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 김만배 손 들어준 법원…남은 대장동 수사도 ‘흔들’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09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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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1심 판결 직후 항소 의사 밝혀
25일 오전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가 지난해 11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속행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에 대한 수사가 시작된 이후 사실상 첫 판결에서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뇌물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곽 전 의원 아들이 '대장동 일당'에게 받은 50억원을 뇌물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검찰이 내세운 주된 근거인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남은 대장동 수사와 재판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9일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곽 전 의원이 전날 1심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은 직후 항소 의사를 밝혔다. 곽 전 의원의 혐의에 대한 입증이 충분히 되지 않았다는 판결에, 앞서 보여온 검찰의 자신감도 흔들리는 형국이다. 검찰은 판결문을 면밀히 분석한 후 항소장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이 사건의 핵심은 곽 전 의원 아들 병채씨가 2021년 4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에서 근무하다가 퇴사하면서 퇴직금과 상여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검찰은 50억원 중 소득세와 고용보험, 실질적 퇴직금 등을 제외한 25억원이 뇌물이라고 판단해 기소했다. 화천대유가 대장동 사업을 위해 꾸린 '성남의 뜰' 컨소시엄이 하나은행의 이탈로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곽 전 의원이 하나은행 측을 설득해주는 대가로 50억원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법원은 사회 통념상 50억원이라는 액수가 이례적으로 과다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알선, 대가성'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봤다. 50억원이 알선과 연결되거나 무엇인가의 대가로 건넨 돈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오히려 김씨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다른 일당들에게 비용을 전가하기 위해 한 말로, 거짓말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그동안 '허언이 낳은 끝없는 오해'라고 주장해온 김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곽 전 의원 재판 뿐 아니라 대장동 수사 전반에서 '스모킹 건'으로 여겨온 '정영학 녹취록'의 신빙성을 법원이 인정하지 않으면서, 검찰은 전략을 다시 짜야할 전망이다. 검찰은 정영학 회계사가 대장동 개발 사업 과정에서 김씨 등과 나눈 대화를 오랜 기간 녹음해온 이 녹취록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항소심에서 밝히고, 이와 부합하는 다른 증거 마련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대장동 개발 특혜 사건과 관련해 진술과 전언만 있을 뿐 물증이 없다는 지적이 계속 이어져왔다. 곽 전 의원 사건에서도 근거로 제시된 것은 대장동 일당의 진술 뿐이었다. 대장동 일당은 앞서 재판에서 '하나은행과 컨소시엄을 깨지지 않게 하는 대가로 곽 전 의원에게 50억을 주기로 했다'는 말을 김씨에게 들었다고 진술했다. 녹취록에는 김씨가 "병채 아버지(곽상도)는 돈을 달라고 한다. 병채를 통해서"라고 말한 부분이 있고, '대장동 일당'이 정치·법조인들에게 50억원을 주거나 약속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의 정황도 담겨 있다.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장동 일당'에게서 아들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상도 전 국회의원이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을 마친 후 법정을 나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은 대장동 수사와 재판에서도 검찰이 내세우는 주된 근거는 대장동 일당의 진술과 전언이다. 대장동 배임 혐의 재판에서도 비슷한 구도가 연출되고 있다. 검찰은 '정영학 녹취록'에서 김씨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에게 700억원을 주기로 약정했다'고 말한 부분 등을 혐의의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씨는 이 발언들 또한 모두 '허언이었다'라는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연루 의혹에 대해서도 대장동 일당의 폭로가 이어졌지만, 아직 그 내용을 뒷받침할 확실한 물증이 확보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석방 이후 진술태도를 바꿔 이 대표 관련 진술을 쏟아낸 유 전 본부장과 민간업자 남욱씨 등의 발언도 대부분 김씨에게서 "들었다"는 내용이어서 직접 증거가 될 수 없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민주당도 앞서 이 대표의 최측근인 정진상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이 기소되자 "전해들은 말만으로 죄를 만들어낸 '카더리 기소'라니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괴한 기소"라고 비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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