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우크라이나 전쟁 1년, 글로벌 경제 생태계가 바뀌었다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5 16:05
  • 호수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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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봤을 때 전쟁 시기에 변화 가속화
한국도 수출 일변도 벗어나 새로운 발전 모델 고민할 때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이 1년을 넘겼다. 유럽 대륙에서 국가 간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쟁 발발 소식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국가의 광범위한 경제 제재와 이에 대한 러시아의 보복으로 인해 세계경제는 한순간에 요동쳤다. 전쟁 직후 러시아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큰 에너지와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2018년 미·중 무역 분쟁과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삐거덕거리던 글로벌 공급망을 붕괴시키고, 하나로 연결됐던 세계가 갈라지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대두되기도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글로벌 경제 생태계 역시 크게 바뀌고 있다. ⓒ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1년을 넘기면서 글로벌 경제 생태계 역시 크게 바뀌고 있다. ⓒ연합뉴스

에너지 및 식량 가격은 전쟁 이전 수준 회복

1년이 지난 2023년 2월 세계경제는 상당 부분 안정을 되찾았다. 광범위한 기아 사태를 우려할 정도로 폭등했던 식량 가격은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최대 6배까지 폭등했던 천연가스 가격 역시 유럽을 기준으로 할 때 전쟁 이전보다 낮은 수준으로 안정화됐다. 가격의 급격한 상승은 시장에 추가적인 공급을 자극했으며, 이러한 시장의 탄력성은 전체 시스템 유지를 가능하게 했다. 여기에는 일정 부분 행운도 뒤따랐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한 가스 공급을 중단하면서 겨울철 난방과 전력에 대한 우려가 매우 컸지만, 이례적으로 온화했던 날씨로 가스 수요는 예년보다 적었다. 당초 걱정했던 가격 폭등에 따른 배급제 실시 및 사회적 혼란 역시 발생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제적 영향은 지역별, 그리고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세계적으로 제일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은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로부터 곡물 수입 의존도가 높았던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이다. 인구의 3분의 1이 빈곤선에 위치한 이집트의 경우 국제 곡물 가격의 하락에도 여전히 높은 식료품 가격으로 인해 대다수 가구가 큰 어려움에 처해 있으며 정치적인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곡물 가격은 하락했지만 러시아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비료 가격은 여전히 전쟁 이전과 비교해 2배 가까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스페인의 경우 비료 구매 지원을 위해 정부가 3억 유로를 지원했지만  경제력이 취약한 개도국들의 경우 큰 부담이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경우도 전쟁 직전 상태로 천연가스 가격이 낮아졌지만 여전히 2021년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높은 가격이다. 유럽 각국 정부의 에너지 가격 보조 덕에 가정의 경우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을 상당 부분 완화할 수 있었지만 산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최대 화학기업인 바스프의 경우 천연가스 가격 상승으로 사업장의 해외 이전을 포함한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세탁소 등 자영업의 경우도 평년에 비해 몇 배나 인상된 고지서를 받아들고 결국 소비자에게 비용을 전가하면서 전체적인 물가가 상승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제적 영향은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가속화로 나타나고 있다. 에너지나 식량처럼 민감도가 높은 항목의 가격 상승이 상당 기간 이어지면서 전체 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발생시켰다. 물가 상승에 따라 인건비가 상승했고, 상승한 인건비가 고착화되면서 물가를 높은 수준에서 유지시켰다. IMF(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22년 선진국의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당초 예측치인 3.9%를 훨씬 상회하는 7.3%에 이르렀다. 개도국 및 빈곤국의 경우 9.9%나 상승했다.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경기 둔화 및 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분야는 아마도 에너지일 것이다. 전체 천연가스 소비량의 70%를 러시아에 의존하던 유럽이 대체 공급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LNG를 비롯한 타 분야로 영향이 확대되고 있다. 천연가스의 경우 대다수 국가가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았고, 우리나라와 일본은 LNG로 공급받는 형태가 오랫동안 유지됐다. 파이프라인을 통해 공급되는 천연가스 가격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에 양쪽 시장은 분리된 상태로 존재해 왔지만 유럽이 급속하게 LNG 수요를 확대시키면서 LNG 가격이 급등했다. 대규모 투자를 필요로 하는 LNG 특성상 대규모 물량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장기계약이 선호된다. 일단 장기계약이 체결되면 그 물량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에 유럽의 LNG 시장 진출로 인한 공급 여력 감소는 중장기적인 가격 인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원유의 경우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산 원유에 대해 가격 상한선을 설정하는 방식으로 러시아의 전비 조달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이동과 보관이 가스에 비해 용이한 원유의 특성으로 인해 러시아 원유는 국제 시세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수출되고 있다. 제재 위반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중국과 인도는 러시아산 원유를 저렴한 가격으로 대규모 도입함으로써 물가 안정과 에너지 공급원 다변화에 큰 도움을 받고 있다. 높아진 에너지 가격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유럽과 달리, 중국 기업들은 상대적 우위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유럽 기업의 중국행을 촉진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유럽 기업의 중국行 가속화할 수도

경제적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가장 큰 변화는 언제라도 안정적인 공급이 불가능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일상화됐다는 점이다. 냉전 종식 및 세계화로 지난 30년 동안 전 세계 사람들은 합리적인 비용만 지불하면 언제든 원하는 물건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이 광범위하게 확산되면서 글로벌 공급망 형성과 가동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전제조건이 약화되는 상황에서 발생한 전쟁으로 인해 많은 국가나 기업들은 과거의 효율성 대신 안정적인 공급에 더 주안점을 두게 됐다. 저렴한 가격으로 먼 곳에서 공급되는 것보다는 일정 부분 비용을 추가로 지급하더라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국내 또는 인접 국가에서 생산하거나 공급받는 것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 영향은 가스 요금 인상, 몇몇 원자재 수급의 어려움 등에 국한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세계화 흐름이 약화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수출에 의존하는 우리로서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수출이라는 발전 모델을 채택해 60년 넘게 성장해온 대한민국에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새로운 발전 모델을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을 알려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전쟁은 변화를 가속화시켜 왔음을 생각해 보면 변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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