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만의 ‘WBC 4강’ 향한 에드먼과의 동행
  •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5 13: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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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2년 연속 150안타 친 호타준족 내야수
2루수·유틸리티 골든글러브 최종 후보 오른 ‘정상급’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미국이 만든 대회다. 하지만 2006년 1회 대회와 2009년 2회 대회의 ‘찐 주인공’은 한국과 일본이었다. 일본은 두 번 모두 우승했고, 한국은 1회 대회에서 미국을 꺾고 4강에 오른 데 이어 2회 대회에서는 결승까지 올라 일본과 명승부를 펼쳤다. 아시아의 두 강자는 2013년 3회 대회부터 주춤했다. 한국은 3·4회 대회 모두 1라운드에서 탈락했고, 일본은 두 대회 연속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이에 두 팀은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미국 국적 선수를 자국 대표팀에 포함시킨 것이다.

한국 대표팀의 토미 현수 에드먼(2루수)과 일본 대표팀의 라스 누트바(외야수)는 모두 아버지가 미국인이지만, 각각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어머니를 두고 있다. 두 선수는 공교롭게도 모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의 팀 동료다. 메이저리거 유격수인 김하성(샌디에이고)과 함께 대한민국의 내야 수비를 책임질 에드먼은 존 에드먼 주니어와 곽경아씨의 2남1녀 중 둘째로 1995년 미시간주 폰티악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나 5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어머니 곽씨는 윌리엄스칼리지 재학 시절 에드먼의 아버지를 만났다. 에드먼의 아버지는 팀의 주전 유격수였지만 윌리엄스칼리지는 2부 리그 팀이었고, 메이저리그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아버지는 졸업 후 미시간대학 야구팀 코치를 맡았다가 전공(수리경제학)을 살려 고등학교 수학교사 겸 야구 코치가 됐다.

ⓒAP 연합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토미 에드먼이 2022년 9월2일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8회 3점 홈런을 친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AP 연합

명문 스탠퍼드대에 진학한 ‘수재’…지독한 ‘연습벌레’ 

에드먼 가족은 캘리포니아로 이사했다. 샌디에이고 홈구장인 펫코파크에서 북쪽으로 16마일 거리인 라호이아(La Jolla)에서 자란 에드먼은 아버지처럼 숫자를 좋아했다. 그리고 두 아들을 위해 뒷마당에 배팅 케이지를 만든 아버지로부터 야구를 배웠다. 아버지는 오른손잡이인 에드먼을 스위치 히터로 키웠고, 에드먼은 아버지가 코치로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에드먼은 수재였다. 졸업 평점이 4.48이었던 에드먼은 프린스턴대 등 명문 대학들로부터 장학금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야구에 더 진지하게 도전하기 위해 야구팀 전력도 강한 스탠퍼드대를 택했다. 스탠퍼드대에서 수리컴퓨터사이언스를 전공한 에드먼이 3학년까지 기록한 학점 3.8은 스탠퍼드대 야구팀 선수로는 40년 만에 최고였다. 

1학년 때 지역 결승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날려 학교의 유명 스타가 된 에드먼은 다재다능함과 조용한 리더십이 돋보이는 선수였다. 스탠퍼드대 감독은 자신이 경험한 ‘가장 지독한 연습벌레’로 에드먼을 꼽았다. 하지만 야구선수로는 비교적 작은 178cm, 80kg의 체구와 파워 부족이 에드먼의 문제였다.

2016년 드래프트에서 세인트루이스는 에드먼을 6라운드 196순위로 지명했다. 입단 보너스 23만 달러는 610만 달러였던 1순위 미키 모니악의 26분의 1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해 지명된 1216명 중 현재 통산 승리 기여도가 에드먼보다 높은 선수는 없다. 에드먼이 6라운드에서 뽑혔을 때 신체 조건이 뛰어나지 않은 선수를 너무 높은 순위에서 뽑았다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하위 라운드 선수를 키우는 데 특출난 능력을 가진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한 건 에드먼에게는 큰 행운이었다.

성장 최대치가 벤치 멤버로 예상된 에드먼은 2018년 트리플A에서 대활약하며 주목받기 시작했고 이듬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승격 전날 소식을 들은 부모는 비행기를 타고 시카고로 날아갔다. 에드먼은 9회초에 대타로 등장했고 삼진을 당했다. 

에드먼의 장점이 발현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년 동안 내야 세 포지션(2·3루수·유격수)과 외야 세 포지션을 맡으며 유틸리티 선수로 활약한 에드먼은 2021년 팀의 주전 2루수가 됐다. 세인트루이스는 에드먼을 믿고 골드글러브 2루수인 콜튼 웡을 잡지 않았다. 그리고 에드먼은 밀워키로 이적한 웡을 제치고 골드글러브를 따냈다.

지난해는 에드먼에게 최고의 시즌이었다. 전설의 유격수인 아지 스미스 이후 처음으로 2년 연속 150안타를 친 세인트루이스의 스위치 히터가 됐고, 2003년 이후 팀 최고 기록에 해당하는 32개 도루를 성공시켰다. 승리 기여도(WAR) 6.4는 내셔널리그 전체 8위였으며, LA 다저스의 슈퍼스타인 무키 베츠와 같았다.

한 해 유격수와 2루수로 모두 60경기 이상 출장한 최초의 세인트루이스 선수가 됐을 만큼 공헌이 컸던 에드먼은 이례적으로 2루수와 유틸리티 선수 두 부문에서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가 됐다. 김하성 또한 유격수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였기에 대한민국의 내야는 프란시스코 린도어(뉴욕 메츠)가 유격수, 하비에르 바에스(디트로이트)가 2루수를 맡는 푸에르토리코와 함께 이번 대회 최고의 수비를 자랑할 전망이다. 

 

한국 혈통 자랑스러워 해…한국말 잘 못해 미안해하기도

일본 대표팀의 누트바가 아직 메이저리그에 자리 잡지 못한 선수인 반면, 에드먼은 정상급 실력을 자랑한다. 투아웃 이후에 등장해 투수를 괴롭히는 것으로 유명한 에드먼은 지난해 투아웃에서 기록한 타율이  0.338로 메이저리그 2위였다. 에드먼의 이번 WBC 참가가 특별한 건 자신을 ‘붉은 악마’라고 밝힌 애리조나 카디널스(NFL)의 주전 쿼터백 카일러 머리처럼 한국 혈통을 자랑스러워 하는 선수라는 것이다. 어머니가 너무 어릴 때 미국으로 건너온 탓에 한국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걸 마음에 걸려 한 에드먼은 2020년 세인트루이스에 입단한 김광현에게 한국말을 잘 못해 미안하다는 사과를 했다. 그리고 김광현의 데뷔 첫 승 경기에서 결승타가 된 선제 2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학창 시절 방학 때면 LA 다운타운에 거주하는 외할머니 집에서 보낸 에드먼은 외할머니로부터 한국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김치와 갈비를 좋아하게 됐다. 에드먼은 은퇴 후 행보 또한 기대된다. 대학에서 데이터사이언스를 전공한 형도 미네소타 트윈스 분석팀에서 일하고 있으며, 여동생 엘리스는 세인트루이스 구단의 시스템 엔니지어로 있는 등 가족 모두가 야구에 투신하고 있어서다. 에드먼은 은퇴 후 단장이나 행정가의 길을 걸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메이저리그는 선수 출신 단장이 대부분 명문대 출신으로 교체되고 있는데 에드먼은 선수 출신이자 명문대 출신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에 이번 WBC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중요한 대회다. 하지만 최초의 한국계 선수인 에드먼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대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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