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리그’ 택한 KT…대통령실·여당 “이대론 안 돼”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2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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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관계 작용된 폐쇄적 내부 선출구조 산물” 비판 직면
윤경림 사장 포함엔 “심판이 선수로 뛰었으니 불공정 게임 아닌가”
구현모 친형 회사 현대차 인수 과정서 관여 의혹…“경찰 정식 수사 전환 전망”
서울 광화문 KT 본사 ⓒ연합뉴스
서울 광화문 KT 본사 ⓒ연합뉴스

KT 이사회가 차기 대표 후보 면접 심사 대상자 4명을 공개하자 거센 비난의 여론에 직면했다. KT 출신 전·현직 임원 4명으로만 남겨두면서 “그들만의 리그” “이익 카르텔”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다. 대통령실은 물론 여당에서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나섰다. 때문에 KT 대표 선발 과정이 이사회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란 전망까지 나온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특히 윤경림 그룹 트랜스포메이션 부문장(사장)이 최종 후보군에 뽑힌 것에 대해 강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구현모 대표의 측근으로 대표 선출 과정을 주도하고 있는 지배구조위원회에 속해 있으면서 ‘선수’로 뛰고 있어서다. 아울러 구 대표가 받고 있는 배임 혐의 의혹에 윤 사장이 깊숙이 관여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경찰이 본격 수사에 나설 움직임도 내비치고 있어 파장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대로면 주총서 반대 직면할 수도”

KT 이사회는 2월28일 대표이사 후보 면접 심사대상자(숏리스트)를 공개했다. 서류 심사를 통과한 후보자는 박윤영 전 KT 기업부문장, 임헌문 전 KT 매스총괄, 윤경림 KT 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 신수정 KT 엔터프라이즈부문장 등 4명이다. 4명 모두 KT에서 재직했거나 임원으로 현재 근무하고 있는 내부 인사다. 강충구 KT 이사회 의장은 “정해진 심사 기준에 맞춰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면접 심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KT의 발표 직후 대통령실은 불쾌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이대로 흘러가게 두지 않겠다는 분위기까지 읽힌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KT의 발표가 있었던 당일 시사저널에 “이번 KT 숏리스트는 내부 특정인들의 이해관계가 작용된 내부 선출구조의 산물”이라며 “이런 폐쇄적인 구조는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회사법에 반하는 시스템”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글로벌 스탠다드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서 지배구조(거버넌스) 영역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다.

이 관계자는 특히 윤경림 사장이 최종 후보군에 포함된 데에 대해 “사내 이사인데 선출 과정에서 심판 역할을 할 사람이 선수로 뛰었으니 불공정 게임 아닌가”라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앞서 시사저널은 지난 2월24일 대표 선출 과정을 주도하는 지배구조위원회에 윤 사장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단독] KT 차기 대표 검증할 ‘심판’이 ‘선수’로?…구현모 측근 포함 논란> 기사 참조)

당시 KT 측은 윤 사장이 후보군 포함 이후 지배구조위원회 회의 참석과 안건 보고 등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KT 안팎에서는 윤 사장이 지배구조위원회를 사퇴하거나 대표이사 후보직을 사퇴하는 등의 선제적 조치가 있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바 있다.

여당에서도 이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2일 기자회견을 연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윤 사장은 현재 대표 선임 업무를 하고 있는 이사회의 현직 멤버로 심판이 선수로 뛰고 있는 격으로 출마 자격이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KT 이사회는 이를 무시하고 윤 사장을 후보군에 넣어 그들만의 이익 카르텔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앞서 KT 차기 대표 인선 과정에서 특정 후보가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윤심(尹心·윤 대통령의 의중)’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실이 특정인을 지원한다는 얘기는 어불성설”이라며 “그런 발상 자체가 애초부터 없었고 지금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실이 KT 대표 인선 과정에서 문제의식을 드러낸 것은 국민의 이해와 깊은 관계가 있는 이른바 ‘과점산업’ 기업은 회사법에 따른 거버넌스가 제대로 수행돼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다. 회사법이 제대로 지켜져 도덕적 해이를 막고 주주 이익과 함께 ESG 경영을 추구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국가 산업에 지대한 역할을 미치는 과점기업은 결국 주주총회와 이사회, 감사의 기능이 실질화돼야 한다”며 “그런 관점에서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의결권 행사 지침)’를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현재 KT 지분 9.95%을 갖고 있는 1대 주주다. KT 대표이사가 선출되더라도 국민연금의 찬성이 필요한 상황이다. 하지만 설득을 끌어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현재로서는 오는 3월 주총에서 대표이사 선임 안건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서원주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은 KT 이사회의 구현모 대표 단독 후보 추천 결정에 대해 “최고경영자(CEO) 후보 결정이 경선의 기본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구 대표의 차기 대표 후보 사퇴와 함께 대표 재선정에 들어가게 된 계기가 된 발언이었다.

KT의 2대, 3대 주주는 현대차(7.79%)와 신한은행(5.48%)이다. KT는 지난해 두 기업에 각각 7500억원과 4375억원 규모의 투자를 통해 지분 맞교환을 진행했다. 이른바 ‘지분 혈맹’ 기업으로 KT로서는 우호 지분이라 볼 수 있다. 국민연금이 대표이사 선임에 반대해도 현대차와 신한은행이 찬성한다면 통과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변수는 국민연금이 신한금융지주의 최대주주(8.29%)이고 현대차 2대주주(7.78%)라는 점이다. 두 기업으로서는 국민연금의 의견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인 셈이다.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해 12월7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시민 원팀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현모 KT 대표가 지난해 12월7일 서울 송파구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호텔에서 열린 디지털 시민 원팀 출범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현모 대표 친형 회사 현대차 인수 과정서 배임 의혹 재점화

KT를 둘러싼 전방위적인 수사 움직임도 KT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다. 국회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3월2일 기자회견에서 “차기 대표 인선이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렸다”며 KT의 ‘이권 카르텔’을 문제제기하는 동시에 검찰에 구현모 KT 대표와 주변 직원들에 대해 수사해야 할 것을 주장했다.

이들 의원들은 특히 윤경림 사장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다. 이들은 “구 대표는 친형의 회사인 에어플러그를 인수한 현대차 그룹에 지급 보증을 서주는 등 업무상 배임 의혹이 있다”며 “이번 후보 4명 중 한 명인 당시 윤경림 현대차 부사장은 이를 성사시킨 공을 인정받아 구현모 체제 KT 사장으로 2021년 9월에 합류했다는 구설수가 있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언급한 에어플러그는 2010년 설립됐지만 적자에 허덕인 기업이었다. 그러다 현대차와 2016년 차량용 통신 소프트웨어 개발 협력을 맺으면서 살아났다. 이후 현대차는 2019년 9월 에어플러그에 36억원을 투자해 지분 16.84%를 확보한 데 이어 2021년 7월엔 245억원을 추가 투자해 에어플러그를 인수했다. 이 과정에서 구 대표가 현대차의 에어플러그 인수에 따른 재무적인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보은성 투자, 이른바 지급보증을 서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아울러 당시 현대차 부사장이었던 윤 사장이 깊숙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2014년 당시 황장규 KT 회장 시절 KT로 영입된 윤 사장은 2019년 3월 현대차 오픈이노베이션전략사업부 부장(부사장)으로 자리 옮겼다. 이후 2021년 9월 구 대표가 재영입하면서 구 대표와 손발을 맞췄다.

여당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에어플러그 관련 사건에 대해 경찰 내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정식 수사로 전환될 것으로 보인다”며 “중대 경제범죄로 보고 검찰에서 인지 수사를 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경찰은 구 대표와 현대차 사이의 투자 유치와 지급 보증 사건에 윤 사장이 연결고리라고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수사가 본격화된다면 칼날은 윤 사장을 겨누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KT는 조만간 대표이사후보심사위원회에서 이해관계자 의견을 반영한 심사기준에 맞춰 면접 심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후 이사회에서 최종 대표이사 후보 1인을 확정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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