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평의 기습’…光州군공항 이전의 게임체인저인가, 들러리인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0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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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의 깜짝 등장이 판도 바꿔…‘광주 군공항’ 눈독 들이는 전남 지자체들
두 차례 주민설명회·민간 유치위원회 출범…사업 추진 10년 만에 ‘속도’
후보지, 무안→함평으로 선회?…함평군, 지자체 첫 유치의향서 제출 검토

지지부진하던 광주 군공항 이전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전남 함평이 군 공항 이전 유력 후보지로 급부상하면서다. 함평이 광주군공항 후보지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러나 민간 중심으로 군공항 유치위원회가 출범하는 등 다른 어떤 지역보다 이전 논의가 활기를 띠고 있다. 함평군은 빠르면 8월께 유치의향서 제출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전남 첫 지자체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함평의 기습’이다. 

함평이 국방부 적합성 검토를 통과할 경우 유력한 광주군공항 이전 제4 후보지로 급부상할 전망이다. 현재 군공항 예비 이전 지역으로 거론되는 곳은 전남 고흥·해남·무안·영광군이다. 국방부가 예비 이전후보지를 발표하지 않는 가운데, 국제공항이 들어선 무안은 소음 피해 등을 우려해 주민들이 ‘결사반대’하고 있다. 관망하고 있는 해남과 고흥 등은 논의가 잠잠하다. 함평이 광주 군공항 이전에 종지부를 찍는 ‘게임 체인저’가 될지, 아니면 단순 들러리 내지 훼방꾼이 될지 주목된다.

​지지부진하던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광주공항에서 이륙한 제1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가 광주 상공을 날고 있다. ⓒ연합뉴스​
​지지부진하던 광주 군공항 이전사업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광주공항에서 이륙한 제1전투비행단 소속 전투기가 광주 상공을 날고 있다. ⓒ연합뉴스​

자천한 함평, 이전 유력 후보지 ‘급부상’ 

광주군공항 이전사업은 오는 2028년까지 ‘기부 대 양여’ 방식에 따라 15.3㎢ 규모의 신공항 건설과 8.2㎢ 규모의 기존 공항부지 개발 등을 추진하는 대형프로젝트다. 이전사업은 2013년 4월 5일 ‘군 공항이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시작됐다. 광주 광산구 송정리 일원에 자리 잡은 군 공항을 빼내 전남지역으로 옮기겠다는 것이다. 이 사업의 근본 취지는 과거 허허벌판이었던 광주 광산구 송정리 일대가 해가 거듭할수록 인구가 유입되고 주택 상가시설이 자리 잡고, 인근 상무지구 신도시 개발이 완료되면서 극심한 소음 민원이 발생, 군 공항을 더 이상 현재 위치에 존치하는 것이 어렵다는데 있다. 

이는 전투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뿐만 아니라 항공기 사고 같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야 하는 공항의 입지로 이제는 부적합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전 대상 후보지인 무안과 해남, 고흥 등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이전부지 확보부터 벽에 부딪힌 상태다. 국방부와 광주시는 이전 사업 추진을 위해 2017년부터 주민설명회를 계획했다가 강한 반대에 밀려 한 걸음도 떼지 못해왔다. 

이런 답보상태에 물꼬를 터 준 게 함평이다. 첫 주민설명회가 지난해 11월 함평에서 열렸다. 군공항 이전사업을 추진한 지 9년 만이다. 함평지역 사회단체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지금까지 전남 시·군에서 단 한 번도 설명회를 갖지 못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돌파구가 마련된 셈이다. 함평은 8일 대동면사무소에서 두번째 설명회 겸해서 민간 중심 군공항유치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유치에 찬성하는 조직이 결성돼 본격적으로 주민 설득 활동에 들어가 유치를 향해 한발 더 내딛었다. 출범식을 연지 하루도 안 돼 군민 600여명이 유치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8일 오후 함평 대동면사무소 주민복지관에서 열린 두 번째 광주 군공항 이전 함평주민설명회에서 국방부와 광주시 관계자들이 사업 추진 절차와 주민지원사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8일 오후 함평 대동면사무소 주민복지관에서 열린 두 번째 광주 군공항 이전 함평주민설명회에서 국방부와 광주시 관계자들이 사업 추진 절차와 주민지원사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소멸위기 탈출할 수 있다면…광주서 눈총받은 군공항, 전남 지자체 ‘눈독’

함평의 적극적인 유치 움직임은 눈앞에 닥친 ‘지역 소멸’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게 중론이다. 함평은 인구 3만명대가 붕괴되기 직전인 데다, 이렇다 할 산업 동력이 없어 지역이 침체에 빠졌다. 이 때문에 인구 감소를 저지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 군공항 유치를 지역 발전의 동력으로 삼자는 의견이 나온다. 오민수(57) 대책위원장은 “우리 군보다 군세가 미약했던 무안과 영광 등은 날로 발전하지만 산업 기반이 부실한 함평은 계속 뒤처져 지역 소멸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겼다”며 “지역 발전을 위해서 신중하게 유치를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찬반 결과는 여러 차례 주민 설명회를 열어 이해득실을 따진 뒤 나올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음 문제만 아니면 지역에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군 공항을 굳이 마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5조7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사업비의 상당수가 토지보상과 건설비용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역에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가 기대된다. 거기에 더해 광주시가 이전 지역에 제시하는 주민지원사업비만 4500여억원에 이른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군공항 건설 단계에서만 5조원에 이르는 경제적 파급효과와 3만여명이 넘는 취업 유발 효과가 발생한다. 부대 주둔으로 인한 경제적 효과도 30년간 총 1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또 새로 건설되는 군공항에는 소음완충지역을 신설해 소음을 최대한 저감하고, 일정 소음이 넘을 경우 매월 현금 지급으로도 보상한다. 여기에 신규 산업단지 조성 등이 인센티브로 제시될 수도 있다.

군공항이 ‘지역 소멸 돌파구’라는 데 공감한 주민들이 늘고 있는 데다 군공항 이전 완공이 빨라야 10~15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함평군이 뭐라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외면하기 어려운 처지다. 또 함평은 현재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무안과 맞닿아 있는만큼 ‘군공항이 어디에 들어서든 소음피해가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무안에 군공항이 들어서 이익은 무안이 취하게 되고, 경계를 맞댄 함평은 고스란히 피해만 떠안게 될 최악 상황에 대비해 아예 유치전에 직접 플레이로 나서 지역발전을 꾀하는 게 낫다는 전략적 판단이 영향을 미쳤다.

함평은 8일 대동면사무소에서 두번째 주민 설명회를 열고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군공항유치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유치에 찬성하는 조직이 결성돼 본격적으로 주민 설득 활동에 들어가 유치를 향해 한발 더 내딛었다. 출범식을 연지 하루도 안 돼 군민 600여명이 유치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사저널 정성환
함평은 8일 대동면사무소에서 두번째 주민 설명회를 열고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군공항유치위원회도 출범시켰다. 유치에 찬성하는 조직이 결성돼 본격적으로 주민 설득 활동에 들어가 유치를 향해 한발 더 내딛었다. 출범식을 연지 하루도 안 돼 군민 600여명이 유치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시사저널 정성환

싹 달라진 풍경…“결사반대”→“득실 따져보자”

함평의 유치전 참전 이후 전남 지자체 차원의 관심은 더 이상 ‘낯선 풍경’으로 읽히지 않는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전남 지자체에서 금기어인 ‘군공항 이전’이란 단어만 나와도 거센 반발부터 나온 것과는 격세지감이다. 과거 군공항 이전은 지역민들 사이에서는 유치를 언급했다가는 지역을 팔아먹는 역적으로 몰리기 십상이어서 감히 입에 올리는 것을 꺼려했다. 오죽하면 2016년 국방부의 설명회 개최 요청에도 지난 7년간 묵묵부답이었을까. 

이전 후보지로 함평의 깜짝 등장은 군 공항 이전 사업의 판도를 바꿔 놨다. 그간 ‘혐오 시설’로 인식돼 유치를 꺼리던 과거와 달리, 지자체 주민들이 군 공항 유치 득실을 따져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군공항 이전에 국고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특별법 통과가 기정사실화되면서, 지역소멸을 앞둔 전남지역 일선 2~3개 지자체의 유치경쟁이 서서히 달아오르는 분위기다.

영광·함평뿐 아니라 그동안 유력 후보지로 꼽혀온 무안에서도 ‘무조건 반대’보다는 군 공항 유치에 따른 손익을 냉정하게 검증해보자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함평 주민설명회가 영향을 미쳤다. 지역정치권 한 관계자는 “인구 감소로 소멸에 처한 전남 지자체들이 생존을 위해서라도 군공항 유치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다”면서 “광주 군공항 이전은 시간의 문제일 뿐, 이전은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주민동의’ 변수…가시밭길 고비 넘길까

하지만 군공항 유치는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지금은 함평 유치가 순풍에 돛을 단 기세지만 지역민심이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마치 물 위에 뜬 배와 같아 양날의 검이다. 자칫 전북 부안군의 핵폐기장 갈등처럼 유치에 실패한 채 주민 찬·반으로 민심만 두 쪽으로 갈리는 최악의 결과를 맞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군공항 주변이 개발 제한구역으로 묶이고 소음 피해를 입는 등 기피시설이기 때문에 반대 여론은 불가피하다. 관이 직접 나서지 않고 광주 군공항 함평군유치위원회라는 민간조직이 앞장서 주민 설득 작업부터 나선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8일 오후 함평 대동면사무소 주민복지관에서 열린 광주 군공항 이전 주민설명회에서 오민수 함평군 번영회장이 번영회 차원에서 예상하는 함평군 관내 입지 후보지를 설명하며 군민의 올바른 여론 형성과 판단을 위해 국방부에 후보지 위치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8일 오후 함평 대동면사무소 주민복지관에서 열린 광주 군공항 이전 주민설명회에서 오민수 함평군 번영회장이 번영회 차원에서 예상하는 함평군 관내 입지 후보지를 설명하며 군민의 올바른 여론 형성과 판단을 위해 국방부에 후보지 위치를 공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그렇다면 함평은 군공항을 유치할 수 있을까. 함평군 관계자는 “군이 공식적으로 군공항 유치전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하지만 지역에선 함평군이 두 차례 주민설명회 개최를 후원하는 등 사실상 군공항 유치전에 뛰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 함평 관내 예상 후보지는 당초 유력 후보지로 꼽혀 인접 영광 염산면 주민들의 강한 반발을 샀던 함평 손불면 간척지 일대는 무안공항과 비행안전거리가 겹쳐 제외되고 대신 나산면과 소음 피해가 덜한 산악 지역이 군공항 이전 지역으로 유력하게 거론될 만큼 진척된 상황이다. 

함평군은 유치 의견이 다수일 경우 유치의향서를 제출하고, 찬·반 의견이 비등하면 여론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사실상 국방부의 예비 이전 후보지 선정에 앞서 지자체장의 유치의향서 제출이 선결조건인 만큼 타천으로 이름을 올린 다른 후보지보다 앞섰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군공항 이전을 위해서는 입지 적합성과 군사작전 적합성이 갖춰져야 하기 때문에 유치를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군공항 이전사업은 크게 예비 이전 후보지 선정, 이전후보지 선정, 이전부지 선정 등 3단계로 나눠 이뤄진다. 다만, 예비이전 후보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지자체의 ‘적극적 움직임’이 반영될 여지가 있다. 이전후보지 지자체의 주민투표와 유치신청을 거쳐 최종 후보지를 확정하게 된다. 

하지만 주민투표 찬성률이 50%를 넘지 못하면, 절차는 다시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그만큼 주민 동의가 군공항 함평 유치의 중요한 변수라는 방증이다. 무안 사례처럼 ‘기피 시설’로만 인식될 경우, 추진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날 주민설명회에 참석한 국방부 관계자는 “군 공항 이전은 주민의사가 절대적”이라며 “주민이 반대하면 군공항을 이전시킬 수 없다”고 못 박았다.

8일 오후 함평 대동면사무소에서 열린 광주 군공항 이전 설명회에서 한 주민이 “가장 유력 후보지인 무안군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함평군을 들러리로 세우는 것 아니냐”고 국방부와 광주시 관계자들에게 따져 묻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8일 오후 함평 대동면사무소에서 열린 광주 군공항 이전 설명회에서 한 주민이 “가장 유력 후보지인 무안군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함평군을 들러리로 세우는 것 아니냐”고 국방부와 광주시 관계자들에게 따져 묻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일부 “무안 들러리로 전락” 우려 제기

국방부가 2016년 8월 광주 군공항 이전 타당성 평가를 통해 무안과 해남을 후보지로 정하고, 작전성 평가 결과 고흥이 뒤늦게 후보지에 포함된 것도 함평군 유치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4개 지역 가운데 함평을 제외한 무안과 해남, 고흥에서는 광주군공항이전사업에 반대를 하거나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데 대해 일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함평에서 광주 군공항 유치를 위한 ‘군불’을 때고 결국 최종 이전 후보지에서 제외될 경우 민심만 분열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날 열린 2차 주민설명회에서 일부 함평 주민은 “가장 유력 후보지인 무안군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함평군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 것도 이 같은 우려의 연장선상으로 보인다. 또, 현재 열리는 주민설명회나 유치위가 해당 지자체가 아닌 시민사회단체 주관이어서 군공항 이전사업의 동력 확보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는 지자체의 유치의향서 제출 이후 진행될 예비후보지 선정 전까지는 어떤 것도 예단할 수 없다며 매우 신중한 입장이다. 함평군도 민감하고 조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군 관계자는 “사회단체의 요구가 있어 주민 설명회를 지켜보는 입장이다”며 “군공항 유치가 지역발전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자칫 아무런 성과 없이 상처만 입을 수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고 말했다. 그러나 함평이 이전 후보군에 포함되면 선택지가 넓어진다는 점에서 이전 사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함평의 기습적인 참전이 수년째 답보상태인 광주군공항 이전문제에 해결의 실마리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함평군이 유치의향서를 국방부에 제출할 시점으로 저울질하고 있는 오는 8월께가 사업 향배를 가늠할 1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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