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후계자’ 유영·김예림·이해인 말고 또 있다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8 11: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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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김연아’로 불리는 신지아, 2년 후 본격 시니어 무대 데뷔
김연아의 국내 최연소 세계주니어선수권 입상 기록 깨트려

김연아. 국내 피겨스케이팅 역사에서 절대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에 이은 2014 소치동계올림픽 은메달. 김연아가 국내에 남긴 것은 올림픽 메달만이 아니다. 김연아의 진짜 유산은 그의 뒤를 이어 계속 세계 피겨에 도전하고 있는 후배들이다. 이른바 ‘김연아 키즈’로 불리는 그들은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덩달아 그들의 성과에 대해 ‘김연아 이후 최초’라는 말이 계속 흘러나온다. 

ⓒAP 연합
2월10일 피겨 4대륙 선수권에서 우승한 이해인(가운데)과 2위 김예림(왼쪽) ⓒAP 연합

4대륙 우승 이해인 등 ‘김연아 이후 최초’ 쌓여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피겨 여자 싱글에 출전했던 이들은 유영(19)과 김예림(20)이었다. 카밀라 발리예바(러시아)의 도핑 양성 반응으로 어수선했던 당시 유영은 6위, 김예림은 9위에 올랐다. 유영은 특히 김연아 이후 올림픽에 출전한 한국 여자선수 중 최고 성적을 냈다. 유영 이전의 최고 기록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한 최다빈(23, 7위)이 보유 중이었다. 유영은 올림픽 직후 열린 2022 세계선수권 때도 5위에 올랐다.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이기는 했으나 당시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았다.

김예림은 2022~23 시즌 동안 힘을 냈다. 올림픽에서 자신감을 얻은 게 컸다. 국제빙상경기연맹(ISU) 그랑프리 3차 대회 은메달, 5차 대회 금메달을 따내면서 역시나 김연아 이후 처음으로 그랑프리 파이널 무대에 진출했다.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로 러시아 선수들이 출전하지 않은 영향이 있기는 했으나 또 다른 피겨 강국, 일본 선수들과 당당히 겨뤄 일궈낸 성과였다. 김예림은 지난 1월 열린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김연아는 현역 시절 유니버시아드대회에 출전한 적이 없다. 

그리고, 2월 중순 또 다른 ‘김연아 이후 최초’ 기록이 나왔다. 이번에는 이해인(18)이 해냈다. 이해인은 4대륙선수권대회(유럽 외에 4대륙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난해에는 은메달을 따냈는데 올해 한 계단 더 올라서며 ISU 주관 메이저대회 첫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한국 여자 싱글 선수의 4대륙선수권 우승은 2009년 김연아 이후 14년 만이다. 함께 출전한 김예림은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이 금·은을 휩쓴 것이다.

이해인은 주니어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던 선수다. 만 14세이던 2019년 9월 ISU 주니어 그랑프리 3차, 6차 대회에서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2021년 세계선수권 때는 한국 피겨 최연소 톱10(10위)의 기록을 썼다. 놀라운 사실은 당시 세계선수권이 이해인의 시니어 데뷔 무대였다는 점이다. 이해인의 활약 덕에 한국은 베이징올림픽 출전 티켓을 두 장 확보할 수 있었다. 

출전 티켓은 땄지만 정작 이해인은 올림픽 무대에 서지 못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부진하면서 베이징 무대는 선배들인 유영과 김예림에게 돌아갔다. 절치부심한 이해인은 더욱 훈련에 매진했고 기어이 4대륙선수권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다. 쇼트프로그램의 아쉬움(6위)을 달래며 이뤄낸 극적인 역전 우승이었다. 

이해인은 3월에 열리는 세계선수권(3월20~26일·일본 사이타마)도 벼르고 있다. 시니어 데뷔 해 10위에 이어 2022년 7위를 기록했던 이해인은 올해 대회에서는 톱5 진입을 노린다. 러시아 선수들이 2년 연속 출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입상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해인은 베이징올림픽 동메달리스트 사카모토 가오리(23), 2022 ISU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자 미하라 마이(24) 등 홈그라운드의 일본 선수들과 순위를 다투게 된다. 이해인은 “4대륙선수권대회보다 더 열심히 준비해 세계선수권 때도 할 수 있는 것을 다 보여드리고 메달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1월8일 경기도 의정부 실내빙상장에서 열린 국가대표 2차 선발전 겸 제77회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신지아가 완벽한 연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중학생 신지아, 쟁쟁한 선배들 제치고 국가대표 선발전 1위

사실 현재 국내 피겨 여자 싱글 ‘넘버 원’은 엄격히 말해 이해인도, 김예림도, 유영도 아니다. 객관적 성적만 놓고 보면, 2008년 3월19일생인 중학생 신지아 선수다. 신지아는 2023~24 국가대표 1차 선발전뿐만 아니라 2차 선발전에서도 우승했다. 나이답지 않은 침착한 연기로 쟁쟁한 실력자들을 꺾으면서 세대교체 신호탄을 쐈다. 

신지아 또한 일찍부터 ‘싹’이 보였다. 2022년 ISU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깜짝’ 은메달을 따냈다.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가 입상한 것은 김연아(2005년 은메달, 2006년 금메달) 이후 16년 만이었다. 입상 당시 신지아는 김연아보다 어려 국내 최연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입상 기록마저 깼다.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도 2위를 기록하며 김연아 이후 17년 만에 시상대에 섰다. 신지아는 지난 1월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점프 후 펜스에 부딪혔는데도 침착하게 나머지 연기를 소화하는 강심장을 보여줬다. 신지아에게 ‘리틀 김연아’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다. 

신지아는 당당히 선발전 1위를 했지만 나이 때문에 2024년까지 시니어 무대에 설 수 없다. ISU가 지난해 6월 시니어 대회 출전 연령을 2023~24 시즌부터 만 16세, 2024~20 시즌부터는 만 17세로 올렸기 때문이다. 발리예바를 계기로 나이 어린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문제가 불거지면서 선수 보호를 위해 ISU가 내린 결정이다. 이 때문에 신지아는 한동안 주니어 무대에서 뛰어야만 한다. 2026년 이탈리아 밀라노와 코르티나담페초에서 열리는 올림픽 시즌이기도 한 2025~26 시즌에야 시니어 무대에 데뷔할 수 있다.

신지아는 2월27일부터 3월5일까지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리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 출전해 2년 연속 메달에 도전한다. 신지아는 “지난해엔 은메달을 획득했는데, 올해 대회에선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을 모두 클린 연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금메달 의지를 다지고 있다. 김연아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때 은메달을 먼저 딴 뒤 금메달을 목에 건 바 있다. 

국내 피겨 환경은 아직도 척박하다. 선수가 100여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김연아가 개척해낸 길을 따라 새로운 얼굴들이 계속 등장한다. 임은수, 김예림, 유영의 뒤를 이어 이해인, 김채연, 신지아에 이르기까지…. 이들은 ‘김연아 이후 최초’라는 수식어를 품고 나름의 성과까지 내고 있다. 피겨 최강국인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 제재와 맞물려 시상대에 올라서는 일도 잦아졌다. 덩달아 자신감도 부쩍 상승하고 있다. 이해인 등은 트리플악셀까지 거듭 연습 중이다. 김연아 키즈의 더 큰 도약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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