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선 체제 전환 위해 ‘폭탄 배당’ 택한 HD현대…괜찮을까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2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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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그룹(옛 현대중공업그룹) 계열사 현금·현물배당 결정
승계 위한 무리한 배당, 중장기 실적에 악영향 우려도
정기선 HD현대 사장 ⓒHD현대 제공
정기선 HD현대 사장 ⓒHD현대 제공

HD현대그룹(옛현대중공업그룹)은 지금 ‘정기선 HD현대 사장 체제’로 전환이 한창이다. 이 과정에서 최대 난관은 지분 승계 재원 확보다. HD현대 총수 일가는 그 해답을 배당금에서 찾는 것으로 보인다. 증여세 납부를 위해 순이익보다 많은 배당을 연이어 결정하고 있어서다. 일각에선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무리한 고배당 기조가 기업의 중장기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HD현대, 정기선 사장 지분 확보 직후 배당 확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 사장은 2013년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선박영업부 수석부장으로 그룹에 합류했다. 이후 요직을 거치며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2021년 10월 현대중공업지주(현 HD현대) 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최전선에 나섰다.

언뜻 보면 HD현대그룹의 승계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정 사장은 그동안 경영 수업을 받아오며 시장으로부터 경영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받는 분위기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구설에 휘말린 적도 없다.

그런 정 사장의 최대 과제는 경영권 지분 승계다. HD현대그룹은 다른 재벌가들과 달리 승계를 위한 사전 물밑작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정 사장의 부친인 정 이사장이 국회의원을 지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뒤늦게 지분 승계에 나선 정 사장은 현재 HD현대 지분 5.26%를 보유하고 있다. 2018년 정 이사장으로부터 증여받은 3000억원과 금융권 대출 500억원 등으로 확보한 지분이다. 향후 정 사장이 그룹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정 이사장의 HD현대 지분 26.6%를 넘겨받아야 한다.

정 이사장의 지분 가치를 현재 주가를 기준으로 1조3000억원을 상회한다. 30억원을 초과하는 자산에 50%의 상속·증여세율이 적용된다는 점 등을 고려하면 정 사장은 약 8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재계에서는 HD현대가(家)가 배당금을 승계 재원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리곤 정 사장이 지분을 확보한 2018년부터 현실이 됐다. 실제 HD현대는 그 시점부터 높은 배당률을 유지해왔다. 특히 2020년에는 업황 불황으로 당기순이익이 864억원에 그쳤음에도 2615억원을 배당했다. 배당성향이 300% 이상인 셈이다.

특히 HD현대는 지난해 3251억원을 주주들에게 배당하기로 했다. 2021년 3922억원보다 다소 줄어든 규모다. 하지만 당시 HD현대 자회사인 현대글로벌서비스의 프리IPO 자금 일부가 특별이익으로 배당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지난해 배당은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 결과, 정 사장은 매년 130억원에서 200억원 규모의 배당금을 손에 쥐었다. 정 이사장에게 지급된 배당금까지 더하면 정씨 부자는 매년 1000억원 이상을 배당받았다.

올해 HD현대의 중간·결산 배당금은 더욱 증가할 전망이다. 사명을 HD현대로 변경하면서 상표권 수입을 크게 늘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분당 사옥 임대료 수입도 지주사인 HD현대에 유입돼 배당 여력이 더 높아질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HD현대가 향후 계열사들로부터 지급받을 상표권 사용료와 사옥 임대료 수익이 각각 300억원과 65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한다. 약 950억원의 추가 배당 여력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무리한 고배당, 장기적 기업가치 저하 요인

물론 배당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호실적을 바탕으로 주주들에게 이익을 돌려주자는 취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총수 일가의 승계 재원 마련을 위해 무리하게 배당을 실시하는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당 기업의 중장기 실적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무리한 고배당 기조가 계속될 경우 기업의 실적과 기대수익률 전망이 어두워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주가 측면에서도 투자 기회가 없다는 점을 방증하는 모양새여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당기순이익 이상을 배당금으로 지급하는 등 무리한 배당 정책이 계속될 경우 중장기적으로 시장에 좋지 않은 시그널을 줄 수 있다”며 “각 기업마다 실적을 고려해 배당성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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