.

눈 녹는 소리였다. 들을 순 없지만 온 감각을 울리는 대지의 노래. 따뜻하고 흐린 겨울날, 우리는 남녘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월출산 자락에 는개를 흩뿌리던 구름은 어느새 농토를 적시기 시작했다. 보리 싹이 까까머리처럼 돋아나던 참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밤사이 부쩍 자라/ 들 언덕엔 초록빛이 무색해졌네”라고 읊으며 바라보았을 보리다. 강진만은 너른 보리밭 너머 아물거렸다. 누군가는 저 담청색 바다를 두고 청자의 비색을 닮았다 했다. 어쩌면 바다를 연모한 도공이 그 빛을 옮겨 빚은 건 아니었을까, 하고 잠시 상상한다. 때 아닌 봄기운이다.

 

기다리고 있을 테요, 가우도의 봄을

어떤 해일이나 풍랑도 가우도에 한 번, 죽도에 또 한 번 부딪고 나면 한없이 온순해진다. 편안할 강(康), 나루터 진(津). 강진이 ‘편안한 나루터’라는 뜻을 품게 된 건 분명 우연이 아니었을 것이다. 가우도 청자타워 전망대에 서서 죽도와 구강포, 만덕산과 월출산을 굽어보았다. 이 너그럽고 순전한 능선을 날마다 마주하는 삶이란, 얼마나 행운인가. 이곳엔 그처럼 꿈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존재한다. 강진의 여덟 개 섬 중 유일한 유인도인 가우도에는 현재 열네 가구, 30여 명의 주민이 거주 중이다.

모노레일을 타고 가우도 청자타워 전망대에 오르면 강진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 호젓한 나무 덱 길을 따라 섬을 일주하면서 비색 물결을 감상해도 좋겠다. ⓒKTX매거진 신규철

이들에게는 생활 터전일 테지만, 가우도는 2015년 ‘가고 싶은 섬 가꾸기 사업’ 대상 1호로 꼽힌 이래 강진의 첫 번째 여행지로 자리매김해 왔다. 섬은 하루가 다르게 달라졌다. 앞서 2013년 저두면과 가우도, 가우도에서 도암면을 잇는 연륙교를 놓고 가우도 출렁다리라 이름 붙인 데 이어 섬을 일주하는 함께해(海)길 산책로 덱을 조성했다. 이 고장에서 나고 자란 시인 김영랑의 동상과 대표작 네 편도 나란히 두었다. 야트막한 동산엔 5000여 장의 청자 타일을 붙인 청자타워 전망대를 지어 올렸고, 전망대 6층에서부터 저두 해안까지 약 1킬로미터 거리를 내리닫는 집트랙을 설치하기도 했다. 2021년 가을에는 드디어 모노레일이 등장한다. 산 정상까지 연장 264미터의 선로를 오르는 코스다. 동시에, 이름이 무색하게 튼튼하던 두 연륙교와 달리 판자를 이어 붙여 걸을 때 진폭을 키운 진짜배기 출렁다리가 개통한다. 그 바람에 기존 가우도 출렁다리는 청자다리와 다산다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강진청자축제가 열리는 2월이 오면 모처럼 모든 다리가 북적북적할 것이다.

한 무리의 여행객을 실은 가우도 모노레일이 다시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가뿐하게 언덕을 넘는다. 금목서와 은목서, 황칠나무를 헤치며 나아가던 객차는 청자타워 전망대 앞에 사람들을 내려놓곤 유유히 길을 돌아선다. 가우도는 지금, 이토록 바지런하게 봄을 준비하고 있다.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은 청자의 역사, 문화, 유통 과정을 미디어 아트로 망라해 전시한다. 황홀한 색감과 영상이 내내 눈을 즐겁게 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강진은 청자의 고향이다. 꿈꾸는 듯 오묘한 빛깔, 구름처럼 미려한 무늬를 입은 청자가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 사당리, 계율리, 수동리와 칠량면 삼흥리 등지의 도요지에서 쏟아져 나왔다. 고려 초기부터 후기의 도요지가 고르게 분포한 강진은 고려청자의 흥망성쇠를 한눈에 훑을 수 있는 고장이며, 국보와 보물급 청자 중 절반 이상을 배출한 땅이다. 단단한 흙, 가마터를 만들기 좋은 천혜의 지형, 유통에 유리한 해상 교통로를 확보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도공의 예술적 감수성을 벼리는 눈부신 풍광 또한 한몫했을 테다.

 

불과 빛과 흙으로 빚다, 고려청자

대구면 고려청자 요지 일원은 2월 23일부터 3월 1일까지 열리는 강진청자축제의 장이다. 청자를 시험 생산하고 품질을 관리했던 사당리 23호 요지, 고려 도공의 후예를 만나는 청자 제작 과정 관람실, 청자의 역사와 유통 과정을 미디어 아트로 담아낸 고려청자디지털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았다면 이제 유물과 전시를 망라한 주 무대, 고려청자박물관을 찬찬히 감상할 때다.

“선명하게 푸른 옥빛이 나니/ 몇 번이나 짙은 연기 속에 묻혔나/ 영롱하기는 수정처럼 맑고/ 단단하기는 돌과 맞먹네”. 고려청자의 미감과 소성 과정을 우아한 언어로 정리한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는 박물관이 방문객에게 건네는 첫 인사다. 기획전 <탐진에서 개경까지-고려청자 보물선>은 2007년 충남 태안반도 인근 해저에서 청자 운반선이 발견된 사건으로 관람의 물꼬를 튼다. 이때 출토된 2만 3000여 점의 청자는 미처 손을 타지 않은 물건이라 표면이 말갛고 형태 또한 온전했다고 한다. “탐진(강진의 옛 이름)에서 서울의 대정 인수에게 사기 80개를 보낸다”라고 쓴 목간, 청자와 함께 수장된 선원의 어깨뼈 등 발굴의 면면이 놀라움을 안긴다.

고려청자 도요지에 자리한 고려청자박물관은 유물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후원에 자리한 청자 제작 과정 관람실은 성형실, 상형실, 조각실로 이뤄진다. ⓒKTX매거진 신규철
고려청자 도요지에 자리한 고려청자박물관은 유물 약 3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후원에 자리한 청자 제작 과정 관람실은 성형실, 상형실, 조각실로 이뤄진다. ⓒKTX매거진 신규철

가느다란 출수구와 흰 상감 무늬가 섬세한 청자상감모란문정병, 매화와 갈대와 학과 나비를 조화롭게 배치한 청자상감매로학접문사이호 등 전시실을 빛내는 고아한 유물 사이에서 문득 길을 잃었다. 조은정 학예연구사에게 안내를 청했더니, 그는 강진 지역민이 기증한 청자를 눈여겨보라 권한다. “이 매병은 용이 여의주를 중심으로 굽이치는 모습을 담고 있어요. 아름답죠? 작천면에서 경지를 정리하다가 발굴한 조각을 모아 복원한 거예요.”

수백 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매병의 기묘한 운명, 세월이 흘러도 형형한 비색, 청자를 빚고 향유했을 옛 강진 사람들과 시대의 풍정···. 모든 것이 그저 찬란해서, 잠시 말을 잊고 말았다.

전라병영성과 한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이 나타난다. 하멜의 생애를 보여 주는 것은 물론, 병영면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로 전시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전라병영성과 한골목길을 걷다 보면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이 나타난다. 하멜의 생애를 보여 주는 것은 물론, 병영면의 역사를 다양한 자료로 전시한다. ⓒKTX매거진 신규철

우리의 걸음은 이제 대구면에서 병영면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간다. 그 시절 병영은 하나의 도시였다. 1417년 광산현(지금의 광주)에 있던 전라병영성은 도강현의 치소였던 수인산 아랫마을로 자리를 옮겼다. 그로써 주변 50여 개 마을을 관장하는 거대한 군사도시가 이루어졌다.

 

전라병영성에서 병영양조장까지

설성은 전라병영성의 다른 이름이다. 조선의 초대 병마절도사 마천목 장군이 꿈속에서 계시를 받고, 눈 쌓인 자리를 따라 성곽을 지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비교적 보존 상태가 양호한 이 성곽은 1060미터 둘레에 3.5미터 높이, 총면적 9만 3139제곱미터(약 3만 평) 규모를 갖췄다. 과거 성안에는 관아와 객사, 군기고와 하마비, 9개의 우물과 5개의 연못 등이 자리했다고 전한다. 병영면과 작천면 사이에는 한들이라 불리던 너른 땅이 펼쳐졌고, 그곳에서 마을과 병영을 모두 먹여 살릴 식량을 재배했다. 주변엔 자연히 군납품을 사고파는 상권이 형성되면서 상인도 모여들었다. ‘북쪽엔 개성상인, 남쪽엔 병영상인’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였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으로 함락되기 전까지 전라병영성은 영원할 것처럼 견고하고 융성했다.

성벽 바깥에는 조금 낯선 모양을 가진 담벼락이 늘어선다. 빗살 무늬 담장을 따라 좁은 고샅이 미로처럼 이어지는데, 이 길을 예부터 한골목길이라 불렀다. 병영면의 다섯 마을을 하나로 꿰는 한골목길의 담을 쌓은 이가 바로 <하멜 표류기>를 쓴 헨드릭 하멜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스페르베르호를 타고 일본으로 가던 하멜 일행은 태풍에 휩쓸리면서 조선 땅에 표류해 13년 28일을 머문다. 체류 기간 중 절반이 넘는 7년을 강진에서 지냈으니, 이 땅과의 인연이 꽤 깊다 하겠다. 틈틈이 탈출을 꾀하면서 생계를 유지해야 했던 하멜은 사슴 가죽을 팔거나 담을 쌓는 노역으로 돈을 모았다. 담을 축조할 때 맨 아래 세 단은 큰 돌을 괴어 균형을 맞춘 뒤 위쪽으로는 작은 돌을 비스듬한 형태로 놓고 흙을 켜켜이 발랐다. 만듦새도 좋고 내구성도 높았다.

병영양조장은 오랜 시간 강진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었다. 올해 여든 여섯이 된 김견식 명인은 오늘도 술 빚기를 멈추지 않는다. ⓒKTX매거진 신규철
병영양조장은 오랜 시간 강진을 넘어 한국을 대표하는 술을 만들었다. 올해 여든 여섯이 된 김견식 명인은 오늘도 술 빚기를 멈추지 않는다. ⓒKTX매거진 신규철

하멜과의 인연으로 강진군은 그의 고향인 네덜란드 호린험시와 자매결연을 하고 지금까지 교분을 나누는 중이다. 지난해 가을 새롭게 단장한 전라병영성 하멜기념관에 가면 그 증거와 맞닥뜨린다. 하멜이 입었을 법한 네덜란드 복식과 배 안에서 썼을 생활용품 등을 호린험시가 하멜기념관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강진군은 이 남다른 우정을 더욱 단단히 이어 나갈 모양이다. 하멜의 이름을 내건 ‘하멜 맥주’를 개발하기 위해 네덜란드식 수제 맥주 생산 설비를 구축했으니 말이다. 보리와 쌀귀리 등 강진 특산물을 활용해 맛을 낸다기에 기대감이 한층 높아진다.

기실 강진의 술을 논하려거든, 병영양조장은 맨 앞에 두어야 마땅한 이름이다. 1946년부터 영업을 시작한 이곳엔 60여 년 세월 동안 술을 빚어 온 김견식 명인이 있다. 올해 86세를 맞은 명인은 여전히 양조장 일을 살뜰히 돌본다. “곡식으로 술 빚지 말라던 시절, 연탄으로 불을 때면서 밤낮없이 일하고 혼자서 일일이 배달을 다니며 지금껏 버텼지요. 허드렛일로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사람들이 부러울 만큼 고된 일이었어요.” 그 세월을 누군들 헤아릴까.

모진 풍파를 견딘 병영양조장은 병영소주라는 다디단 열매를 맺는다. 강진의 찰보리쌀과 누룩으로 만든 밑술을 3주간 숙성․증류해 만든 병영소주는 2022년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 증류주 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만큼 맛과 향이 탁월하다. 쌀을 사용하는 여느 소주와 달리 보리의 온화한 향과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인상적이니, 일단 한번 맛보고 나면 잊기 어려운 풍미다. 그뿐인가. 햅쌀과 누룩으로 빚은 술을 발효․증류한 뒤 복분자와 오디를 침출해 독특한 향과 빛깔을 내는 병영설성사또주도 빼놓을 수 없는 명주다. 병영면 별미 돼지불고기백반의 단짝, 병영설성생막걸리 또한 이곳에서 생산한다.

그러니까, 그토록 많은 술을 그토록 오랜 시간 빚어 왔다.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라, 살아 보려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누룩을 집어 드는 명인의 손등이 그 지난한 역사를 말해 주었다.

군동면 신기마을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은 기름진 옥토에서 자란 쌀과 콩으로 맛 좋은 장을 담근다. 백정자 명인의 즙장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KTX매거진 신규철
군동면 신기마을의 강진전통된장영농조합법인은 기름진 옥토에서 자란 쌀과 콩으로 맛 좋은 장을 담근다. 백정자 명인의 즙장은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다. ⓒKTX매거진 신규철

또 한 명의 빚는 사람을 만난다. 군동면 신기마을의 백정자 명인은 메주를 띄우고 장을 담그는 속도에 맞춰 살아간다. “콩 심고 메주 쑤어서 전국 팔도에 파느라 바빴죠. 지금은 그저 장이 익어 가는 것처럼 천천히 일하는 중입니다. 주문도 조금씩만 받으면서요.”

 

시간과 기다림으로 빚는 장

해주 최씨 종갓집에서 장 만드는 법을 배운 지 어언 60여 년. 그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된장, 고추장, 청국장 제조를 상업화하고 법인을 운영하며 강진 전통 장의 명맥을 이어 왔다. 명인의 손맛은 즙장에서 꽃을 피운다. 입에서 입으로만 전해지던 즙장은 백 명인의 손끝에서 다시 태어났다. 가을에 수확한 무와 노각을 염장해 두었다가 고춧잎과 가지, 찹쌀 죽, 메줏가루, 고춧가루, 엿기름을 섞은 뒤 삭히고 저온 숙성한 발효 식품이 즙장이다. 뜨거운 쌀밥에 얹고 참기름과 비벼 먹을 때 가장 맛있다는데, 생각만으로 군침이 꼴깍 넘어간다.

“옛날엔 메주를 쑤거나 장을 담그는 날이면 대문 앞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쳤어요. 소반 위에 소금이랑 물을 떠놓고 절도 했죠. 어머니가 그러라 하대요.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장 앞에서 깨끗한 자세를 지녀야 한다는 걸 배웠죠. 100년을 두고 먹는 게 장이니, 그걸 담그며 사는 사람들의 법도가 엄연하다는 걸 이젠 압니다.” 옹기를 쓰다듬는 명인의 머리 위로 싸라기눈이 축복처럼 흩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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