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집 밖은 위험해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0 08:05
  • 호수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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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가난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썩 풍족하지도 않았던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움직이면 죄다 돈이다.” 집을 나가 돌아다니다 보면 필시 돈이 들게 되고, 그러다 보면 지출이 늘어날 수밖에 없음을 주문처럼 일러주는 조언 혹은 경고의 말이었다고 기억한다. 도시 생활을 하면 필연적으로 차를 타고 움직이는 일이 생기는데, 이동수단이 자가용차든 대중교통이든 비용 지출은 필수적이다. 그러니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 그대로 집 밖은 ‘(가계 운용에) 위험한’ 곳이 된다.

그렇다고 마냥 집 안에만 틀어박혀 지낼 수 없는 것은 대다수 사람의 숙명이다. 일하기 위해 출근을 해야 하고 약속을 지키러 외출하기도 해야 한다. 밖에 나갈 일이 마땅히 없어 집에 머무른다고 돈이 들지 않는 것도 아니다. 적정한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 전기를 쓰든 가스를 쓰든 냉·난방장치를 가동해야 하고, 그러면 또 돈이 나간다. 이렇게 추위나 더위에 맞서기 위해 쓰는 돈은 달리 말하면 ‘생존비용’이나 다름없다. 무슨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단지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쩔 도리 없이 쓰는 비용이기 때문이다. 때론 이 돈을 감당하지 못해 사람들이 병들고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 최근 전기·가스 요금 문제가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생존비용이 한꺼번에 뛰어오르면 누구든 눈앞이 캄캄해지고 공포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공공요금 국가책임 강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16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인근에서 열린 '공공요금 국가책임 강화 촉구 기자회견'에서 관련 손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공공요금은 여건에 따라 언제든 오르내릴 수 있다. 상황에 맞게 탄력적으로 조정해 적정 수준으로 맞춰지면 된다. 문제는 그 수준이 왜 이번 경우처럼 아무런 속도 조절도, 시차 조정도 없이 ‘줄줄이 인상’으로 나타났느냐는 것이다. 지금 나오는 탄식과 비판도 대부분 여기에 맞춰져 있다. 2월5일 발표된 지난 1월의 전기, 가스 및 기타 연료물가지수가 135.75로 전년 같은 달보다 31.7% 올라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는 뉴스도 충격적이지만, 그 요금들이 연타로 이어져 한꺼번에 올랐다는 점이 더 위압적이었다는 의미다.

정부는 이번 인상으로 타격을 입을 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최대 59만원까지 지원한다고 발표했지만, 그런 대응으로 국민의 고통이 단박에 해소되기는 어렵다. 현금성 지원이 지니는 한계가 분명한 데다, 이 겨울이 끝난다고 문제의 본질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겨울은 불과 9개월여만 지나면 다시 닥칠 터이고 냉방 비용이 필연적으로 따르는 여름 무더위도 기다리고 있다. 냉·난방 요금뿐만이 아니다. 연료를 써서 조리를 해야 하는 음식점 등 자영업자들은 매일같이 비용 압박과도 싸워야 한다. 공공요금의 줄줄이 인상은 집 밖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시는 시기를 늦추기는 했으나 이미 버스·지하철 요금 인상을 예고해둔 상태다. ‘움직이면 돈이고, 집 밖은 위험하다’는 명제가 바로 눈앞의 현실로 다가와 있다는 얘기다.

공공요금 관리는 ‘전 정부 탓’으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현 정부의 실력과 관련된 사안이다. 그 요금들이 국민의 생명과도 직결된 생존비용이라면 더욱더 집중해서 관리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당장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땜질 처방만 해서는 안 되고, 취약계층 주택 단열 지원 등 근본적인 대책을 고심해 만들어내야 한다. 이 겨울이 가기 전에 요금을 어쩔 수 없이 체납해 전기·가스 공급이 차단된 채 고난의 나락으로 내몰리는 사람이 늘어날까 걱정이 깊어지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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