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한 잔’도 사치? 자취 감춘 ‘욜로族’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2.2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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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값 인상 예고에…가스비 이어 전기요금도 인상 가능성
불경기에 ‘욜로’ ‘플렉스’ 가고 자기계발 집중하는 ‘갓생’ 부상

경기 남양주에 사는 직장인 전민기(35)씨는 최근 취미를 ‘위스키 모으기’에서 등산‧헬스로 바꿨다. 대출이자가 급등한 가운데 아파트 관리비도 크게 상승하면서다. 전년 동기 대비 월 마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이 대략 15% 가까이 늘었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반면 올해 그가 받아든 연봉 인상률은 3.8%에 그쳤다. 전씨는 “아끼지 않으면 적금액을 줄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취미까지 마음껏 즐기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불경기가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가스비부터 전기요금, 소주 값까지 줄줄이 인상되는 가운데 고가의 취미를 즐기기 어려워졌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다. 이에 과거 부상했던 ‘욜로’(You Only Live Once·한번 사는 인생 제대로 즐기자) 대신 ‘갓생’(God生·부지런하고 생산적인 삶)이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한 모습이다.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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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은 제자리인데…오르는 금리‧물가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소득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실제 벌어들인 돈보다 쓴 돈이 많다는 의미다. 전 분기에 이어 두 분기 연속 감소했다. 통계청이 지난 23일 발표한 ‘2022년 4분기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3만4000원으로, 1년 전보다 4.1% 늘었다.

소득이 4% 이상 늘었지만, 물가 상승 폭이 더 컸다. 물가를 고려한 실질소득은 전년 동기대비 1.1% 감소해 전 분기(-2.8)에 이어 2분기 연속 줄었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지난해 고물가의 영향으로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실질소득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지출을 품목별로 살펴보면 주거·수도·광열 지출이 1년 전보다 6.0% 증가했다. 특히 전기요금·가스요금 등 냉·난방비가 포함된 연료비 지출이 16.4% 급증해 1인 가구 포함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6년 이후 전 분기를 통틀어 역대 최대 폭으로 증가했다. 난방비 부담이 그만큼 컸다는 분석이다.

비소비지출도 크게 늘었다. 세금이나 이자 비용을 뜻하는 비소비지출은 92만8000원으로 8.1% 증가했다. 이는 4분기 기준으로 2019년 이후 3년 만에 가장 큰 폭 증가다. 이자비용 지출만 놓고 보면 28.9% 급증하며, 2006년 이래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자비용 증가는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분석된다. 금액으로 보면 주택담보대출에서, 증가율로 보면 기타 신용대출에서 각각 지출폭이 컸다.

이런 가운데 서민들의 술로 인식됐던 소주마저 가격 인상이 예고됐다. 최근 주류업계는 소주의 원재료 격인 타피오카 가격, 주정 제조 과정에 필요한 에너지, 병 가격 상승 등 여파로 소주 출고가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보통 1000원 단위로 주류 가격이 올라가는 것을 감안할 때 이번에 또 한 번 소주값이 오르면 ‘소주 6000원 시대’가 열리는 셈이다.

맥주도 가격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주세 자체가 올라 가격 조정이 불가피한 상태다. 오는 5월부터 맥주에 붙는 세금은 지난해보다 리터(L)당 30.5원 오른 885.7원이 된다. 주류업체들은 대개 정부의 주세 인상 직후 가격을 올리는데 주류 출고가가 인상되면 소비자들의 식당·마트 구매가는 더 큰 폭으로 오른다.

 

돈 안 드는 취미 뜬다…‘오운완’ 열풍

‘지갑 사정’이 라이프 스타일 트렌드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하고 싶은 것 하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사는 삶을 추구하던 ‘욜로’ 트렌드가 저무는 모습이다. 취미를 즐길 자금이 고갈되면서다. 대신 상대적으로 비용이 덜 드는 헬스나 등산, 독서 등을 즐기는 ‘갓생족(族)’이 부상하고 있다.

지난 2일 서울연구원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블로그, 트위터, 커뮤니티, 유튜브 등 온라인 콘텐츠에 등장한 단어 언급량을 분석 결과, MZ세대 신조어인 ‘갓생’의 빈도 수는 전년 대비 폭증한 반면 ‘욜로’, ‘플렉스’는 줄어 유행이 한풀 꺾인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갓생’의 언급량은 63만9657건으로 2021년(39만8452건)과 비교해 60% 늘었다. 같은 기간 ‘욜로'’는 10만6281건으로 7.5% 줄었고, ‘플렉스’는 19만7899건으로 14% 감소했다. ‘갓생’과 관련해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으로 지난해 83만 건이 언급됐다. 이 밖에 ‘미라클모닝’(이른 아침에 일어나 독서·운동 등 자기계발을 하는 것), ‘무지출’(일정 기간 한 푼도 안쓰는 無소비에 도전), ‘N잡러’(본업 외에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 등의 언급량이 꾸준히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각에선 불경기 사태가 장기화되면 다시금 ‘욜로’가 트렌드로 부상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판단되는 순간 다시금 ‘현재’에 집중하는 인구가 늘어날 것이란 분석에서다.

지난달 26일 블룸버그 통신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한국의 집값은 일부 도시의 경우 몇 배씩 오를 만큼 급등했고 주택 소유자들은 부자가 됐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며 “한국의 젊은이들이 주택 구매를 포기하고 대신 고가품 소비에 나서면서 명품 수요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고 전했다. 한 30세 한국인 근로자는 블룸버그를 통해 “한국의 젊은 세대는 ‘욜로’의 모토를 가지고 있다”며 “집이 너무 비싸서 살 수가 없는데 무엇 때문에 저축을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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