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르도안 흔드는 대지진, 유럽 정세도 뒤흔든다
  • 김종일 아신대 중동연구원 교수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5 10: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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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키예 대통령 ‘철권통치 리더십’ 흔들려
‘脫서방’ 조짐에 긴장하던 美·EU도 예의주시

튀르키예(터키) 동남부 10개 지역과 인접 국가인 시리아 국경선 일부를 포함한 지역에서 2월6일 새벽 4시와 다음 날 오후 1시경(현지시간) 강도 7.7과 7.6 규모의 지진이 연거푸 발생했다. 이번 지진은 히로시마 원폭의 32배와 거의 맞먹은 강도며, 튀르키예공화국 역사에서 84년 만에 닥친 가장 강력한 지진으로 기록되었다. 이번 지진으로 튀르키예 땅 전체가 흔들리면서 3m가량 이동했다. 지진 피해를 본 튀르키예 동남부의 10개 주 총면적은 11만㎢로 우리나라 면적보다도 넓다. 이번 지진으로 2월23일 현재까지 사망자만 4만 명을 넘었고, 건물 대부분이 붕괴하면서 튀르키예는 아예 도시를 처음부터 다시 건설해야 할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월8일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해 생존자를 위로하고 있다. ⓒ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2월8일 지진 피해 지역을 방문해 생존자를 위로하고 있다. ⓒAP 연합

위기 놓인 에르도안 정부 덮친 ‘결정타’

오는 10월29일 튀르키예는 건국 100주년을 맞이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수백 년 동안 중동과 유럽 역사에서 짙은 명암의 페이지들을 장식했던 오스만제국은 지금의 튀르키예 하나만 달랑 남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 뒤를 이은 지금의 튀르키예공화국은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1881~1938)가 중심이 되어 공화국의 기본 이념과 정체성이 확립되었고, 향후 나아가야 할 좌표가 제시되었다.

오스만제국의 술탄 왕정 체제의 모순과 허점을 발견한 아타튀르크에게 유일한 대안은 세속주의 공화국이었다. 이 세속주의를 받쳐주는 두 기둥은 ‘서구화’와 ‘탈(脫)이슬람화’다. 이 둘은 상호보완적이며 친화적이다. 즉 국민 대다수가 무슬림이면서도 정치에는 절대 이슬람을 결부시키지 않겠다는 의지의 천명이 탈이슬람이고, 이를 위해 강력한 서구화 추진은 필수였다. 이를 통해 튀르키예는 이란, 이라크 등 중동국가와 확연히 구분되는 길을 걸어왔다.

지난 80년 동안 튀르키예는 자기만의 고유하고도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국제정치와 외교 무대에서 직간접적으로 막대한 영향을 끼치면서 스스로의 입지를 굳혀 왔다. 때로는 서방 편에 서서, 때로는 아랍국가 편에 서서, 또 때로는 미국 편에 서서, 때로는 러시아 편에 서서 국익을 위해 ‘카멜레온’처럼 자기 색을 바꿔가면서 잘도 버텨왔다.

지금 튀르키예와 관련한 최다 검색어는 단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다. 2003년 내각제하에서 국무총리에 올랐고, 2014년 대통령제로 헌법을 바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서 20년 동안 장기집권 중인 에르도안 대통령은 공화국의 핵심 이념인 세속주의를 저버리고 보수 무슬림들 편에 서서 공화국 사상 가장 강한 이슬람 성향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세속주의 상징처럼 여겨오던 여성의 히잡 착용 금지 법안을 폐지했고, 모든 관공서 공무원, 경찰, 군대를 세속주의 지지자들 대신 자신의 지지자들로 채웠다. 

그는 국내 경제의 악순환을 잡지 못하고 있어 현재 국민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지금까지 튀르키예공화국 역사에서 모든 집권당이 실각했던 결정적 이유가 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던 것이었음을 볼 때 지금 에르도안의 정치 생명은 백척간두에 서있는 것이 분명하다. 또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반민주주의 길을 선택하며 국내의 수많은 정적을 제거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그럼에도 에르도안 대통령이 지금까지 집권할 수 있었던 요인은 네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①집권 초기 새로운 정당으로서 집권당에 걸었던 국민적 기대 ②공화국 초기부터 국가적 숙원이었던 유럽연합(EU) 가입을 위한 외교적 노력 ③G20, 나토, 주변 이슬람 공동체 회원국 참여로 국제외교에서의 국격 상승 ④새로운 정치 지도자 부재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2016년의 쿠데타 시도는 에르도안 정권에 큰 위기를 안겼다. 비록 쿠데타를 간신히 막아내기는 했지만, 위험 요소는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게다가 시리아 내전으로 400만 명 넘는 시리아 난민이 튀르키예 땅으로 들어와 살면서 드러난 수많은 문제에 대한 국민적 원성을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숙제도 안고 있다. 아울러 수십 년 동안 그 땅에서 끊임없이 지속된 쿠르드 반군 사태로 인한 충돌과 갈등은 튀르키예 사회와 경제를 그야말로 최악으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번 대지진 참사가 동남부 지역에서 발생하면서 에르도안의 정치 생명을 위협하는 결정타가 되었다. 지금 에르도안 정부는 발 빠르게 지진 지역을 돌면서 피해 주민을 위로하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지진 지역 1300만 명 주민을 위시해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까지 더하면 8500만 명에 달하는 튀르키예 국민이 모두 피해자들이고, 이들은 현재 반(反)에르도안 편으로 돌아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왼쪽)이 2022년 10월1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카자흐스탄에서 만나 회담하고 있다. ⓒ AP 연합
에르도안 대통령(왼쪽)이 2022년 10월13일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카자흐스탄에서 만나 회담하고 있다. ⓒ AP 연합

‘푸틴 향한 러브콜’ 등 유럽 역학 구도에 변수

5월14일이 되면 에르도안 정부는 20년 연정의 ‘계속이냐’ 아니면 ‘종결이냐’라는 갈림길에 서서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된다. 그나마 에르도안 입장에서는 1923년 당시 1차 세계대전 연합국과 튀르키예 사이에 체결된 ‘로잔조약’이 올해로 종료되면서 그동안 제한되었던 튀르키예 동부 지역의 유전과 내륙 중앙 고원에 무궁무진하게 매장된 붕소 같은 차세대 광물의 채굴권이 풀리는 것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경제 부흥의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그런 기대에 찬물을 끼얹은 이번 대지진 참사는 에르도안 정부를 시험대에 올리고 있다. 현재로선 딱히 유력한 정치적 경쟁자가 보이지 않을뿐더러 기존의 국내 난민 문제와 쿠르드 반군 사태의 원만한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지진으로 인한 민심 동요를 잘 수습한다면 재집권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철권통치’로 불려오던 에르도안의 리더십이 대지진 이후 흔들리는 것을 유럽과 미국 등 서방세계는 주시하고 있다. 지금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미국과 EU로 대표되는 서방과 러시아의 대립 구도는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서방의 충실한 친구였던 에르도안은 최근 들어 더는 서방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메시지와 함께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에게 러브콜을 보내면서 서방을 긴장시키고 있다. 에르도안의 운명이 튀르키예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역학 구도를 뒤흔들 수도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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