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내리고 수수료 없애고…달라진 은행, 속내는?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6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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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은행은 공공재” 발언에 고객 친화 조치 쏟아내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 직격탄 피하려 눈치보기 시작?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시중은행들이 대출금리를 연이어 낮추고, 이체 및 중도상환 수수료를 없애거나 낮추고 있다. 역대급 실적 속에 ‘이자장사’로 300~400%의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비판을 의식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진짜 속내는 따로 있다는 분석이다. 금융당국이 금융사 지배구조 개혁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면서 본보기를 피하기 위해 먼저 몸을 낮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모바일·인터넷뱅킹을 통한 타행 이체 수수료를 모두 없애기로 했다. 수수료 면제 조치는 지난해 12월30일 한용구 신한은행장이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는 차원에서 이체 수수료 면제를 시행하겠다”고 밝히면서 여타 은행으로 확대됐다.

신한은행은 이에 더해 오프라인 창구 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체(송금) 수수료도 면제하기로 했다. 대상은 만 60세 이상 고객이다. 영업점을 자주 찾는 시니어 고객들을 위한 조치다. 금융권에서는 모바일·인터넷뱅킹 타행 이체 수수료 면제의 경우처럼 다른 은행들도 동참할지 주목하고 있다.

최근 은행들이 고객 친화적 조치에 동참하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해 말 5대 은행은 취약 차주의 중도상환 수수료를 1년간 한시적으로 면제하는 데 합의했다.

논란이 컸던 대출금리도 낮추는 추세다. 3일 기준 4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의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신규 취급액 코픽스 연동)는 연 4.95~6.89% 수준이다. 한 달 전(1월6일·연 5.08~8.11%)보다 최저 금리가 0.13%포인트, 최고 금리는 1.22%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주담대 변동금리의 기준인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하락폭(0.05%포인트)보다 낙폭이 크다.

지난해 치솟는 대출금리에도 팔짱을 끼고 있었던 은행권이 태세 전환을 한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금융당국의 압박이 크다. 지난달 30일 윤 대통령은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후 토론회에서 “은행은 국방보다도 중요한 공공재적 시스템”이라며 은행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이 특정 업계를 콕 집어 언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것이 정치권의 반응이다.

앞서 금융당국도 수차례 은행권의 사회 환원을 주문한 바 있다. 특히 지난달 18일 이복현 금감원장은 “이익의 3분의 1을 주주환원하고 3분의 1을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면, 최소한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우리 국민 내지는 금융 소비자 몫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지배기업 지분 순이익 기준) 전망치 평균(컨센서스)은 총 16조5557억원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1년 순이익(14조5430억원)보다 13.7% 늘어난 수치로, 사상 최대 수준이다.

4대 금융지주의 순이익 증가는 이자이익을 증가한 영향이 크다. 코로나 국면에서 가계와 기업 대출이 확대된 가운데 기준금리가 인상되면서 이자이익이 덩달아 뛰었다.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이자이익 전망치는 65조9566억원이다. 2021년 대비 30% 늘어난 수치다.

사상 최대 실적에 성과급 규모도 커졌다. 이에 5대 은행은 기본급의 300~400%의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했다. 국민들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는데 ‘이자장사’로 은행만 성과급 잔치를 벌인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 ⓒ연합뉴스
서울 시내 은행 현금인출기(ATM) 모습 ⓒ연합뉴스

금융지주 회장 전원 연임 실패…금융권 손보기 신호탄?

은행이 고객 편의를 확대하는 데는 다른 속내가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당국이 금융사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금융위는 금융지주회장·은행장 등 금융회사 최고경영자(CEO)의 부당한 ‘셀프 연임’을 막고 임직원 성과급 규모와 산정 기준도 외부에 공개하겠다는 계획이다. 소유분산 기업, 이른바 ‘주인 없는 회사’들의 지배구조 선진화 작업이다.

소유분산기업의 경우 CEO가 광범위한 지배권을 가지게 되고, 이에 따라 부적절한 장기 연임이 이뤄진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 2일 “사고방지나 금융업을 하는데 정직성은 있어야 하는데 돈 버는 데만 신경 쓰는 문화가 지속되고 있어, CEO가 책임도 안지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문화는 그대로 두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금융권은 당국의 칼날이 어느 수준까지 영향을 미칠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마친 금융지주 회장이 전원 연임에 실패하면서 더욱 긴장감이 돌고 있다. 신한금융, NH농협금융, BNK금융 등 주요 금융지주 회장이 바뀐데 이어 지난 3일에는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이 우리금융 회장에 내정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실적만 봤을 때 연임엔 문제가 없었던 CEO들이 세대교체를 명분으로 대거 물러났다”며 “관치 논란 속에서도 제도를 바꿔가며 금융권을 뜯어고치겠다는 당국의 의지가 강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당국의 관리·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개혁의 본보기가 되지 않기 위해 최대한 협조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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