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發 전기차 치킨게임 시작됐다
  • 이석 기자․유주엽 시사저널e. 기자 (jubie@sisajournal-e.com)
  • 승인 2023.02.14 07:3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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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中·獨 이어 한국에서도 가격 낮춘 테슬라…일시적 가격 조정인가, 경쟁사 죽이기인가

전기차 시장에서 ‘소리 없는 전쟁’이 시작됐다. 최근 판매율 하락으로 궁지에 몰린 테슬라가 주요 판매 국가에서 전기차 가격을 크게 낮췄기 때문이다. 미국에선 포드가 테슬라를 따라 전기차 모델의 가격을 최대 8.8% 내렸고, 중국에선 전기차 스타트업 샤오펑이 자사 전기차의 가격을 12.5% 인하했다. 아직까지 가격 경쟁이 본격화되진 않았지만, 향후 테슬라의 점유율 변화와 완성차 제조업체들의 대응에 따라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PA 연합
ⓒEPA 연합

테슬라, 모델Y 가격 20% 인하 왜?

사실 테슬라가 전기차 가격을 기습적으로 낮추거나 높인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보조금이나 판매 상황에 따라 수시로 가격을 조정했다. 자동차 마니아들 사이에서 ‘횟집 시가’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였다. 지난 1월 테슬라가 미국에서 주요 모델의 가격을 최대 20% 인하한 것도 그 연장선상에서 풀이된다. 모델Y 롱레인지 모델의 경우 한 번에 1만3000달러나 가격을 내렸는데, 세액공제 조건을 맞추기 위한 꼼수로 자동차 업계는 보고 있다.

요컨대 모델Y는 올해 기준이 바뀌면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형 전기차에서 세단형 전기차로 재분류됐다. 미국은 전기차 보조금과 유사한 개념으로, 가격 조건을 맞추는 전기차에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세단형 전기차는 5만5000달러, SUV형 전기차는 8만 달러 미만이어야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된다. 모델Y의 기존 가격인 6만5990달러로는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게 되자 가격을 크게 내린 것이다.

포드는 곧바로 대응에 나섰다. 포드는 머스탱 마하-E 가격을 모델별로 1.2~8.8% 내렸다. 마하-E는 포드의 중형 SUV 전기차로 테슬라 모델Y의 경쟁 모델이다. 가격 조정 후 마하-E GT 익스텐디드 레인지 모델의 가격은 기존 6만9900달러에서 6만4000달러로, 마하-E 스탠더드 레인지 모델의 가격은 4만6900달러에서 4만6000달러로 인하됐다. 지난해 8월 원자재 가격 인상 등을 이유로 마하-E 가격을 올린 지 반년도 안 돼 가격을 내린 것이다. 다분히 테슬라의 가격 인하에 대응하는 조치로 풀이된다.

현재 테슬라 모델Y 롱레인지는 5만4990달러에 판매 중이다. 처음 조정 가격인 5만2990달러보다 2000달러 비싸졌다. 하지만 모델Y가 세단형 전기차에서 SUV형 전기차로 다시 기준이 바뀐 점을 감안하면,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후발주자를 견제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인다. 미국 자동차 평가기관 켈리블루북에 따르면 테슬라의 전기차 시장 점유율은 불과 1년 만에 7%나 하락했다. 2021년 미국의 전기차 신차 판매량(48만7000대) 중 테슬라의 점유율은 72%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전기차 신차 중 테슬라의 비율은 65%로 떨어졌다. 새로운 경쟁자들이 계속 시장에 진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가격 인하 정책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대당 판매순익 9500달러로 가격 경쟁에서 앞서

현재까지의 상황은 테슬라에 유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테슬라는 전기차 판매순익이 대당 9500달러로 다른 완성차 제조사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테슬라는 일찍부터 기가팩토리(테슬라의 전기차 생산공장) 건설로 대량생산 체계를 갖췄다. 현재 미국 외 중국·독일에도 기가팩토리가 있다. 판매 차종은 모델3, 모델Y, 모델S, 모델X 등이지만, 모델3와 모델Y를 집중적으로 판매하고 있다. 비용 절감의 기본 원칙인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4680 원통형 배터리(지름 46mm, 높이 80mm) 양산을 통해 배터리 가격 절감도 시도하고 있다. 4680 원통형 배터리는 기존 2170(지름 21mm, 높이 70mm) 원통형 배터리보다 생산비용이 낮다. 작은 건전지를 여러 개 만들어 차량에 넣는 대신, 큰 건전지를 적게 넣는다고 이해하면 된다. 에너지 밀도도 4680 배터리가 더 높다. 테슬라는 이러한 경쟁력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있다. 앞서 중국과 독일에서도 각국 보조금 정책에 맞게 가격을 인하했다. 그 결과 중국에선 1월 판매량이 12월 대비 18% 증가했다. 독일에선 전년 대비 판매량이 10배나 증가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선 향후 테슬라의 시장 점유율이 계속 높아질 경우, 포드를 비롯한 완성차 업체들도 가격 경쟁에 뛰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아직 대다수 완성차 업체는 가격 경쟁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1월 실적 발표에서 메리 바라 제너럴모터스(GM) 최고경영자(CEO)는 “전기차 신모델에 대한 수요가 강하고 가격 책정도 매우 적절했다”며 전기차 가격 인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전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 연합뉴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연합뉴스

GM·폭스바겐·현대차그룹 등의 대응 전략 주목

폭스바겐이나 현대자동차그룹 등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현대차그룹의 경우 최근 전기차 등 친환경차를 중심으로 해외에서 높은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의 완성차 점유율은 9.40%로 유럽 진출 이후 처음으로 9%대를 돌파했다. 무엇보다 전년 대비 점유율 상승 폭 0.75%로 전 세계 완성차 제조사 중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전기차를 중심으로 판매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도 마찬가지다. 현대차그룹은 현재 미국 전기차 시장 2위 자리를 놓고 포드와 경합 중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시행에 따라 전기차 모델들이 모두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다. 가격을 내리지 않다 보니 아이오닉5나 EV6의 가격대가 보조금을 받는 모델Y나 마하-E와 일부 겹치고 있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하지만 2025년 이후 조지아 공장에서 현지 생산 전기차가 나올 경우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IRA는 북미 지역에서 생산 및 조립된 전기차에 한정해 세액공제를 적용하는 법안이다. 2025년 미국 조지아 지역에 건설 중인 현지 공장이 완성되면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된다. 현대차의 전략 역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테슬라의 파격 행보에도 현대·기아차는 ‘무덤덤’

“테슬라 행보 신경 쓰일 것” vs “두 회사는 전략부터 다르다”

‘전기차 열풍’은 현재 국내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자동차 시장조사기관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전기차 판매량은 16만4482대로 전년 대비 63.8%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판매율이 4.4% 하락한 가솔린, 18.5% 감소한 디젤차와 대비되고 있다. 덕분에 전기차 점유율은 10%대에 육박했다. 하지만 테슬라는 유독 국내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판매량이 18.3%나 감소했다.

그래서일까. 테슬라는 한국에서도 주요 모델의 가격을 내렸다. 지난해 말 9664만원에 판매되던 모델Y 롱레인지 모델의 가격은 1월에 8499만원으로, 2월엔 7789만원까지 떨어졌다. 불과 한 달 새 2000만원 가까이 가격이 내려간 것이다. 같은 기간 모델3 후륜구동(스탠더드) 모델은 7034만원에서 6434만원으로, 다시 2월엔 5999만원으로 조정됐다. 현재까진 국내 테슬라 모델의 가격이 보조금 50% 조건에 속하는 만큼, 100% 보조금을 받는 아이오닉5·아이오닉6·EV6 등 현대차 및 기아의 주요 전기차와 직접적인 경쟁이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모델3의 경우 추가 가격 인하에 따라 보조금 100% 조건에 속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 정부는 5700만원 미만 차량에 최대 100%의 전기차 구매 보조금을, 5700만~8500만원 미만 차량에 최대 50%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테슬라의 높은 판매 마진이 변수로 꼽힌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기존 테슬라의 대당 마진율은 25% 정도로 높은 편이다. 가격을 조금 낮춘다 해도 경쟁사보다 타격이 적다”면서 “향후엔 국내에서도 전기차 가격 경쟁이 시작될 수 있다. 현대차와 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 역시 테슬라의 가격 인하 행보에 대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 측은 조심스러운 반응이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 정책에 대해 말을 아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테슬라가 주도하는 대로 끌려갈 생각이 없는 듯하다. 테슬라는 그동안 차량 자체의 퀄리티 논란이 많았음에도 국내시장에서 고가 정책을 펼쳐왔다. 반자율주행인 ‘오토 파일럿’ 기능과 창업주인 일론 머스크 때문에 혁신 기업으로 인식돼 왔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상대적으로 고가인 테슬라 차량을 구입하는 데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하지만 최근 테슬라의 판매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매출은 늘어났지만 경쟁 심화로 시장 장악력이 약해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의 가격 인하 정책은 이 재고 관리 차원으로 자동차 업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한 관계자는 “‘소품종 대량생산’ 방식을 고수하면서 모델이 오래된 테슬라와 달리 완성차 업계는 계속 신모델을 내놓고 있다. 미국의 GM이 최근 테슬라의 가격 인하에도 전기차 가격 인하 가능성에 대해 부정적인 의사를 내비친 것도 이 때문”이라면서 “국내에서 테슬라의 가격 인하 정책을 좇을 계획은 아직 없다”고 설명했다.

권용주 국민대 자동차운송디자인학과 교수도 “테슬라에서 시작된 최근의 가격 인하 경쟁은 결국 시장의 논리다. 전기차 판매율이 떨어지자 가격을 내렸고, 시장에서 다시 팔리기 시작하자 테슬라는 가격을 올렸다”면서 “전기차만 생산하는 테슬라와 내연기관차를 같이 판매하는 기존의 완성차 업체들의 전략은 다를 수밖에 없다. 현대차 등은 현재의 가격 정책을 그대로 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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