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동의간음죄’ 논란이 불러온 ‘성적 자기결정권’의 첫걸음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1 13: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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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에선 “성폭력 무고율 양산될 것” 우려…강간죄 요건, ‘가해자 폭력·협박’ 아닌 ‘피해자 동의 여부’가 세계적 추세

최근 여성가족부가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7년)으로 형법 제297조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비동의간음죄’로 개정하겠다고 했다가 법무부의 반대로 9시간 만에 철회해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비동의간음죄’란 피해자의 동의 없이 성행위가 일어난 경우, 폭행과 협박이 없어도 강간이 성립된다는 것이다.

ⓒ류호정의원 페이스북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류호정 정의당 의원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비동의간음죄 개정을 놓고 질의·답변하고 있다. ⓒ류호정의원 페이스북

직접적인 폭력과 협박 없는 강간이 71.4% 

‘강간’이란 말 그대로 ‘상대의 의사에 반하여 간음하는 것’이다. 정의 자체에 ‘상대가 원하지 않았는데도’란 구성 요건이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여기에 ‘피해자가 항거하지 못할 폭력과 협박’이라는 문구를 집어넣음으로써 피해자가 강간 피해를 입증하려면 엄청난 폭력이나 협박을 당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우리는 강간을 제외한 어떤 상해죄에도 피해를 증거하기 위해 ‘항거하지 못할 폭력과 협박’을 전제하지 않는다. 오로지 ‘강간’이라는 범죄에만, 죽을 힘을 다해 항거하지 않으면 ‘화간’이라는 의식이 아직도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실제 강간 현장에서는 물리적인 폭력이나 협박이 없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21년 발표한 연구(비동의간음죄의 비동의 판단기준 마련을 위한 국내외 사례연구)에 따르면, 71.4%가 직접적인 폭력과 협박이 없는 강간이었다. 항거하지 못할 만한 폭력이나 협박 없이도 강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즘처럼 여성들에게 이성과의 관계에서 안전에 대한 공포심리가 확산되어 있다면 강간은 더 쉬울 것이다. 강간 현장에서 대다수 여성은 이미 폭력적인 상황에 압도되어 공황 상태가 되고 아무런 항거를 못 하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강간죄의 구성 요건을 ‘가해자의 폭력과 협박’이 아니라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로 정하는 것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 추세이며, 개인의 성평등과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선진국가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이미 유엔고문방지위원회와 여성차별철폐위원회에서는 수차례에 걸쳐 우리나라에 ‘피해자의 자유로운 동의 여부를 중심으로 강간을 정의하도록 입법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영국에서는 2003년 성범죄법을 전면 개정하면서 ‘동의 규정’을 신설해 ‘상대방의 동의를 위한 확인을 시도했는가’를 중하게 본다. 설령 피해자가 ‘그때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해서 강간죄가 자동으로 성립되는 건 아닌 것이다. 이 외에도 독일은 ‘피해자의 명확한 의사표현 유무’를 심각하게 따진다. 스웨덴은 더 나아가 ‘상대의 동의 확인’을 하지 않았을 경우 ‘과실 강간죄’를 신설하기도 했다. 

법무부는 ‘비동의간음죄’로의 개정은 ‘범죄를 의심받는 사람이 상대방의 동의가 있었음을 증명하기 어려워 억울하게 처벌받는 도구가 될 것’, 즉 ‘성폭력 무고율이 양산될 것’이라며 반대의견을 밝혔다. 결국 상대가 ‘성관계를 동의하지 않는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며 걱정하는 것인데, 엄밀히 말하면, 그렇다면 이제까지는 상대의 동의를 명확하게 확인하지도 않은 채 성관계를 그렇게들 해왔다는 말인가?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일방적으로 성행위를 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동의 없이 간음하는 행위를 강간죄 구성 요건의 기본으로 하고, 폭력이나 협박이 있었다면 가중처벌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속마음’이라 어렵다는 동의 여부 확인은 이미 ‘비동의간음죄’를 선택하고 있는 나라들의 선례를 참고하면 될 일이다. 물론 사법부가 성인지 감수성을 제고해야 하고, 사건의 맥락을 읽는 힘을 기르는 등 일의 양이 많아질 테지만 말이다. 

 

‘성폭력 무고죄 고소’ 기소율은 7.6% 불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2019년 발표한 대검찰청 사건처리기록 분석 자료에 따르면 성폭력 무고죄 고소 사건의 기소율은 7.6%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비동의간음죄’가 무고율을 양산할 거라는 것은 괴담에 불과하다. 오히려 법전문가들이 돈이 되는, 가해자들을 위한 변호를 위해 앞다퉈 성범죄 사건을 맡으려 한다는 신문 보도도 있는 형편이다. 이런 속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법무부가 ‘억울한 무고율’을 앞세워 반대를 하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양성평등 시각에서도 ‘동의 여부’를 강간죄의 구성 요건으로 삼는 것은 오히려 남성 피해자들에게 유리하다. 비록 강간 피해자는 거의 여성들이지만 말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 억울한 무고를 걱정하며 “성관계 시에 ‘예, 아니요’ 의사표현도 제대로 못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성인 남녀를 평가절하한다”며 개정안에 반대했다. 상대의 동의를 알아보는 방법은 단연 말로 물어보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가 마주치는 현실에서 상대방에게 성행위의 동의 여부를 명확하게 표현하기를 어려워하거나, 그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않는 성인 남녀가 무수히 많은 것도 사실이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성적 동의’를 가르칠 때 자주 하는 연습이 있다. 두 사람씩 짝을 지어 한 사람이 상대의 어깨에 손을 올려도 되느냐고 묻는다. 상대는 거절한다. 대단한 스킨십도 아니고, 그저 어깨에 손을 잠깐 대도 되겠느냐고 묻고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상대가 미리 거절할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거절당한 사람은 불편했다고 말한다. 심지어 좀 기분이 나빴다고도 한다. 거절한 쪽에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불편해하는 학생이 적지 않다. 이렇게 사소한 거절도 하거나, 당하기가 쉽지 않은데 정말 사적인 성관계의 제안을 받았을 때 수락과 거절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특히 연인관계나 위계, 또는 심리적·경제적 의존관계일 때 거절은 더욱 더 어렵다. 

성적 동의 원칙은 ‘No means No’이며 스웨덴은 더 나아가 ‘Yes means Yes’를 채택하고 있다. 거절하면 하지 말아야 하고, 더 나아가 자유로운 상황에서 능동적으로 ‘하고 싶다’고 해야 비로소 ‘동의’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성적 동의’는 ‘No means all Yes’로 받아들여져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싫다’고 하면 여자라서 수줍어하거나 튕기는 거라고 하고, ‘침묵’은 동의이며, ‘예’는 당연히 동의다. 그래서 성적 동의는 연습이 필요하다. ‘성적 동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훈련을 통해 익숙해질 수 있는데 우리 사회는 아이의 의사를 전적으로 존중하는 양육문화가 일천하기 때문이다. 양육자를 포함해 누구도 ‘아이의 승낙’ 없이는 몸을 만질 수 없고 접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성교육도 잘되어야 하지만, 사회 분위기가 개인의 사적 영역과 의견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법의 정의란 동의하지 않았는데도 강제로 자신의 성적 권리를 침해당한 피해자 보호에 더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을까? 다수의 선량한 남성에게 ‘잠재적 가해자’의 오명을 씌우는 ‘드러난 가해자’의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의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할 테다. 자신의 힘을 이용해 강간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제력과 명예심을 갖고 여성을 존중하는 그런 진정한 남성다움을 가진 훌륭한 남자들이 나서줄 때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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