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느냐 사느냐’ 기로 놓인 전경련, 탈출구 찾아낼까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4 10:05
  • 호수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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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활 걸린 ‘4대 그룹 복귀’ 위해 전방위 쇄신 노력
후보 대다수 고사에도 새 수장 찾으려 안간힘

국내 대기업들을 회원사로 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운명의 기로에 섰다. 전경련의 위상은 2016년 불거진 국정농단 사태 당시 K스포츠·미르재단을 위한 후원금을 모금한 사실이 드러난 후 급격히 추락했다. 사태 한복판에 섰던 삼성, SK, 현대자동차, LG 등 4대 그룹이 줄줄이 탈퇴하며 회생의 불씨마저 사그라들었다. 이후 펼쳐진 일련의 쇄신 노력은 동력도 명분도 없는 탓에 번번이 무위에 그쳤다. 4대 그룹이 올해에도 복귀하지 않으면 전경련의 위상 회복은 사실상 불가능할 전망이다. 최근 전경련이 허창수 회장 임기 종료를 코앞에 두고 차기 회장 물색과 이미지 개선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이런 상황과 맞닿아 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전경련은 2월23일 신임 회장 선출을 앞두고 미래발전위원회를 중심으로 광폭 소통 행보를 펼치는 중이다. 2월초부터 회원사와 비(非)회원사, 대·중소기업, 경제인·비경제인을 가리지 않고 접촉해 쇄신을 위한 묘안을 구해 왔다. 쇄신과 회장 선출의 주안점은 결국 4대 그룹 복귀지만, 전경련이 해당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일각에선 ‘4대 그룹이 그들 스스로 복귀해 쇄신을 주도하는 등 결자해지(結者解之)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월2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3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경제인들과 떡을 자르고 있다. 왼쪽부터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최태원 대한상공 회의소 회장, 윤 대통령,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연합뉴스

전방위적 변화 노력에 4대 그룹 움직일까 

1월30일 전경련 회장후보추천위원장 겸 미래발전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웅열 코오롱 명예회장은 그동안 재계 5위인 롯데 신동빈 회장을 비롯해 김승연 한화 회장, 구자열 한국무역협회 회장(LS 이사회 의장), 박정원 두산 회장, 류진 풍산 회장 등을 두루 만나 차기 회장직을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가뜩이나 회장감으로 꼽히는 인물이 적은데, 대다수가 고사의 뜻을 밝혀 회장 인선 작업은 난항에 빠졌다. 정작 이웅열 명예회장도 전경련 회장직 제의를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벌 총수들이 워낙 전경련 회장직을 부담스러워 하다 보니 정부·국민과의 소통에 능한 외부 인사 수혈 가능성이 심각하게 거론된다. 당초 우선순위에서 멀었던 선택지다. 

전경련 회원사인 재계 20위권 대기업의 한 고위 임원은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정경유착 프레임이 고착화한 탓에 전경련 회원사가 600여 개에서 450개로 쪼그라들었다. 전경련을 떠나지 않은 회원사들은 순전히 의리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라면서 “전경련 회원사로서의 메리트가 사라졌고 오히려 주위로부터 ‘뭐 하러 아직 남았느냐’는 소리까지 듣는 와중에 덜컥 회장을 맡겠다고 할 총수가 있을 리 만무하다”고 말했다. 차기 회장에게 주어진 최우선 과제로 4대 그룹 복귀를 논하는 것 역시 후보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뿐더러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다고 이 임원은 지적했다. 그는 “(국정농단 사태 때) 상대적으로 무거운 혐의를 받은 4대 그룹이 전경련에서 빠져나가고 잔류 회원사들이 힘겹게 뒷수습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4대 그룹이 누가 요청하기 전에 선제적으로 돌아와 전경련 쇄신을 주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차기 회장을 추대해야 하는 2월23일 정기총회까지 시간이 촉박한 가운데 이 명예회장은 전경련 안팎의 따가운 시선과 회의론을 뒤로하고 대책 마련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회장 후보군을 좁혀 삼고초려에 나서는 동시에 전경련 중장기 쇄신안의 기본 틀을 2월7일 발표했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미래를 디자인하며 한국의 주요 8개국(G8) 도약을 이끌 단체로 재탄생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뉴 웨이 구상(New Way Initiative)’이다. 국민 소통의 첫 번째 프로젝트로 한국판 ‘워런 버핏과의 점심식사’를 추진키로 한 점이 눈길을 끌었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30명을 선발해 전경련 회장단 등 대기업 회장, 전문경영인, 성공한 스타트업 창업자 등 3인과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 이 명예회장이 이끄는 미래발전위는 중소기업 지원 체계화 및 성과보고회 개최, 대·중소기업 상생위원회 발족, 기업인 명예의 전당 사업 등을 검토 중이다. 이 명예회장은 “전경련의 변화는 그동안 전경련이 해야 했지만 하지 않았던 것들을 찾고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면서 “정기총회 전까지 발전안의 큰 방향을 좀 더 구체화하고, 이를 작동하게 하는 거버넌스와 조직을 설계하겠다”고 밝혔다. 쇄신안 선공개가 회장 후보군과 4대 그룹 총수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도움이 될지도 주목된다. 

여건 되면 복귀하겠다던 최태원, 지금은? 

최태원 SK 회장은 지난해 3월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대한상공회의소의 기자간담회에서 SK의 전경련 재가입 여부에 관해 “여건이 되면 고려할 수도 있는 것 같다”면서도 “다만 여건이라는 건 여러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지금은 그러한 여건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아직은 가입할 계획이 없다는 말”이라며 여지를 남긴 바 있다. 

최 회장 취임 2주년을 맞은 대한상의는 어느덧 4대 그룹을 비롯한 재계의 주요 활동 창구로 자리매김했다. 최 회장이 누누이 “전경련과 대한상의의 관계는 라이벌 개념이 아니다”고 밝혔으나, 결과적으론 대한상의의 부상에 전경련 입지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올해 초 대한상의는 중소기업중앙회와 함께 윤석열 대통령을 초청해 경제계 신년인사회를 개최했다. 대통령의 경제계 신년인사회 참석은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7년 만이었다. 이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차 회장, 구광모 LG 회장은 대한상의 회원사 수장 자격으로 행사에 얼굴을 비쳤다. 아울러 대한상의는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활동을 위해 10대 그룹으로부터 총 311억원의 특별회비를 걷고 있다. 

반면 전경련은 문재인 정부 때 철저히 소외당하다 현 정부 들어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가 싶더니 또다시 ‘패싱’ 논란에 휩싸였다. 전경련은 지난해 3월 윤 대통령(당시 당선인 신분)과 경제 6단체장 간 도시락 오찬 간담회를 주선해 화제를 모았다. 윤석열 정부가 친(親)대기업 정책을 펼치기 위해 전경련과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기지개를 켠 전경련을 놓고 사회 각계에 더해 다른 일부 경제단체까지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자 정부는 금세 우호적인 태도를 거둬들였다. 단체명 변경과 싱크탱크 기능 강화 등 앞선 쇄신안이 유야무야된 상황에서 새 정부와 새 출발을 하겠다는 발상은 무리였던 셈이다. 

오히려 허창수 회장이 지난해 말 윤 대통령과 경제 5단체장의 비공개 만찬 회동에 호출되지 못하면서 전경련 패싱 우려가 현실화했다. 올해 1월 대통령 아랍에미리트(UAE) 순방 경제사절단에도 동행하지 않자 회장 퇴진 얘기가 솔솔 피어올랐다. 결국 허 회장은 임기를 한 달 앞두고 용퇴 의사를 밝혔다. 2011년부터 6회 연속 전경련 회장직을 수행해온 허 회장이다. 국정농단 사태 후인 2017년과 2019년, 2021년엔 회장 교체기마다 연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음에도 마땅한 후보가 없어 회장직을 계속 맡았다. 이번에 회장직을 완전히 내던지는 배경엔 전경련이 절체절명의 순간을 맞았다는 강력한 문제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실제로 허 회장은 사퇴 의사를 밝히기 직전 전경련이 대기업 대표 단체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안타까움과 전격적인 쇄신 필요성을 언급했다는 전언이다. 

ⓒ시사저널 박정훈
서울 영등포구 전경련회관 앞에 놓여 있는 표지석 ⓒ시사저널 박정훈

“대기업 단체의 역할 전향적으로 볼 때” 

경제 6단체 중 하나인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경제계의 협력과 공동행동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어느 한 단체가 위축되는 이슈가 분명 긍정적이진 않다. 단체마다 고유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라며 “모든 경제단체가 안정된 기반을 바탕으로 제 목소리를 내야 우리 경제에도 더욱 활력이 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경제단체들의 결속력과 의제 설정 능력이 과거와 비교해 많이 약화된 게 사실이다. 각자 특화된 분야에서 의견을 내다가 공통의 목소리가 필요하면 중지를 모으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정농단 사태 이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전경련을 위시한 대기업들의 역할과 목소리에 대해 전향적으로 접근할 때”라고 제언했다. 

 

■ “경총과의 통폐합 논의는 어불성설” 

전경련의 위상이 추락하면서 한때 재계에서는 한국경영자총협회와의 통합 가능성도 적잖이 거론됐다. 진원지는 경총을 이끄는 손경식 CJ 회장이다. 손 회장은 2021년 “전경련에 경총과 통합해 힘을 키워보자고 제안했다”고 밝힌 이후 누차 전경련과 경총의 통합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총과 전경련을 통합해 미국의 해리티지재단과 같은 연구단체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손 회장은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사의를 표명한 뒤에도 “경제단체 내에 앞을 내다볼 수 있는 싱크탱크가 있어야 한다”며 자신의 통합론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렸다. 

그러나 전경련 측에선 그동안 경총과의 통합론에 대해 부정적인 기류를 내비쳐 왔다. 차기 회장 선임을 앞두고 재계 일각에서 ‘이참에 전경련과 경총을 통합하고 손 회장을 통합 단체의 초대 수장으로 추대하자’는 주장이 나오자 불쾌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전경련 간부를 지낸 한 학자는 “전경련 전·현직 관계자 대부분은 경총과의 통합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두 단체의 성격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들이 모인 전경련의 존재 이유는 압도적인 중량감을 기반으로 산업 패러다임 변화를 주도하고 국가 경제·산업 정책을 든든히 뒷받침하는 것이다. 해외 대기업 또는 경제단체와 탄탄한 네트워크를 구축한 곳도 전경련이 유일하다. 반면 경총은 대한상의와 더불어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를 아우르는 단체다. 노사 관계 선진화가 주요 업무이고 2018년부터 경제·산업 정책, 경영 제도, 규제 혁신 등 분야로도 외연을 확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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