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김정은 유고 때 권력은 김여정에 더 가까워”
  • 이영종 뉴스핌 통일전문기자(북한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19 10: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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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애와 김여정 관계를 후계 대립 구도로 보긴 어려워
김여정, 어린 후계자의 후견인 역할 할 수도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후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지난해 11월 김정은이 딸 김주애를 화성-17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장에 동행하면서다. 몇 차례 공식 석상 등장에 이어 2월8일엔 김주애가 군 창건 75주년 열병식 주석단에까지 오르자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단계로 치달으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주애 띄우기가 김정은 후계 체제 구축과 관련이 있느냐 아니냐에 쏠리던 논쟁은 북한 권력 내부의 상황이나 후계자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과제 등 구체적인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후계자 김주애’를 어느 정도 염두에 둔 논쟁이다. 아직 10세 안팎의 어린 나이인 점을 고려할 때 후계자 문제보다는 김씨 일가의 이른바 ‘백두혈통’ 부각이나 김정은의 이미지 정치와 관련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점차 후계와의 관련성에도 주목하는 분위기다. 

2021년 10월11일 평양 3대혁명 전시관에서 열린 국방전람회에 참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 뒤에서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박수를 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애 띄우기는 김여정의 선전·선동 전략”

김주애가 등장하면서 가장 먼저 관심을 끈 건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의 존재감이다. 김일성광장 열병식의 경우 북한 관영매체가 공개한 사진은 물론 조선중앙TV의 중계화면에도 김여정은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이 행사장 귀퉁이에 희미하게 잡힌 한 여성을 ‘김여정’이라고 추정해 보도할 정도다.

하지만 김주애에게 초점을 맞추기 위한 차원일 뿐 일부러 김여정을 배제했다고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있다. 지난해 11월 김주애 첫 등장을 전후해 김여정이 오빠의 지근거리에서 의전과 보좌 역할을 해오면서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다. 김여정이 총괄하고 가수 출신 당 부부장인 현송월이 현장 행동대장 역할을 하면서 의전·경호 담당 인력은 물론 노동당과 군부의 고위 간부까지 챙기는 모양새다.

오히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김주애와 관련한 일련의 이미지 부각이나 연출이 김여정의 기획에 의한 것이란 분석이 합당해 보인다. 한 고위 탈북인사는 “백두혈통인 김여정을 공개하는 일을 당 간부나 노동당에서 건의하거나 결정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김여정이 선전·선동 차원에서 치밀하게 고안해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9월 북한 정권 수립 기념일 축하공연에 등장한 한 어린 여자아이를 두고 ‘김정은·리설주의 딸’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관심이 증폭된 점에 착안해 김주애 띄우기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또 북한이 김주애를 공개하기에 앞서 또래의 아이에게 초점을 맞춰 반응을 살피는 사전 정지작업을 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요컨대 김여정과 김주애의 관계를 후계 관련 대립 구도로 보긴 어렵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서 김주애의 생모인 리설주를 둘러싼 권력암투설도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리설주 입장에서 자기 소생을 권력 후계자로 키운다는 걸 당연시할 수 있지만 아직 드러난 경쟁 상대가 없고, 1남 2녀로 파악되고 있는 자녀들도 후계구도를 구체화하기에는 너무 어린 상태다. 유사시 어린 후계자의 후견인 역할을 할 김여정과 대립각을 세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북 정보 당국은 김정은 유고 시 김여정이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으로 여전히 판단하고 있다. 북한은 2016년 1월 열린 노동당 8차대회에서 당 규약을 대폭 개정했는데 당 총비서 아래 제1비서직을 신설한 바 있다. 총비서 김정은에 이은 2인자 자리를 두는 조항을 만든 것을 두고 김여정을 염두에 둔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앞서 2020년 4월 김정은의 유고 사태는 김여정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걸 깨우쳐 줬을 것으로 보인다. 그해 4월11일 노동당 정치국 회의를 주재한 김정은은 김일성 생일인 같은 달 15일 할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 참배를 빼먹으면서 건강 이상설이 나왔다. 유고설을 불식시키며 5월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을 공식 수행한 박봉주 정치국 상무위원, 조용원 당 제1부부장, 김덕훈·박태성 당 부위원장, 김재룡 내각 총리(이상 당시 직책) 등 6인방 가운데서도 당시 오빠의 정상적이지 못한 컨디션을 챙기는 김여정은 단연 돋보였다.

김여정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실패에 따른 문책성 조치로 한동안 활동이 뜸했지만 든든한 오빠의 후광을 업고 활동 보폭을 넓혀왔다. 이런 모습은 “믿을 건 혈육뿐”이란 생각을 갖고 있을 오빠의 후견이 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2020년 10월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을 말을 타고 등정함으로써 북한 세습정권을 이어가는 주축임을 과시했다.

왼쪽부터 김일성 아들 김평일,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김정은 친형 김정철 ⓒ연합뉴스
왼쪽부터 김일성 아들 김평일,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김정은 친형 김정철 ⓒ연합뉴스

김정은, ‘총성 없는 전쟁’ 거치며 권력 잡아

물론 북한 체제에서 권력 장악을 위한 파워게임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김일성이 반대파를 제거하면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된 1958년 종파 사건이 외부와의 싸움이었다면, 그 후계 자리를 두고 동생 김영주와 아들 김정일, 김평일이 벌인 권력다툼은 가계 내부 암투의 서막이었다. 특히 절대권력자 김일성의 동생 김영주와 아들 김정일 간 후계 다툼은 치열했는데, 결국 주석궁 주인 자리는 동생이 아닌 아들에게로 향했다. 김정일이 권력을 장악한 후 김일성 후처인 김성애는 은둔의 삶을 강요받았고, 평일·영일·경진 등 자신의 세 자녀는 오랜 해외 체류 생활을 감내해야 했다.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으로 정식 등극한 김정일은 더욱더 복잡한 후계군 관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한때 김정남으로의 장자계승을 생각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 28년간 살면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고용희와의 사이에 낳은 정철·정은 쪽에 마음을 둔 것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김정은이 본격 등장하기 전에는 안개 구도 속에서 김정일의 여동생 김경희-장성택 부부가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김정은이 권력을 거머쥐는 과정은 총성 없는 전쟁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정은이 집권 5년 만인 2017년 2월 이복형 김정남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독살 테러로 숨지게 한 데서도 엿볼 수 있다. 또 리제강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나 현철해 국무위 고문 등 자신의 후계 지위를 다지는 데 결정적 힘을 보탠 원로들의 장례식 등에 쏟는 김정은의 각별한 관심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의 후계구도는 아직 안갯속이다. 무엇보다 그의 나이가 39세에 불과해 아직 정식으로 후계자를 지목하거나 거론하기엔 이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부터 평양 주석궁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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