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 전쟁이 불러온 역설…에너지 전환 인식 커져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8 10: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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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화석연료 의존도 컸던 동유럽, 재생에너지 관심
체코 에너지 전문가 마르틴 이루셱 “자동차 산업 등 경제에 대한 우려가 관건”

지난해 초 시작된 러시아의 전면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세계의 에너지 시장은 크게 요동쳤다. 특히 천연가스 총 수입량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했던 유럽 국가들은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이번 전쟁은 그동안 에너지 시장 내부의 안정성에만 관심이 높았던 서유럽에 에너지 안보의 중요성 및 에너지 공급원 다각화에 대한 인식을 높인 계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동유럽은 어떨까.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처졌던 재생에너지로의 신속한 전환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러시아의 침공 직후 ‘RePower EU’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2030년 전까지 러시아 화석연료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했다. 현재 러시아의 가스는 제재 대상인 석유와 달리 가격 상한선이 부과된 것 외에 공식적인 제재는 없지만, 12~20% 정도만 유럽에 공급되고 있다. 

ⓒREUTERS
2022년 9월11일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TEC-5 화력발전소의 모습 ⓒREUTERS

2030년 재생에너지 목표를 45%로 상향 조정한 EU는 최근 프랑스를 제외한 회원국 모두가 2020년 재생에너지 목표(20%)를 달성한 바 있다. 2020년 기준으로 보면, 인구가 적고 자연조건이 유리한 스웨덴(60%), 핀란드(44%), 아이슬란드(100%) 등 북유럽 국가들이 재생에너지 전환에서 가장 앞서고 있다. 동유럽권에서도 햇빛이 많고 해안·산 등이 많은 크로아티아(31%), 슬로베니아(25%) 등은 목표를 달성했다. 반면 체코&슬로바키아(17%), 헝가리 (14%), 폴란드(16%) 등은 에너지 집약적인 제조업 비중이 높아 에너지  전환이 더딘 형편이다. 

체코는 동서 유럽 및 남북 유럽을 잇는 파이프라인과 전력망의 중간지점에 위치해 유럽 국가 간 에너지 이동의 조력자(facilitator) 역할을 해오고 있다. 시사저널은 현지 에너지 전문가인 마르틴 이루(Martin Jirušek) 박사에게 동유럽의 현 정세와 시각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그는 현재 체코 브르노시 소재 마사리크(Masaryk)대학 정치국제연구소 연구원이자 유럽&국제관계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현재 체코 언론사인 ‘정치저널’에서도 편집주간으로 활약하고 있다.

ⓒMartin Jirušek 제공
마르틴 이루 체코 마사리크(Masaryk)대학 교수 ⓒMartin Jirušek 제공

“러시아 의존도 탈피하고 환경도 살리는 일석이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래 EU는 에너지 공급처 다각화와 탈탄소 노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동유럽과 서유럽 간 지역별로는 어떤 관점의 차이가 있을까.  

“전쟁 발발 전까지는 동서 유럽 간 에너지 안보에 대한 시각 차이가 컸다. 동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역사적 관계 때문에 이를 항상 지정학적 렌즈를 통해 바라본 반면, 서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시장 내부의 작동 여부와 안정성에 초점을 맞추고 공급 국가에 대해선 무관심했다. 즉 러시아가 굳이 자국의 경제적 이익에 마이너스를 초래할 ‘에너지의 정치적 무기화’에 나설 이유가 없다며 이런 경고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최근 신문에 ‘지정학이 돌아왔다’는 헤드라인이 자주 보이는데, 나는 ‘지정학은 항상 존재해 왔다’고 판단한다. 러시아는 항상 동유럽을 자신의 정치적 세력권으로 여겨왔기 때문이다. 전쟁 이전에 동구권에서는 탈탄소화가 다소 인기 없는 정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화석연료로부터 독립하고, 탈탄소 경제로 전환하며, 기후변화에도 대응하는 친환경적 정책이 부각되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아 의존도 탈피하고 환경도 살리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결론적으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환경적 측면과 지정학적 측면에서 유익한 에너지 전환의 필요성을 동서 유럽 모두에 크게 각인시킨 촉매제 역할을 한 셈이다. 지금은 양측이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현재 동유럽의 에너지 전환은 어떤 상황이며, 중요한 이슈들은 무엇인가. 

“동유럽은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고 경제와 산업도 에너지 집약적이다. 석유 생산국인 루마니아를 제외하고는 천연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로 수입에 의존해 왔다. 헝가리는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하고 있고, 이는 자국 내에서 정치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발칸반도 역시 화석연료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특히 석탄은 공해 문제로 큰 이슈가 되고 있다. 곧 천연가스로 전환하려 하고 있는데 앞으로 이것도 이슈가 될 것 같다. 하지만 발칸반도는 해안·언덕·햇빛 덕에 태양광과 풍력발전에서 잠재력이 크다. 

이 지역 에너지 전환의 장벽은 인프라 부족과 국가 간 연결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과거 러시아산 석유를 수입하는 석유 네트워크는 동유럽에 공급하고자 건설되었지만, 천연가스 네트워크는 러시아에서 서유럽에 공급될 목적으로 1960~70년대에 지어졌다. 그래서 인프라는 동서 구조로 돼있고, 지역 간 연결성이 좋지 않다. 냉전이 끝나고 나서야 동유럽 국가들이 파이프라인을 연결하기 시작했는데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 최근까지 발트해 국가들은 유럽의 가스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았고 체코도 1997년이 돼서야 서유럽의 가스관에 연결되었다. 2009년 에너지 위기가 불가리아에 큰 악영향을 끼친 것도 러시아의 공급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공급이 중단되었을 때 수십만의 시민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 물론 지금은 대안적 공급 루트를 개발해 상황이 나아졌다.”   

체코의 최근 재생에너지 점유율을 보니 평균 17.3%에 불과하다. 에너지 전환에서의 큰 장벽이 있다면? 

“체코는 2020년 EU 재생에너지 목표를 달성했는데 이는 2008~12년 태양광의 붐 덕분이다. 2009년 태양광 가격이 아주 낮아져 많은 투자가 몰렸다. 체코 정부도 재생에너지를 위한 대대적인 재정 지원을 했다. 그러자 ‘정부 보조금이 너무 높으니 분명히 부정부패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여기저기서 제기되었으며, 심지어 일부 정치인은 이런 공격으로 명성을 얻기도 했는데 스캔들이 다 사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정부 지원이 줄어들었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도 멈춰 2030년 목표 달성이 어렵게 됐다. 현 연정 정부가 업계 지원을 위한 법 개정을 약속하고 있지만 아직 정치권은 재생에너지에 큰 지지를 보내지 않고 있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체코가 자동차산업 등 제조업의 비중이 아주 높은 국가라는 점이 있다. 체코의 1990년대 산업 모델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숙련된 인력을 가진 제조업 기반이었고 이는 주변 국가인 슬로바키아·폴란드·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전환으로 현재 자동차 산업은 큰 변화를 겪고 있고, 이 여파가 해외 공장 이전 등으로 연결될까봐 불안해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국 경제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에 2035년부터 EU에서 내연기관 차량 신차 판매를 금지하기로 한 법안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다. 현지에서는 큰 정치적 이슈였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는 체코에서 향후 르네상스 시기를 맞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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