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홀딩스 이사회, 본사 포항이전 의결에 시민들 반응 ‘무덤덤’
  • 최일권 영남본부 기자 (sisa534@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2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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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코를 가장 사랑하는 포항시민들 위해 아름다운 결자해지 바란다”

포스코홀딩스 이사회가 지난 20일 본사를 경북 포항으로 이전하는 안을 의결했지만 정작 포항시민들의 반응은 ‘무덤덤’하다. 다음달 17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최종 통과 절차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번 이사회를 지켜본 포항시민들은 최정우 회장의 리더십에 실망하는 분위기다. 포스코홀딩스는 당초 지난 16일 사내·사외이사 선임과 본사 소재지 변경안건 등을 논의하려 했으나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고 나흘 후인 20일 회의를 재개했다.  

지난 14일 포항범대위와 지역민 700여명은  포스코 서울 본사 및 용산대통령실 앞에서 "최정우 회장 퇴진과 포스코홀딩스 본사 포항이전과 함께 200여명의 직원들 포항 상주"등을 요구하는 상경 투쟁을 벌였다 @ 최일권 기자
지난 14일 포항범대위와 지역민들은 최정우 회장 퇴진과 포스코홀딩스 이전을 촉구하는 상경시위를 벌였다 ⓒ 최일권 기자

두번째 열린 이사회도 순탄치 못했다. 오전 11시부터 열린 이사회는 오후 4시까지 갑론을박 속에 간신히 마무리 됐다. 과거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일사천리로 대부분 안건을 통과시켰다. 사내·사외이사 선임과정은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이번 이사회는 파행을 거듭하며 최정우 회장의 리더십에 ‘레임덕’현상이 나타났다는 평가다.

현재 포스코홀딩스는 사내이사 4명과 사외이사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선임에 대해 일부 이사진의 강한 반발과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 회장이 추천한 사외이사 후보에 대해 일부 이사들이 불만을 표출하며 급기야 고성이 오가는 상황도 연출됐다.  

포스코홀딩스 본사 이전안에 대해서도 일부 이사들의 반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주주가치 재고 측면과 포스코홀딩스 미래 경쟁력 확보에 집중해야 할 때인 만큼 본사이전 당위성이 미흡하다는 우려였다.

당황한 쪽은 최 회장이었다. 예전 같으면 회장이 추천한 사외 이사 후보자들은 이사회에서 대부분 통과됐다. 본사 이전안도 일부 이사들로부터 반대에 부딪치자 최 회장의 속은 까맣게 탔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23일 포스코와 포항시는 지주사 포항 이전과 함께 미래기술연구원 본원을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내에 설치하는 합의를 했기 때문이다. 만약 포스코 홀딩스 본사 이전안이 이번 이사회에서 ‘불발’됐다면 최 회장은 궁지에 내몰릴 위기에 처할 뻔 했다.

포스코홀딩스 최정우 회장 @ 시사저널
포스코홀딩스 최정우 회장 ⓒ시사저널

포항 범대위 ‘최정우 회장 퇴진 운동’ 지속 결의

21일 ‘최정우 퇴진! 포스코 지주사 본사· 미래기술연구원 포항 이전 범시민대책위원회(이하 범대위)’는 포스코홀딩스 본사 포항 이전 결정에 대한 짤막한 논평을 발표했다. 범대위는 “지난해 2월 25일 포항시·포스코·범대위 간 합의서 서명 1년 만인 어제(20일), 이행 조건의 첫 번째 필수 조건만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절하 했다.

범대위가 ‘최회장 퇴진운동’을 펼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창업주 박태준 회장의 뜻을 거스리고 포스코가 국민기업임을 부정하는 최정우 회장의 경영철학이 문제로 꼽힌다.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설립된 포스코를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회장이 25년간 목숨을 다해 세계일류철강사로 세운 것은 부정할 수 없으므로 포스코는 분명히 국민기업이라는 것이 시민들의 정서다.

하지만 2022년 4월 6일 최정우 회장이 임직원들의 개인 메일에 보낸 메시지가 언론에 유출되면서 파장을 몰고 왔다. 최 회장은 예의 메일에는 “더 이상 포스코는 국민기업이 아니다”라는 요지의 글이 실렸다.

이와관련, 1968년 포스코 창립멤버인 황경로(93) 2대 포스코회장과 안병화(92) 전 포스코 사장 등 생존자 6명은 ‘포스코 정체성을 훼손한 현 경영진은 자성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민족기업,국민기업이라는 수식어는 포스코가 민영화됐다고 없어지지 않는다” 며 “대일청구권 자금은 포스코의 뿌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없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오늘날 제철보국을 일으킨 데에는 포항시민의 숭고한 희생이 컸지만 최정우 회장이 이를 무시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해 1월 포항시민들 몰래 포스코지주사인 포스코홀딩스를 만들어 서울에 본사를 두는 한편 포스코의 싱크 탱크 역할을 담당할 미래기술연구원 본원도 수도권에 두는 등의 결정을 내렸다고 범대위는 주장했다. 

결국 지난해 2월 포스코홀딩스가 출범했지만 포항시민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며 2월 25일 전중선사장과 포스코 김학동 부회장이 나서 포항시장과 시의회 의장, 범대위 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올해 3월까지 포스코 홀딩스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하고 미래기술연구원도 포항중심의 본원 운영을 하겠다는 내용의 합의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7차례에 걸친 포항시-포스코 상생TF가 회의가 열렸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합의 내용이 없는 실정이다. 한마디로 성의가 없는, 그야말로 보여주기식 회의로 포항시민들을 무시하는 태도라고 범대위는 지적했다.

 

윤 대통령 “주인없는 기업 지배구조” 강조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20여년간 계속돼온 포스코 회장의 ‘연임 후 중도퇴진’의 흑역사를 끊을지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포스코 회장 자리는 그동안 정권이 바뀌면서 ‘정치적 전리품’으로 불려왔기 때문이다. 

포스코 회장 흑역사는 김영삼 정부부터 시작됐다. 초대 박태준 회장은 1968년부터 24년간 포스코 신화를 창조하며 장기재임했다. 하지만 박 회장은 1992년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집권세력간의 불화로 퇴진하게 된다.

이후 2대 황경로 회장이 취임했지만 6개월 만에 퇴진했다. 3대 정명식 회장은 1년의 임기로 단명했다.  4대 김만제 회장은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사퇴했고, 5대 유상부 회장은 노무현 정부 들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내려왔다.

6대 이구택 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자리를 내놓았고, 7대 정준양 회장 역시 박근혜 정부 시절 자진 사퇴했다. 8대 권오준 회장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년 만에 물러났다. 당시 재계 일각에서는 권 회장이 정권 핵심으로부터 “조기 사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사를 전달받고 사의를 밝혔다는 의혹이 일기도 했다. 문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하는 경제인단에 권 회장이 제외되는 등 포스코가 ‘패싱’ 당하는 모습은 이런 의혹에 무게감을 더했다.

이후 9대 최정우 회장이 자리를 이어받았다. 최정우호(號)는 취임 초 더 이상 정치권의 외풍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CEO 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출발했다. 그는 연임 과정에서 CEO 후보추천위의 심사를 거쳐 이사회 승인을 받아 주총에서 연임이 확정됐다.

하지만 ‘연임 후 중도퇴진’이라는 포스코 회장의 흑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는 시각이 팽배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주인 없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고, 여당인 국민의힘도 동의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에도 스튜어드십(Stewardship·연기금을 비롯한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투명한 경영을 유도하는 지침)이 작동해야 한다” 면서 “지배구조의 공정·투명성에 대한 관심은 관치가 아니다”고 못을 박았다.

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지난 9일 이미 연임이 확정된 구현모 KT 대표이사 연임이 백지화 됐다. 원점에서 재검토된다는 것이다. 결국 KT 이사회는 차기 대표이사 후보를 재공모 하기로 확정하고 다음 달 7일 차기 대표이사를 선출할 예정이다.

포항시민들은 최정우 회장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 범대위와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구동성으로 “최정우 회장의 포스코 시간이 점점 만료되는 만큼 포스코를 가장 사랑하는 포항시민들을 위해 아름다운 결자해지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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