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작 연기’에 119 신고까지…드러난 병역 비리 ‘시나리오’
  • 이금나 디지털팀 기자 (goldlee1209@gmail.com)
  • 승인 2023.02.09 13:2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檢, 뇌전증 환자 행세한 ‘병역 비리’ 47명 불구속 기소
브로커 구씨, 300만∼6000만원씩 총 6억3425만원 챙겨
서울남부지검은 올해 초 에스아이티글로벌의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이 회사 이아무개 회장과 한아무개 대표를 구속기소했다. © 시사저널 최준필
9일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박은혜 부장검사)는 병역면탈자 47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 시사저널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28,OK금융그룹)씨 등 허위 뇌전증 진단을 받아 병역 등급을 낮추거나 면제받은 병역면탈자들 47명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다.

9일 서울남부지검 형사5부(박은혜 부장검사)는 프로스포츠 선수와 배우 등 병역면탈자 42명 및 이들을 도운 공범 5명 등 모두 47명을 병역법 위반 혐의와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병역면탈자 42명은 브로커 구모(47·구속기소)씨로부터 ‘맞춤형’ 시나리오를 건네받아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한 뒤 허위 진단서를 발급받고, 이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은 혐의를 받고 모두 자백했다.

의뢰인들은 뇌전증 발작이 왔다며 119에 신고해 응급실에 실려가고 병 ·의원과 대학병원 등 3차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며 1~2년에 걸쳐 뇌전증 환자라는 허위 기록을 만들었다. 

이들은 뇌파검사에서 이상이 나오지 않더라도 발작 등 임상 증상을 지속적으로 호소하면 뇌전증을 진단받을 수 있는 것을 알고 이를 악용했다.  

구씨는 이들이 가짜 환자로 들통나지 않도록 병원 검사 전에 실제 뇌전증 치료제를 복용시키고 점검하기도 했다. 서둘러 군 면제를 받아야 하는 의뢰인에게는 발작 등을 허위로 119에 신고해 대학병원 응급실에 보냈다. 

함께 기소된 가족과 지인들은 브로커와 직접 계약하고 대가를 지급하거나, 119 신고 과정에서 목격자 행세를 하는 등 병역 면탈 범행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들 전원은 앞서 이뤄진 검찰과 병무청 조사에서 범행을 모두 자백했다. 

기소된 병역면탈자 중에는 조씨 이외에도 프로 축구·골프·배드민턴·승마·육상·조정 등 운동선수 8명과 조연급 배우 송덕호(30)씨 등이 포함됐다. 

브로커 구씨는 2020년 2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신체검사를 앞둔 의뢰인과 짜고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을 수 있게 도운 혐의(병역법 위반)로 지난해 12월21일 구속기소된 바 있다. .

이어 병역면탈자 및 공범 47명이 추가로 기소되면서 이 사건의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이들 대부분은 처음에는 현역(1~3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다시 전시근로역(5급, 군복무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브로커 구씨로부터 상담을 받고 뇌전증 환자 행세를 하며 병역면탈을 시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일부는 이미 사회복무요원(4급) 판정을 받았지만, 병역 면제를 받기 위해 범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병역면탈자들은 구씨에게 컨설팅 비용 명목으로 각각 300만원에서 6000만원을 건넸다. 구씨는 이들에게서 6억3425만원을 받아 챙겼다. 

병역면탈자들은 유죄가 확정되면 병역판정을 새로 받고 재입대해야 한다.

뇌전증은 '간질', '간질병', '간전증' 등으로 알려진 질환으로, 알 수 없는 이유로 뇌의 특정 부분이 통제되지 않으면서 경련과 의식 장애 등 발작이 되풀이해 발생하는 병이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