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닛산-미쓰비시 ‘新전기차 동맹’ 구축되나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2 08: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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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한 시장 변화에 퀄검·구글까지 파트너로 유치
국산차 경쟁력 유지하려면 정책적 지원 확대돼야

20세기 초반 본격적으로 자동차가 등장하던 시절에는 국가별로 수십, 수백 개에 이르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기업들의 우위가 굳어지면서 자동차 업계는 세계적으로 약 20여개 미만의 자동차 업체들이 전체 승용차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형태로 전환됐다.

하지만 이들 업체 역시 내연기관 자동차에 필수적인 엔진과 변속기 등에 대한 개발 및 투자비용이 증가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각종 안전규정에 맞춘 디자인과 점점 짧아지는 신제품 출시 주기 등의 부담을 감당할 수 없던 중소업체들은 합종연횡을 통해 대규모 업체에 통합되거나 사라졌다. 자동차 업계의 합종연횡은 국경을 뛰어넘어 이뤄졌다. 대표적인 사례는 프랑스 르노와 일본 닛산의 동맹 결성이었다. 1999년 파산 위기에 직면했던 닛산은 르노와의 동맹 결성을 통해 위기를 탈출할 수 있었다. 양측은 이후 막대한 비용 절감을 통해 회생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프랑스 르노그룹과 일본 닛산자동차 및 미쓰비시자동차는 최근 전기차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동맹을 맺어 주목된다. 사진은 2019년 3월 세 회사 경영진이 일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AP 연합

전기차 등장으로 기존 생태계 무너져

자동차 업계의 이런 과점 구조는 전기차 등장과 함께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하게 됐다. 전기차는 배터리와 모터로 구동되는 단순한 구조로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이 높기 때문에 자동차와 관련 없던 다양한 부문의 업체들과 신규 창업 업체들이 새롭게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입장은 반대다. 전기차로의 전환이 빨라지면서 기존 시설의 유휴화 및 신규 투자를 위한 자금 확보라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신규 업체의 진입을 차단해 오던 엔진과 변속기 개발 노하우나 생산설비들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다. 여기에 더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전기차 관련 R&D(연구개발), 생산을 위한 새로운 설비와 시설 구축이라는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 

최근 이뤄진 르노와 닛산의 상호 지분 조정 합의는 매우 상징적이라 할 수 있다. 르노와 닛산은 동맹을 결성했지만 닛산의 경영난이 해소된 이후 양측은 이해관계로 인해 끊임없이 충돌했다. 르노와 프랑스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닛산의 생산 규모가 르노보다 더 크기 때문에 양측은 여러 측면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여왔다. 동맹 결성을 통해 양사는 공동구매와 생산설비 공유, 디자인 및 플랫폼 공동 개발 등을 통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지만 당초 목표했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닛산의 경우 자체적인 개발 및 생산방식을 고집했고, 르노 역시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다.

이런 문제는 전기차 분야에서도 이어졌다. 양측은 별도의 전기차를 개발해 생산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거의 동일한 규격의 전기차인 르노 조에(Zoe)와 닛산 리프(Leaf)의 공유점은 거의 없었다. 양측의 관계는 2018년 닛산자동차 대표였던 카를로스 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체포와 탈옥이라는 스캔들 앞에서 최악으로 치달았고, 동맹의 미래는 불투명해졌다.

결별의 순간이 멀어 보이지 않던 양측은 최근 오랫동안 분쟁의 원인이었던 불평등한 상호출자를 해소하는 데 합의했다. 현재 르노는 닛산의 지분 43%를 보유하고 있으며 닛산은 르노의 지분 15%를 보유하고 있다. 이번 합의에 따라 르노는 닛산의 지분을 단계적으로 낮춰 15%로 조정할 예정이다. 이렇게 될 경우 닛산은 프랑스 법률에 따라 15%를 보유하고 있지만 상대가 4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할 경우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제한에서 벗어나 보유한 르노 지분에 대한 의결권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르노의 대폭적인 양보로 여겨지는 이 타협의 배경에는 전기차가 있다. 최근 르노는 전기차 및 관련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암페어(Ampere)라는 사업부를 출범시켰다. 이 사업부는 조만간 별도 기업으로 독립할 예정이다. 암페어는 기존 자동차와 차별되는 르노의 전기차 브랜드로서 소프트웨어 기반 차량(SDV)을 개발해 제조 및 판매할 예정이다.

르노가 생각하는 전기차는 소프트웨어만 업데이트하면 완전히 새로운 성능과 능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암페어는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약 1만 명의 직원을 고용할 예정이다. 이 가운데 3500명은 기술적 엔지니어, 4000여 명은 소프트웨어 전문가로 구성할 계획이다. 암페어는 2030년 이전에 6종의 전기차 라인업을 구성해 현재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준중형차와 해치백 스타일 전기차 시장의 80%를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르노와 닛산의 동맹 과정 되새겨볼 만

이를 달성하기 위해 암페어는 프랑스 북부에 40만 대의 전기차 생산을 위한 거점을 갖추고 최종적으로는 100만 대까지 확장할 계획이다. 무엇보다 아시아 지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반경 300km 이내에 관련 공급업체의 80%가 위치하는 유럽 전기차 산업 생태계 구축을 주도하려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현재 10~30% 수준인 유럽 내 공급망 의존도를 2030년까지 80%로 상향하고자 한다. 암페어의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르노는 미국 퀄컴 및 구글을 파트너로 유치하는 데 성공했으며 2026년까지 독자적인 플랫폼을 내놓으려 하고 있다.

닛산에 대한 르노의 대폭적인 양보는 암페어를 위한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양측은 전기차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해 암페어에 각각 15%씩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2016년 닛산의 투자에 따라 르노-닛산 동맹의 일원이 된 미쓰비시도 암페어에 투자할 의향을 밝히고 있다. 얼마 전 주요 수입원이었던 러시아에서 철수한 르노로서는 전기차 시장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투자해야 하지만 단독으론 할 수 없기 때문에 닛산에 대한 대폭적인 양보를 통해 비용을 조달한 것이다.

조만간 결별할 것만 같던 기업들끼리 화해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할 만큼 전기차를 둘러싼 시장 변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전기차 보급이 계획대로 신속하게 이루어질 것인지, 관련된 충전시설 등 인프라가 함께 설치될 것인지, 배터리의 주요 소재인 니켈과 코발트 가격이 급등할 것인지 등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하지만 전기차가 향후 자동차 시장에서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는 모두가 동의하며,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기차에 대한 과감하고 빠른 투자를 통해 확대되는 시장을 선점하고 있다. 하지만 르노의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기존 자동차 업체들의 대규모 투자가 이어질 경우 선점 효과는 금방 사라질지도 모른다. 전기차 시장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보조금 지급 및 인프라 확충 등 정책적 지원이 계속 확대돼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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