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하면 불거지는 ‘회장 리스크’에 한숨 커지는 마사회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8 07:3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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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환 회장 ‘황제 승마’ 의혹 사건, 경기남부경찰청에 이첩
김우남 회장 불명예 퇴임 14개월 만에 ‘법적 문제’ 재연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가 또다시 ‘회장 리스크’에 휩싸였다. 정기환 회장과 임원 등 경영진이 무더기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됐기 때문이다. 전임 김우남 회장이 검찰에 기소되고, 취임 8개월 만에 불명예 퇴임한 지 1년4개월여 만이다. 마사회 안팎에는 벌써부터 마사회장의 ‘법적 리스크’를 우려한다. “답답하다”는 하소연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마사회 관계자는 “2021년 말 김우남 회장이 막말 논란으로 경찰 조사를 받고 퇴임하면서 내부 분위기가 많이 뒤숭숭하다”면서 “어수선한 조직을 추슬러야 할 후임 회장마저 사정기관의 표적이 됐다.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특히 마사회는 최근 몇 년간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2020년 불거진 코로나 팬데믹으로 무관중 경기가 2년 넘게 이어졌다. 2020년 마사회 매출은 전년 대비 85%나 감소했다. 이듬해에도 이런 상황은 계속됐다. 매년 2000억원에 이르던 영업이익은 4000억원 적자로 전환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사회는 공공기관 경영실적 평가에서 2년 연속 D등급(미흡)과 E등급(아주 미흡)을 받았다. 지난해 무관중 경기가 풀리고, 비용 절감 등의 노력을 통해 실적은 일부 개선됐다. 전성기의 절반 수준까지 영업이익이 개선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이 사정기관의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점에서 우려가 더하다.

한국마사회는 2022년 무관중 경기가 풀리면서 3년 만에 영업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사진은 과천 경마장 경기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마사회는 2022년 무관중 경기가 풀리면서 3년 만에 영업이익이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다. 사진은 과천 경마장 경기 모습 ⓒ시사저널 임준선

‘코로나 적자’ 어렵게 탈출했는데…

2021년 불거진 ‘황제 승마’ 교육 의혹이 논란의 시발점이었다. 인터넷 언론인 퍼블릭뉴스는 당시 정기환 회장과 임원 4명이 11개월간 국내 최고의 말과 코치진을 통해 수천만원 규모의 ‘황제 승마’ 교육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마사회는 곧바로 해명자료를 냈다. 마사회 측은 “교육 담당 부서가 업무 절차를 지키지 않는 등 일부 미숙했던 부분이 있었다”면서도 “임원 승마 교육을 곧바로 중단하고 대여한 안전장구 역시 회수 조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에도 ‘황제 승마’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한 시민단체는 정 회장과 임원 4명을 특가법상 배임 혐의로 과천경찰서에 고소하기도 했다. 경영진이 마사회의 규정을 위반하고 특혜성 승마 교육을 받았다는 게 고소장 내용의 골자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고소장 등에 따르면 이들은 2020년 8월부터 2021년 6월까지 승마 교육을 받았다. 말산업의 이해도를 높이는 게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480만원 상당의 승마복과 개인 맞춤형 부츠, 헬멧, 장갑 등을 지급받았다.

문제는 당시 마사회가 교육에 필요한 안전장구나 조끼 등을 구입할 예산이 없었다는 점이다. 마사회는 예산을 전용해 임원용 장비를 구입했다. 교육을 받고 난 후 진행되는 말 관리와 세척 등 뒤처리 역시 모두 용역이 맡았다. 이런 비용까지 포함하면 실제 교육 비용은 1인당 2000만원에 이른다. 품의 절차도 석연치 않다. 교육 업무를 담당하는 인사노무처 대신 말산업진흥처장 전결로 교육이 진행됐다는 게 고소인 측의 주장이다.

이 때문에 마사회는 지난해 10월 열린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질타를 받았다. 질문에 나선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마사회 경영진의 일탈과 부실감사 의혹을 강도 높게 꼬집었다. 특히 강습 시기는 김우남 전 회장이 강요미수 및 업무방해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던 때와 일부 겹친다는 점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마사회 한 관계자는 “고통 분담 차원에서 직원들은 유급 휴직과 절반 수준의 수당만 받고 버텼다. 정작 경영진은 승마 교육을 위해 ‘돈찬치’를 했다는 얘기를 듣고 허탈해졌다”고 말했다.

과천경찰서는 최근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로 사건을 이첩한 상태다.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측은 “현재 수사가 진행되는 사안이니만큼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줄 수 없다”고 밝혔다. 마사회 측도 “경찰 내부 판단에 관한 사항이므로 마사회의 입장은 특별히 없다”면서도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할 계획”이라고 짧게 답했다.

정기환 마사회장이 2022년 10월1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정기환 마사회장이 2022년 10월17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 선서를 하고 있다. ⓒ뉴시스

마사회 측 “필요한 절차 모두 지켰다”

하지만 마사회 안팎에서는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가 인지 수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곳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현재 논란이 많은 윤석열 대통령 장모의 양평 공흥지구 특혜 개발 의혹 역시 양평경찰서에서 들여다보다가 부패 개연성이 있어 수사대로 이첩된 바 있다. 경찰이 ‘마사회장 황제 승마’ 의혹을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얘기로,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마사회 측은 “필요한 절차는 모두 지켰다”고 강조했다. 마사회 한 관계자는 “마사회는 그동안 말산업 이해도 제고 차원에서 직원들에게도 승마 강습을 진행했다. 안전사고 문제로 잠시 중단됐던 강습을 2020년 8월 일부 임원들을 상대로 재개한 것”이라면서 “특정 금액을 제시하며 마치 문제가 있는 것처럼 지적하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코로나 팬데믹으로 적자였을 때도 경마산업 기반의 유지를 위한 무관중 경마 시행과 휴업(임금 삭감), 유휴자산 매각 등 경영 위기 극복 노력을 계속했다. 그 결과 지난해 영업적자가 흑자로 돌아선 상태”라면서 “경찰 조사로 경영에 차질이 발생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마사회 일각에서는 이번 수사를 정권교체의 연장선상에서 보기도 한다. 정기환 회장은 오랜 기간 농민운동을 해온 인사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정책기획위원으로 활동하다 2019년 4월 마사회 상임감사로 취임했다. 하지만 김우남 전 회장이 막말 논란에 휘말려 갑작스럽게 해임되자 2022년 2월 38대 마사회장에 취임했다. 이때가 하필 문재인 정권 말기였기 때문에 ‘알박기 인사’ 논란이 그동안 끊이지 않았다.

경기남부경찰청으로의 사건 이첩은 결국 정 회장을 압박하려는 현 정부의 시그널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마사회 한 관계자는 “최근 6개월 동안 감사란 감사는 다 받았다. 경찰은 물론이고 국무조정실, 감사원, 농식품부 등으로부터 감사가 내려왔다”면서 “전 정권에서 회장에 취임한 정 회장이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시그널로 내부에서는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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