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친이 핵심 원로들이 물밑 조력…‘불화설’ 있던 이태규와도 소통
국민의힘 차기 당대표를 선출하는 3·8 전당대회에서 지금 가장 뜨거운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의중) 밖’ 주자는 안철수 의원이다. 유력한 당권 주자로 꼽혔던 나경원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 이후 윤핵관(윤 대통령 측 핵심 관계자)들의 노골적인 견제를 받았고, 용산으로부터 연일 경고장을 받았다. 불과 한 달이 채 안 된 ‘나경원 사태’의 데자뷔였다. 그러나 안 의원은 불출마를 선택한 또 다른 윤심 밖 주자 나경원·유승민 전 의원과는 다른 선택을 한 모습이다. 지금까지 여러 선거에서 단일화 등으로 한발 물러나곤 했던 안 의원이 이번에도 ‘철수’하는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의구심에 대해 안 의원은 “1위 후보가 사퇴하는 것 봤느냐”고 일축했다. 김영우 ‘안철수 경선 후보 캠프’ 선거대책위원장도 시사저널과 만나 “절대 철수는 없다”고 공언했다.
이제 전대까지 약 3주 남짓, 남은 기간 여권 주류의 압박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치고 올라오는 또 다른 당권 주자인 이준석계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의 기세도 위협적이다. 숱한 변수 속에 이번엔 정말 철수 없이 완주해 당권을 쥘 수 있을까. 안 의원의 승부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경원·유승민과는 다른 安, 완주 의사 확고
윤핵관들에 이어 대통령실 참모들까지 이례적으로 나서 안 의원에게 집중 공세를 가하자 구석에 몰린 안 의원은 2월6일 하루 동안 일정을 잠정 중단했다. 정치권에선 안 의원이 당대표 도전 여부 자체에 대해 고심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안 의원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정을 재개했다. 전대 비전발표회 무대에 서서 “저를 총선 압승의 도구로 써달라”며 자신의 수도권 경쟁력을 어필했다. 표정에선 여유가 드러났다. 정치권에선 안 의원이 잠시 전열을 재정비한 뒤 새롭게 승부수를 띄웠다는 관측이 나왔다.
애초부터 불출마 등은 선택지에 없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일정 잠정 중단을 알린 날에도 안 의원은 비공식 일정을 모두 수행했다. 숨고르기이자 전략 수정을 위한 공개 행보 자제에 불과했다. 사실 안 의원 측 입장에선 대통령실 등의 전방위적 압력은 악재가 아니라 호재에 가까웠다. 한 캠프 관계자는 “우리에 대한 집중적인 공세가 쏟아질수록 여론은 우리 편으로 더 돌아서는 분위기였다”며 고무적으로 평가했다. 실제 안 의원을 향한 집중포화가 이뤄진 뒤 여러 여론조사에서 안 의원의 상승세는 더욱 커졌다.
안 의원 측은 앞으로도 출마 포기나 단일화는 결코 없을 거란 입장이다. 김영우 선대위원장은 “지금까지 안 후보가 단일화를 하거나 사퇴했던 건 저마다 명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포기하거나 단일화할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오히려 위기는 기조를 다잡는 기회가 됐다. 캠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남은 선거 기간에 안 의원 측의 전략은 정책과 경쟁력 강조에 방점을 둔 포지티브 행보다. 앞으로 안 의원 측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당의 무기가 될 IT·과학·의학 등 전문 분야와 관련한 정책 행보에 나설 전망이다. 또 수도권 경쟁력 등을 확실히 부각한다는 계획이다. 안 의원은 2월7일 비전발표회에서 자신의 수도권 경쟁력을 강조하며 “수도권을 탈환해 170석(으로) 총선 압승하겠다”고 자신했다.
무엇보다 안 의원 측은 대통령실과의 관계 설정을 ‘화합’으로 가져갈 전망이다. 비윤(非윤석열) 이미지 부각은 애초부터 안 의원 측에 일부 부담스러운 측면도 있었다. 그동안 안 의원은 단일화, 인수위원장으로서의 역할 등을 강조하며 꾸준히 윤 대통령과의 호흡을 강조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비윤 이미지가 오히려 지금의 ‘안풍’에 도움이 됐다는 분석이 나오지만, 안 의원 측은 ‘윤 대통령과 보조를 맞추는 당대표’를 남은 기간 계속 강조하면서 통합 행보를 한다는 계획이다. 김 위원장은 “기본적으로 당대표는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앞서 ‘이준석 당대표 트라우마’를 지켜본 당원들의 걱정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런 부분에서 (당원들을) 안심시켜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
安측 “당대표, 대통령과 보조 맞추는 것 당연”
그러나 상황이 뜻대로 순탄하게 흘러갈지는 미지수다. 눈에 보이는 변수들만 해도 충분히 위협적이다. 우선 친윤계와 대통령실 등에선 계속 안 의원에 대한 견제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안 의원 측은 그럴 경우 메시지를 이원화해 안 의원이 아닌 김 위원장 등 다른 스피커를 통해 대응하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지금까지 나 전 의원, 안 의원을 둘러싼 일련의 장면들로 인해 기본적으로 윤심 대 비(非)윤심 구도가 담겨 있기에 그 표심을 가져오는 것도 안 의원 측 입장에선 중요하다. 캠프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안철수 캠프는 네거티브와 진흙탕 싸움에 빠져들지 않을 생각이다. 그러나 공격이 들어올 때 아예 무시하거나 회피하는 건 가능하지도 않고, 그러한 조직적 움직임에 대한 반감도 당심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걸 끌어안을 만한 대응들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아슬아슬한 줄타기’ 전략이 안 의원 측에 역풍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불출마 선언을 한 나경원 전 의원이 최근 김기현 의원에게 힘을 실어준 것도 안 의원 입장에선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나 전 의원은 2월7일 김기현 의원과 회동한 뒤 카메라 앞에 서서 “성공적인 국정운영과 총선 승리를 위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에 대한 직접적인 지지 의사를 밝히진 않았으나 사실상의 연대 선언으로 풀이됐다. 당장 나 전 의원의 불출마로 윤심에 반감을 가진 표심이 다시 김 의원에게로 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실제 나 전 의원과 김 의원이 손을 맞잡은 다음 날 미디어트리뷴 의뢰로 리얼미터가 조사해 발표한 가상 양자대결(2월6~7일 조사,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 402명 대상,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4.9%p)에선 김 의원(52.6%)이 안 의원(39.3%)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 전 의원과 김 의원의 기자회견 효과뿐만 아니라 김 의원이 나 전 의원을 찾아가 지지를 호소하고, 나 전 의원도 크게 거부하지 않았던 과정들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안 의원 캠프는 연연하지 않는 분위기다. 김영우 위원장은 “바닥에선 이미 안철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며 “김 후보에게 고스란히 플러스로 작용할 것 같진 않다. 나 전 의원이 입장을 선회하는 과정도 부자연스러웠고, 그 과정을 국민이 고스란히 지켜보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김 의원이 앞선 결과의 조사가 나온 같은 날 정반대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쿠키뉴스 의뢰로 한길리서치가 조사한 가상 양자대결(2월4~6일 조사, 전국 만 18세 이상 국민의힘 지지층 527명 대상,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2.8%p)에서는 안 의원(35.5%)이 김 의원(31.2%)을 오차범위 내에서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또 다른 캠프 관계자는 “다수의 여론조사들을 볼 때 흐름은 확실히 안 의원이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두 여론조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천하람 변수에 “安-金 양강 구도로 끌고 갈 것”
이준석 전 대표의 지원을 받는 비윤계 당권 주자 천하람 위원장 변수도 위협 요소다. 천 위원장은 출마선언 1주일여 만에 여론조사에서 3위를 기록하는 등 양강 전대 판도에 돌을 던졌다. 천 위원장의 존재감이 커질 경우 안 의원에게로 향해 있는 비윤 표심이 흔들릴 수 있다. 이에 안 의원 측은 선거를 안 의원과 김 의원의 양강 구도로 끌고 가겠다는 전략이다. 김 위원장은 “안 의원은 김 의원을 상대로 나왔지 다른 사람을 상대로 나오지 않았다”면서 “앞으로 양강 구도를 조금 더 분명하게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의 과반을 저지해 결선투표에 나란히 올라가는 게 관건이다.
안 의원의 약점이자 한계로 보수진영 내 약한 뿌리와 세력이 꼽힌다.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이 합당하며 안 의원이 보수진영에 합류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안 의원이 강조하는 확장성은 반대로 말하면 약한 보수 정체성으로도 해석된다. 김 의원 측에서 최근 안 의원을 향해 색깔론 등의 전략을 펴는 것도 이러한 약한 고리를 공략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안 의원 측에서 계속 강조하는 것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선 안 의원이 가진 중도·2030세대를 향한 확장성이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안 의원도 1월2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저에겐 언제나 중도층, 2030세대의 고정 지지층이 있다. 제가 국회의원 3선을 하는 동안 수도권에서 20~30%포인트 차로 이겨온 것도 그 때문”이라며 “특히 강북 지역의 원외 지역위원장들이 제게 기대를 건다. 결국엔 그 척박한 곳에서 한 표라도 더 보태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가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세력에서는 김 의원 측과 안 의원 측이 상반되는 풍경을 보이고 있다. 나 전 의원뿐만 아니라 최근에도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측 인사들을 캠프에 영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세를 불리고 있는 김 의원 측과 달리 안 의원 측은 세 결집에선 다소 약세로 평가된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애초부터 우리의 선거 전략은 과거 방식처럼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슬림하게 실무형으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안 의원은 꾸준히 정치권의 원로들, 현역 의원 등과 폭넓게 만나 소통하고 있으며 물밑 조력들도 활발하다”고 부연했다.
실제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친박(박근혜)·친이(이명박)계 핵심 원로 몇 명이 안 의원에게 여러 간접적인 조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과거 당의 상황보다 최근의 갈등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문제의식 속에 안 의원과 직접 만나 조언하거나 여러 충고를 담은 메모를 전달하는 등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안 의원은 지난해 4월 인수위원직에서 사퇴한 뒤 ‘불화설’이 돌던 최측근 이태규 의원과도 최근 소통을 재개한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다. 최근에도 안 의원과 만난 이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현역 의원으로서 전대에 공식적으로 관여하거나 역할을 할 수는 없다”면서도 “제가 한동안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 위해 안 의원과 거리를 뒀지만, 최근 정권교체의 견인차였던 대선 단일화를 폄훼하거나 도를 넘는 네거티브 형태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전대가 국민 눈높이에 부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정도의 의견 교환을 (안 의원과)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