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입가경’ 당권 경쟁에…몸 사리는 與초선들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1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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非尹 초선 ‘공천 학살’ 우려에 “소신발언 어려워” 토로
정치권 일각 “능력 중심으로 공천시스템 개혁해야”

#비윤석열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A 초선의원은 최근 SNS에 글을 게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준석 징계 사태’ 당시 당 지도부를 연일 비판했던 것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A 의원실 관계자는 “총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친윤계 지도부가 꾸려질 시 공천 받지 못할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친윤석열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B 초선의원은 ‘나경원 사과 촉구 연판장’에 이름을 올린 뒤 주변 지인들에게 “마음이 좋지 않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해당 의원의 고민을 들었다는 여권 한 관계자는 “B 의원은 사실 나 전 의원과 친분이 두터웠었다”며 “아무래도 대세 후보(김기현 후보)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가운데 당내 초선의원들의 고민도 깊어지는 모습이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어느 후보를 돕느냐에 따라 재선(再選), 나아가 정치 생명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초선의원들의 ‘소신 잃은 눈치 보기’가 정당 민주주의를 해치는 구태(舊態)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2021년 4월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이날 초선 의원들은 "승리에 취하지 않고 당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국민의힘 초선의원들이 2021년 4월8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는 모습. 이날 초선 의원들은 "승리에 취하지 않고 당을 개혁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다선 선배’ 밀어냈던 21대 초선들

여야를 막론하고 ‘다선(多選)’은 곧 권력이다. 이제 막 뱃지를 단 초선에 비해 세(勢)도, 힘도 강할 수밖에 없다. 다만 21대 국회 초반 국민의힘 내 분위기는 달랐다. 이른바 ‘초선 돌풍’이란 말이 당내에 돌았다. 총선에서 참패를 당하고 21대 국회 주도권을 더불어민주당에 넘겨준 선배 의원들의 권위가 크게 떨어지면서다.

반면 당내 절반 이상을 차지한 초선 의원들의 발언권은 ‘역대급’으로 세졌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여기에 당시 지도부를 구성했던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초선 의원들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당의 주요 결정 사항과 방향을 초선그룹이 주도했다.

2020년 6월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은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의총에서 초선 의원들의 발언이 많아지고 있다”며 “월드컵으로 치면 5대0으로 참패한 경기 뒤에, 주전들은 벤치로 밀리고 후보들이 그라운드에 나서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힘이 세진 초선들은 당시 대여(對與) 강경론을 주도하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비상대책위원회 출범 과정, 원내대표 선거 등 당내 혁신과 관련된 사안에 수차례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초선의원들 간 교류도 활발했다. ‘초심만리’, ‘명불허전 보수다’ 등 다양한 초선모임이 생겨났다. 모임의 계파색도 옅었다. 이들은 원외 보수 원로들을 초빙해 한국 보수 정당의 현재와 미래 같은 ‘큰 주제’를 두고 주기적으로 토론했다.

국민의힘 황교안·안철수·천하람·김기현 당대표 후보(왼쪽부터)가 21일 대전시 동구 대전대학교맥센터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황교안·안철수·천하람·김기현 당대표 후보(왼쪽부터)가 21일 대전시 동구 대전대학교맥센터에서 열린 '힘내라! 대한민국 - 국민의힘 제3차 전당대회 대전·세종·충북·충남 합동연설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드러난 ‘윤심’에…“공천 의식할 수밖에”

그러나 2023년 국민의힘 초선의 입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 당 지도부가 총선 패배의 아픔을 딛고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서다. 권성동‧장제원‧이철규‧윤한홍 의원 등 다선 의원들이 당내 실세로 부상한 가운데 초선의원들 사이 계파 갈등 양상이 일기도 했다.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비윤석열계와 윤 대통령을 지지하는 친윤석열계 간의 미묘한 신경전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가운데 전당대회가 시작되자 초선의원들은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김기현‧안철수‧천하람‧황교안, 4인 중 누가 당권을 쥐느냐에 따라 공천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윤심’(윤 대통령 의중) 후보로 분류되는 김기현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비윤석열계 의원들의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비윤계 국민의힘 한 초선의원실 관계자는 “단두대 위에 목을 올려놓은 심정”이라면서 “고래들이 싸우면 등이 터지는 건 새우다. 지도부가 친윤계로 채워지면 (비윤계라는 이유로) 능력과 관계없이 공천을 받지 못할까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행사하는 하향식 공천의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초선의원의 ‘생환’ 여부가 입법 능력이나 성과가 아닌 계파에 달린 현 공천 시스템 아래서는 초선의원들의 ‘눈치 보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역사상 초선의원들이 목소리를 활발하게 낸 전례를 찾기 어렵다. 공천권을 당 지도부가 쥐니 소신을 밝히기 어렵고 ‘무리 정치’에 함몰되는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당이 능력 중심이 아니라 인물 중심으로만 흘러간다. 공천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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