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오리치는 재계 ‘M&A 목장의 결투’는 쭉 계속된다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7 09:05
  • 호수 173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LG·롯데·한화그룹 등 M&A 실탄 마련에 분주
전문가들 “2023년 기업 성장 전략은 결국 M&A”

재계가 회오리치고 있다. 지난해 SK와 현대차그룹의 재계 서열이 바뀌었다. 상위 5개 기업집단의 순위가 바뀐 것은 12년 만이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돌파구 차원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이 잇따르고 있다. 주요 기업들은 이미 실탄 마련을 위한 ‘전투 모드’에 나선 상태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와 고금리,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로 촉발된 금융권의 유동성 위기 속에서도 자금 조달을 진행하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거나 시장에 매물로 나온 좋은 기업을 잡아 요즘 같은 경제위기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전문가들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언택트 수혜를 입은 기업의 거품이 걷히고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특히 스타트업의 경우 미래 가치에도 불구하고 흑자 전환을 아직 달성하지 못한 기업이 많다. 이들 기업 중에서 시장에 매물로 나올 알짜 기업이 많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망했다.

ⓒ일러스트 김세중
ⓒ일러스트 김세중

M&A 통한 ‘새판 짜기’ 경쟁

올해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한 대표적인 곳이 LG그룹이다. LG유플러스는 지난해 4분기 이후 최근까지 5500억원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다섯 차례에 걸쳐 연 4.02~5.73%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좋은 기업 지분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들일 수 있다면 고금리를 주더라도 자금을 조달할 만하다는 판단에서다. 아울러 LG전자는 최근 전장사업을 담당하는 VS사업본부의 M&A 분야 전문가 모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외 전략적 지분 투자와 M&A를 추진하는 한편 신규 투자 건을 물색하는 역할로, 전장 관련 기업에 대한 M&A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반도체 업황 둔화로 실적 위기에 처한 삼성전자도 올해 M&A를 통해 돌파구를 마련할 계획이다. 연초 협동 로봇 개발업체 레인보우로보틱스의 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해 총 590억원을 신규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종희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1월초에 열린 CES 2023에서 “삼성은 우리 사업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M&A를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실제 추진 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2016년 자동차 전기장치 및 오디오 회사인 하만을 인수한 이래 7년 만에 ‘빅딜’이 성사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현금성 자산을 129조원이나 확보하고 있다. 하만 인수대금 9조4000억원(80억 달러)의 10배 이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둔화되면서 현금 유동성 확보가 중요하지만, M&A에 투입할 자금은 넉넉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밖에도 한화그룹은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이어 STX중공업 인수전에도 뛰어들면서 조선 분야의 ‘수직계열화’를 노리고 있다. 롯데그룹은 전기차 배터리 및 친환경 첨단 소재 사업을 신성장동력으로 낙점했다. 롯데케미칼의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면서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동박 생산 세계 1위 기업 일진머티리얼즈를 인수하고, 인도네시아에 대규모 석유화학단지 조성에 나섰다.

이처럼 재계가 신규 사업 확장과 성장 수단으로 M&A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M&A는 기존 사업에서 경쟁 우위를 가장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입을 모았다. 특히 성장이 정체되거나 레드오션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해 차별적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들은 과거보다 트렌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쉽게 변심한다. 기술 발전 속도까지 가속화되면서 훌륭한 연구개발(R&D)팀과 엔지니어만으로 시장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일이 됐다. M&A는 이런 문제를 상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가 선호하는 경영 전략이다. 

사실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국내 기업들은 박리다매로 매출을 늘리며, 신사업에 적극 진출하는 등 성장 일변도 전략을 구사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와 2008년 불거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양적 팽창 위주로 운영했던 기업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대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대마불사(大馬不死)’ 공식이 깨진 것이다. 주주 이익을 중시하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성장보다는 수익성을 강조하고, 신사업보다는 주력 사업의 경쟁력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경영 전략도 바뀌었다.

이런 변화 속에서 M&A 없이는 지속적인 성장은 물론 생존도 담보할 수 없다고 기업들은 보고 있다. 삼정회계법인이 지난해 12월1일 발간한 ‘글로벌 CEO 설문조사 리포트’에 따르면 향후 3년간 기업 성장을 위한 주요 전략으로 CEO의 47%가 M&A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3자와의 전략적 파트너십(26%), 혁신·R&D(연구개발) 등과 같은 내적 성장(Organic Growth) 전략(22%) 등이 뒤를 이었다. 성공적인 M&A를 이뤄내는 기업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총수의 역할론이 부쩍 커졌다. M&A 성과가 극명히 엇갈렸기 때문이다. 과감한 M&A로 눈부신 성장세를 기록한 곳도 있지만, 무리한 확장으로 이른바 ‘승자의 저주’에 빠진 기업도 적지 않다. 대기업 총수들의 선견지명과 리더십이 결국 M&A의 승부를 갈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연합뉴스
ⓒ연합뉴스

투자시장 위축됐지만…좋은 기업 매입할 최적기 

실제로 M&A ‘빅딜’의 중심에는 늘 재계 총수들의 의지가 반영됐다. 공개적으로 인수 의지나 과정 등을 밝히면서 신규 사업 새판 짜기를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M&A 승부사’로 통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는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을 바탕으로 결정적인 순간마다 선제적 구조조정과 M&A로 재계 서열 7위의 한화그룹을 이끌어왔다. 40년간 다양한 분야에서 M&A를 통해 사세를 확장해온 한화는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서 그룹 총자산은 92조원에 달한다. 재계 서열 6위인 포스코(96조원)를 바짝 추격하고 있다.

김 회장은 총수에 취임한 1981년부터 한양화학·한국다우케미칼(현 한화솔루션)·정아그룹(현 한화호텔앤드리조트)을 인수해 석유화학과 서비스·레저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1999년 DL그룹과 유화사업 빅딜을 성사시켰으며, 2002년에는 대한생명(현 한화생명)을 인수하면서 금융권에도 진출했다. 그러다 2015년 삼성과의 빅딜로 방산·화학 계열사를 인수하면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시스템·종합화학·토탈 등 계열사를 단숨에 추가했다. 현재 이 회사들은 한화의 캐시카우로 자리 잡았으며, 방산 계열사들은 한화의 미래 먹거리인 우주항공 사업 진출을 위한 첨병이 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는 두고두고 ‘신의 한 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SK 임원들은 기존 사업과 연성성이 없다는 점을 들어 하이닉스 인수를 반대했다. 반도체 사업 역시 당시만 해도 크게 매력적인 사업이 아니었다. 공장 하나를 세우는 데 최소 3조원 이상 필요해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물론, 미래 투자 가치도 불투명했다. 그런데도 반도체가 미래 먹거리라는 확신이 있었던 최 회장은 과감한 결단으로 하이닉스를 품에 안았다. 하이닉스는 오늘날 SK의 핵심 성장 축으로 거듭났으며, 지난해 SK는 처음으로 현대차를 제치고 재계 서열 2위를 달성했다.

무리한 M&A로 ‘승자의 저주’ 덫 걸리기도

그렇다고 모든 총수가 M&A에 성공했던 건 아니다.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기업 리스크가 가중돼 기업집단이 공중분해되는 등 씁쓸하게 퇴장한 총수도 적지 않다. 한때 재계 10위권에 진입했던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대표적인 ‘승자의 저주’ 주인공이다. 2000년 중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을 무리하게 인수하면서 몰락이 시작됐다. 당시 박 전 회장은 “대한통운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꼭 필요한 기업”이라고 강조하며, 대한통운 인수에 사활을 걸었다.

하지만 인수 직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인수한 금호아시아나는 결국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결국,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등 새로 인수한 기업뿐 아니라 금호타이어 등 주요 계열사도 차례로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과도 사이가 틀어져 계열 분리 수순을 밟게 됐다. 이후 박 전 회장은 그룹 재건을 천명했지만, 그룹의 상징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하는 상황에 몰리면서 2019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샐러리맨 신화를 썼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도 마찬가지다. 조선 호황기와 함께 창립 10년 만에 재계 14위에 오르면서 신흥 재벌그룹으로 자리매김했다. 강 전 회장은 외환위기를 거치며 법정관리 중이던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면서 그룹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조선·해운업 불황과 함께 가파른 속도로 무너졌다. 2014년 STX그룹은 결국 해체됐으며, 강 전 회장은 횡령·배임 혐의 등으로 구속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대기업들의 악습인 문어발식 확장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카카오가 대표적이다. 그동안 공격적인 M&A와 신규 사업 진출로 지난해 재계 서열 15위를 기록하면서, 명실공히 재벌기업에 합류했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은 “카카오 초기 때부터 직접 사업 진출을 하기보다는 250개 정도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인수합병했던 것이 카카오 성장 방정식”이라고 말했다. 카카오는 현재 국내에 134개(해외 포함 187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카카오 먹통 사태가 불거지면서 카카오를 비롯해 거대 온라인 플랫폼들의 M&A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지배력 확장 우려가 큰 M&A 심사를 더욱 강화하고, 플랫폼 분야를 따로 떼어 담합 등 시장 반칙행위를 정부가 중점적으로 감시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쇼핑, 모빌리티 사업 등을 통해 골목상권까지 파고든 빅테크 기업들의 문어발 확장에도 제동이 걸렸다. 특히 이들 기업은 코로나 팬데믹에 따른 수혜를 톡톡히 보았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계속된 포스트 코로나 정책으로 인해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몸집 불리기 나선 금융권도  ‘M&A 혈투’ 가세
업황 불황으로 매물 나온 제 2금융권이 타깃

금융사들도 최근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주요 금융사 및 금융그룹 수장이 M&A 확대 의지를 보임에 따라 지난해보다는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올해 M&A의 첫 포문을 연 곳은 우리금융지주다. 다올금융그룹은 1월17일 다올인베스트먼트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우리금융지주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매각 대상은 다올투자증권이 보유한 다올인베스트먼트 지분 52%다. 인수금액은 약 2100억원으로 알려졌다. 상세 실사 후 최종 주식매매계약 협상 등을 거쳐 오는 3월 이내에 인수가 마무리될 예정이다.

다올인베스트먼트는 올해로 창립 40주년을 맞은 국내 1세대 VC다. 그동안 국내외 1200여 개 스타트업에 2조원 이상을 투자했다. 다만, 다올금융그룹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시장 경색의 직격탄을 맞아 유동성 확보를 위해 알짜 계열사인 다올인베스트먼트를 매물로 내놨다. 우리금융은 이번 인수로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의 첫 단추를 끼우게 됐다. 우리금융은 2021년 말 23년 만에 완전 민영화에 성공한 뒤 다방면으로 M&A를 검토해 왔다. 지난해 말 다올인베스트먼트가 매물로 나오자 1순위 인수 후보로 꼽혔다. 이번 인수는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직접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수협도 지주사 전환을 추진하면서 M&A에 적극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수협은 올해부터 자회사인 수협은행을 중심으로 금융지주 체제 전환을 추진할 방침이다. 강신숙 수협은행장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초기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산운용사, 캐피털사 인수가 우선순위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올해 단기적 과제로 M&A를 추진하고 내년부터는 자회사를 확대하는 등 지주사 전환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금융 역시 M&A를 통해 비은행권 강화에 나설 계획이다.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은 신년사를 통해 “올 한 해는 위기 속에서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찾아 우리 업(業)의 영역을 더욱 확장시켜야 한다”며 “보험, 카드, 자산운용 등 비은행 부문의 M&A를 포함한 모빌리티, 헬스케어, 가상자산 등 비금융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제휴와 투자를 통해 새로운 영역으로 업의 범위를 확대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권 수장들이 일제히 M&A 카드를 만지는 건 수익성 다각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이자 이익으로 실적 개선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공통된 시각이다. 금융 당국이 금리 개입에 나서는 상황에서 과도한 이자 이익은 논란을 키울 수 있다. 이에 금융권이 일제히 비은행권 강화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창출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