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밤엔 어둡고 행인 없어 혼자 다니기 무서워요”
  • 박창민 기자 (pcm@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7 10: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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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럼화되고 있는 신촌·이대 상권 직접 가보니…
대면 개강으로 대학생 바글바글하지만 상권은 몰락

개강을 코앞에 둔 2월28일 오후 3시, 기자는 서울을 대표하는 대학 상권인 신촌 젊음의 거리를 찾았다. 간만에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신촌 거리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와 식당 출입구는 오가는 손님들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마침 이날 신촌에서 가장 가까운 연세대가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대면 입학식을 치렀다. 많은 학생과 학부모가 입학식에 참석하면서 모처럼 대학가에 활기가 넘쳤다. 

이제 막 입학식을 마친 새내기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신촌 거리를 활보하고 있던 한 연세대 신입생은 “입학 전 신입생 환영회에서 만난 동기들과 카페에 가고 있다. 선배들은 코로나19 때문에 학교도 제대로 못 나와 동기들과 친해질 기회가 없었다고 하는데, 우리 학번부터 다시 대면 수업이 시작됐다”면서 “새내기로서 동기들과 학교생활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돼 기쁘다”며 들뜬 모습을 보였다. 

2월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골목이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
2월28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골목이 한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

신촌 거리 조금만 벗어나도 사람 만나기 힘들어 

이 와중에 모자를 눌러 쓰고, 대학 과점퍼를 입은 학생들이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방학 동안 지방에 거주했던 학생들이 개강을 앞두고 학교 근처에 있는 자취방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이날은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학교 이름이 써있는 롱패딩을 대충 둘러입고, 슬리퍼를 끌고 마실 나온 학생들도 꽤나 보였다. 

기자는 이런 풍경들을 보면서 지난 3년간 꽁꽁 얼어붙은 대학 상권에도 봄이 찾아온 게 아닐까 생각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대학 상권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비대면 수업이 일상화되면서 학생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다. 매출 급감과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문 닫는 가게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처럼 대학 상권은 ‘자영업자들의 무덤’이었지만, 일상 회복이 가속화되면서 차츰 숨통이 트이는 모습이다. 신촌 거리에 자리 잡은 액세서리 가게의 한 종업원은 “확실히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많아졌다. 물건을 보러 오는 손님도 늘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때보다는 확실히 매출이 좋아졌다”면서 “물론 코로나 이전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나아지길 기대해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가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여전히 깊다. 코로나19가 사실상 종료되면서, 일상이 회복되고 있지만 지금은 치솟는 물가와 경기 침체가 발목을 잡고 있다. 또 젊은 층이 강남과 홍대 앞 등 일명 ‘핫플레이스’로 몰리면서 대학가는 더욱 어려워졌다. 코로나19 때 몰락한 대학 상권이 당장 회복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신촌 거리에서 조금 벗어난 먹자골목에는 사람이 거의 다니지 않았다. 물론 신촌 먹자골목은 술집이 많기 때문에 오후 시간에는 유동인구가 적을 수 있지만, 빈 상가가 많았다. 주변 상인들은 저녁 시간대가 돼도 장사가 잘 안되기 때문에 신규 자영업자들이 신촌 먹자골목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일반식당 주인들도 텅빈 매장에 덩그러니 앉아 스마트폰만 바라봤다. 신촌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박아무개씨는 “요즘 대학생들은 신촌에서 안 논다. 대부분 연남동, 합정, 홍대로 넘어가서 술을 마신다. 사실 신촌에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술집이 별로 없다”면서 “또 인천 송도에 연세대 캠퍼스가 생기면서 학생 수가 분산돼 신촌을 찾는 유동인구도 크게 감소했다”고 말했다. 

 

공실 넘쳐나는 대학 상권

이화여대 앞은 상황이 더 심각했다. 교문을 오가는 대학생과 외국 관광객이 적지 않았지만, 대학 정문과 이어진 길가에는 공실로 방치된 상가가 곳곳에 있었다. 텅 빈 상가 쇼윈도에는 임차인을 찾는 광고가 붙었다. 특히 이화여대 정문에서 신촌기차역 방면으로 길게 늘어선 1층 상가 43개 중 영업 중인 상가는 14곳뿐이었다. 내부 수리와 각종 공사로 먼지가 날리는 상가도 많았다.  

이대 앞의 대표적인 명소로 꼽히던 옷가게 거리는 슬럼가를 연상케 했다. 장사를 하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특히 노른자위 땅이라고 불리던 사거리 상가 중 영업을 하고 있는 가게는 한 곳밖에 없었다. 두 곳은 공실이었으며, 한 곳은 가게 문을 열지 않았다.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어 황량하게 느껴졌다. 이대 근처에 살고 있는 한 여성은 “사실 이 거리는 낮에만 다닌다. 저녁에는 장사하는 가게도 없고 대부분 불이 꺼진 상태로 어두컴컴해 혼자 다니기 무섭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래서였을까. 신촌·이대 권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서울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부동산원 상업용 부동산 임대동향조사 통계에 따르면, 신촌·이대 권역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지난해 1분기 13.8%, 2분기 15%, 3분기 10.3% 등을 기록하며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서울 평균 공실률인 6.3%보다 높은 수치다. 

이 같은 공실률은 인근 상권과도 대조된다. 지난해 마포구 동교·연남 권역은 1~3분기 모두 공실률 0.9%에 불과했다. 소규모 상가 공실률도 신촌·이대 권역은 1분기 13.8%, 2·3분기 9.0%였지만 동교·연남은 세 분기 모두 0%로 집계됐다. 서울신용보증재단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신촌 상권 생존율은 32%로 서대문구 14개 동 가운데 가장 낮다. 

이대 자영업자들도 학생들이 대학가에 돌아와도 경기가 좋아졌다는 걸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대 정문에서 노점상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이대 앞이 완전히 죽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실상 해제됐고, 학생들도 학교에 돌아왔지만 장사가 전혀 안 된다”면서 “최근 이대 졸업식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왔지만, 꽃도 안 팔렸다”고 토로했다. 

다른 상권의 회복 속도와 비교하면 이대의 상권 침체는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이대 상권은 의류 매장과 유명 미용실, 맛집 등이 즐비해 서울 강북 지역의 대표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화장품 매장이 우후죽순 들어서면서 주요 고객층이 대학생에서 해외 관광객으로 바뀌었다. ‘제2의 명동’으로 불릴 만큼 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운영되던 이대 상권은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았다.

2월16일 기자가 찾은 숙명여대 상권도 마찬가지였다. 옷가게와 액세서리 상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문을 연 카페도 손님이 없었다. 어디든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던 화장품 매장 올리브영도 텅텅 비었다. 지난해 12월에는 이 일대 상권 형성 초기인 1980년 창업해 43년간 순두부 맛집으로 유명했던 ‘선다래’가 문을 닫아 충격을 줬다. 

2월2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젊음의 거리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다. ⓒ시사저널 최준필
2월28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젊음의 거리가 한적하다 못해 적막하다. ⓒ시사저널 최준필

고물가에 학생들 지갑도 닫혀 

상인들은 대학 상권의 불황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속되는 고물가로 인해 학생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전망에 힘이 실린다. 대학가에서 사양산업으로 여겨졌던 ‘하숙집’이 때아닌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요즘 같은 시대에 최소 60만~70만원에 달하는 월세와 관리비까지 내야 하는 원룸에 산다는 건 말 그대로 ‘숨만 쉬어도 100만원’이 나가는 일이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은 대학생들에게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학생들은 월 40만~50만원에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하숙집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라질 것만 같았던 하숙집 골목은 이제 ‘빈방’이 없을 정도라고 한다. 

대학가 슬럼화를 막으려면 지자체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 같은 경기 침체 분위기 속에서 자영업자들은 계속 어려워질 것이며, 20대 문화의 변화와 인구 급감 등 요인으로 대학 상권 쇠퇴는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서대문구청과 신촌 상인들은 ‘대중교통전용지구’ 해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2014년 1월 대중교통전용지구로 지정된 연세로(연세대~신촌로터리)에서는 주말마다 대중교통을 비롯한 차량 통행이 금지돼 왔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등 직격탄을 맞은 상인들과 구는 상권 회복을 위해 1월20일부터 차량 통행을 전면 허용했다. 아울러 구는 지역 상권 활성화 방안도 내놨다. 현재 의류와 잡화, 이·미용원 등으로 한정돼 있는 권장 업종을 휴게·일반음식점, 제과점, 학원, 공연장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긴 신촌 지구단위계획을 올 상반기까지 변경할 예정이다. 지자체의 이 같은 대책이 효과를 거둘지는 알 수 없지만, 자영업자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을 정도로 절박한 모습이다. 꽁꽁 얼어붙은 대학가에 진정한 봄은 언제쯤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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