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원로그룹 일각 “당 운영 이대로는 안 돼” 우려도
“우리의 적은 분열이다. 보수는 분열로써 패배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3일 제주 퍼시픽호텔에서 열린 제3차 전당대회 첫 합동연설회에서 “반목과 갈등의 시대를 종식하고 단결과 전진의 국민의힘을 만들자”며 이같이 강조했다. 후보 간 경쟁이 분열로 이어지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정 위원장의 이 같은 당부에 김기현·안철수·천하람·황교안 당대표 후보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갈등에 선을 긋고 단결을 강조한 정 위원장. 그러나 정 위원장의 거듭된 요청에도 캠프 간 경쟁이 과열될 조짐이다. 김 후보를 둘러싼 ‘울산 땅투기 의혹’부터 안 후보를 겨냥한 ‘민주당 DNA’ 논란 등으로 전당대회가 얼룩지면서다. 이에 당 일각뿐 아니라 국민의힘 원로그룹에서도 전당대회 후유증, 나아가 당 지도부의 리더십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與野 저리가라? 심화된 ‘金-安 갈등’
당권 경쟁은 늘 치열하다. 그리고 총선을 앞두고 치러지는 전당대회는 특히 더 과격하다. 지난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는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 구도로 치러졌음에도, 박용진 후보 등이 ‘사법리스크’를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논란이 일었다.
다만 전당대회의 전례를 감안해도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선을 넘고 있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어대김’(어차피 대표는 김기현) 대세론을 흔들기 위해 안철수‧천하람‧황교안 캠프의 ‘총공세’가 시작되면서다. 이 과정에서 마치 대통령 선거 본선을 방불케 하는 ‘네거티브’(음해성 발언)가 줄을 잇는 모양새다.
도화선은 황 후보가 쏘아올린 이른바 ‘김기현 울산 땅 투기 의혹’이다. 황 후보는 김 후보가 ‘권력형 토건비리’에 연루됐다고 비판하고 있다. KTX 연결도로가 원안과 달리 김 후보가 소유한 땅 쪽으로 변경됐는데, 그 배경에 ‘김 후보 권력’이 의심된다는 게 황 후보 측의 주장이다.
황 후보는 20일 입장문을 통해 “2007년 8월2일 착수보고를 할 때 김 후보의 땅은 노선 검토대상이 아니었지만, 같은 해 10월에 김후보 땅에 터널 입구 설치 노선을 제시했고, 11월30일 중간보고 시 김 후보 땅 노선이 기본노선으로 바뀌었다”며 “결국 12월12일 최종보고 시 이 같은 변경안이 확정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후보의 KTX 역세권 연결도로 변경 문제는 땅 투기 문제가 아니라 권력형 토건비리 문제”라며 사퇴를 촉구했다.
김 후보 측이 “사실무근”이라며 반발하고 있지만, 안 후보와 천 후보도 해당 의혹에 불을 댕기는 모습이다. 안 후보는 “김 후보가 (의혹을) 털지 못하면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이기기 힘들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고, 천 후보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는 게 분명하다”며 검증을 예고했다.
경쟁 후보들의 집중 공세가 이어지는 가운데 ‘색깔론 공방’까지 벌어진 모양새다. 김 후보가 안 후보에게 ‘사상 검증’을 요구하면서다. 안 후보가 이른바 ‘민주당 DNA’를 버리지 못하고 당을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게 김 후보 측의 주장이다.
김 후보는 지난 19일 기상청 국가지진센터를 방문한 후 기자들과 만나 안 후보에 대해 “민주당 DNA를 계속 가지고 계시면 곤란하다”면서 안 후보의 정체성을 공격했다. 이어 “단일화를 한다고 과거 모든 행적이 지우개로 지워지는 건 아니다. 우리 당의 정체성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명쾌하게 설명하는 게 당연한 도리”라고 지적했다.
보수 원로그룹도 “이대로는 총선 위험”
후보들 간 ‘네거티브 공방전’이 이어지자 당내에서도 불안감이 감지된다. 특히 전당대회를 발판삼아 ‘컨벤션 효과’(정치 이벤트 후 당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노렸던 당 지도부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보면 여당을 향한 ‘민심’이 되레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원내관계자는 “당을 이끌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당을 수렁으로 몰고 있다”며 “모두 자제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1명의 승리를 위해 모두가 제물이 되는 ‘엔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 원로그룹 일각에선 정진석 비대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전당대회 룰(rule‧개정) 개정을 밀어붙인 비대위가 정작 전당대회 운영에는 미숙하다는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국민의힘 원로 정치인들은 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정 위원장을 만나 “당 융화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당 운영이 이렇게 되서는 안 된다”, “지도부가 전대 이후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달라”는 고언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친윤계 일각에선 비대위가 임시 지도부인터라 권한과 역할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항변도 나온다. 동시에 당내 최다선인 정 위원장이 후보들의 경쟁 과열을 막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TK(대구‧경북) 지역구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비대위원장은 ‘임시 리더’라 ‘미래 리더’를 통솔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면서도 “당의 최고 어른으로서 각 캠프에 강한 경고를 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