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구멍 뚫린 윤석열 정부의 인사 검증 [최진 쓴소리 곧은 소리]
  •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cj0208@hanmail.net)
  • 승인 2023.03.03 15:05
  • 호수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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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권자-검증 책임자-검증 실무자-내정자 모두 검찰 출신인 코드인사가 문제
철저한 실무 검증 위해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가 “그냥 넘어가자”고 하면 안 돼

지금 대한민국은 ‘학폭 논란’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하다. 전국의 수사경찰 3만 명을 지휘하는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 정순신 변호사가 임명됐는데, 아들의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져 하루 만에 사퇴한 것이다. 총리도 장관도 아니고 잘해야 차관급에 대한 인사 실패가 이토록 큰 파장을 몰고 온 이유는, 그 자리가 워낙 ‘민감한 자리’인 데다 인사 검증 시스템 곳곳이 허망하게 뚫렸기 때문이다. 특히 부잣집 자식들의 학폭 문제를 다룬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던 터에 2030세대에게 참을 수 없는 불공정 이슈를 걸러내지 못한 검증 시스템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오 국민의힘 고문도 3월1일 공개적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의 사과와 함께 윤희근 경찰청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 파문은 계속되고 있다. 필자는 과거 청와대에서 검증 관련 업무를 본 적이 있는데 경험상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검증 원칙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①검증 대상자에 대한 정보와 평판 및 여론 수집 ②철저한 실무적 검증 ③대통령에 대한 가감 없는 보고. 이번의 어처구니없는 검증 참사는 왜, 어떻게 발생한 것일까?

2월25일 서울 숭례문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퇴진·김건희 여사 특검 촉구 촛불승리전환행동 집회에서 한 시민이 아들 학교폭력 논란에 휩싸인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학폭 논란’ 일파만파 번지게 한 인사 실패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하자마자 대통령실의 권력 남용 여지를 차단하려면 고위 공직자 검증 시스템을 미국식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한동훈 법무장관은 곧장 미국으로 날아가 미국 법무부 산하 FBI(연방수사국)의 검증 시스템을 벤치마킹하고 돌아왔고, 지난해 6월부터는 윤석열 정부의 검증 업무가 기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법무부의 인사정보관리단으로 넘어갔다. 외형상 한국은 ‘선진국형 법무부 검증 시스템’을 갖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허점과 맹점이 적지 않다.

첫째, 가장 근본적으로 1단계 추천 시스템(인재풀)의 문제다. 고위 공직자의 검증 문제를 개선하려면 추천 단계부터 개선해야 한다. 우리의 고위 공직자 추천은 주로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들의 학연,지연 등 사적 인연이나 정치적 코드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애당초 냉철한 검증이 이뤄지기 어렵다.

문제의 정순신 변호사도 2005년 윤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장관과 함께 근무했던 ‘검찰 코드’가 작용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검증 업무를 담당한 법무부 인사정보관리단 실무자도 당시 함께 근무했던 검사 출신이었다. 다시 말해 인사권자와 내정자, 검증 책임자, 검증 실무자 4명이 모두 ‘옛 동지’였으니 검증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었겠는가? 이러한 ‘끼리끼리 검증’은 문재인 정부를 비롯한 역대 정부에서도 숱하게 발생해 인사 참사로 이어졌다.

미국의 공직자 인사 추천은 대통령이나 측근의 사적 라인이 아니라 철저하게 백악관 법률고문실(OCP)의 공적 라인을 통해 이뤄진다. 이미 오래전에 1000개가 넘는 인사청문 대상자를 염두에 두고 검증 과정을 끝낸 인재풀에서 고르기 때문에 ‘깜짝 인사’로 인한 검증 실패는 거의 없다. 덕분에 1789년 건국 이래 지금까지 사전 검증에 걸려 상원 인준이 거부된 경우는 총 12회에 불과하다. 미국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향식 추천인 데 반해 우리는 위에서 아래로의 하향식 추천이 문제의 핵심이다. 제2, 제3의 정순신 사태를 막으려면 윤 대통령이 코드 추천을 하지 않고 능력과 전문성을 중시하는 공적 추천을 하겠다는 의지를 참모들에게 강하게 피력하고 실제로 그렇게 실행해야 한다.

둘째, 2단계 비공개 검증 시스템(사전검증)을 보자. 윤석열 정부에서는 2022년 6월 신설된 법무부의 인사정보관리단이 검증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한동훈 장관 휘하에 단장과 인사정보 1, 2담당관 등 20여 명의 검증팀이 경찰, 국세청 등 관계기관의 협조를 받아 검증 작업을 진행한다. 그런데도 이미 2018년 KBS에 보도돼 세상 사람들이 다 알 만한 정 변호사의 아들 학폭 문제를 거르지 못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어떨까? 법무부 산하지만 실제로는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연방수사국(FBI)의 인사 전문가들이 국세청과 윤리청 및 해당 부처 윤리국의 협조를 받아 고위 공직자의 과거를 샅샅이 캐낸다. 내정자의 과거 7년간 거주지의 평판, 중학교 졸업 후 7년간 학력, 과거 7년간 직장-상관들의 평판, 현재 배우자 및 과거 배우자의 평판, 부모·형제자매의 평판, 과거 7년간 방문 국가 내역, 과거 7년간 진료 내역, 과거 7년간 불법약물 사용 및 알코올 남용 내역, 피조사·범죄, 부채, 소송 관련 경력 등 200개 항목에 걸쳐 조사한다. 그래도 부족하면 지인의 지인이 추천한 지인까지 탐문 조사한다.

이러한 ‘아메리칸 스타일’로 검증하면, 학폭, 입시, 취업, 아빠 찬스에 이르까지 빠져나갈 틈이 없다. 이런 검증을 위해 미국은 3~4개월이 소요되는 반면 우리는 3~4주 정도에 불과하다. 청문회 과정까지 합하면 우리가 6주 정도 소요되는 반면에 미국은 6개월이 소요된다. 엄청난 차이다.

 

검증 과정, 미국 3~4개월 한국은 3~4주

진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최종 판단이다. 아무리 검증을 철저히 해서 흠결을 모조리 발견했다고 해도 대통령이나 측근 실세가 “그냥 넘어가지요!”라고 한마디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게 우리의 검증 시스템이다. 미국은 FBI가 그냥 넘어가겠는가? 바이든 대통령이 그냥 넘어가겠는가? 윤석열 대통령도 앞으로는 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설령 윤 대통령이 그냥 넘어가려고 해도 윤핵관 같은 실세 참모들이 곁에서 “아니되옵니다!”를 외쳐야 한다. 이건 국민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 자신을 위해서다. 과거 청와대에서 검증 관련 업무 때 중대한 하자가 발생했는데도 “그냥 넘어가자”는 지시에 순순히 응했던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셋째, 3단계 공개 검증(국회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은 이미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져 있다. 미국은 비공개 검증이 끝나면 다시 상원의 심판을 통과해야 의회 인사청문회가 시작된다. 반면 우리는 비공개 검증에 대한 심판 과정 없이 곧바로 국회 인사청문회에 들어가기 때문에, 야당은 무조건 반대와 망신 주기, 여당은 무조건 찬성과 밀어붙이기 끝에 대통령의 인준으로 종료되는 일이 빈발했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검증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정순신 사태와 관련해 “책임감은 느끼지만 책임질 수는 없다”며 “검증은 여러 단계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책임 소재를 명확히 밝히기 어렵다”는 식으로 말했다. 고위 공직자의 추천-검증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설정해 놓는 것이 중요한 인사 검증 시스템 혁신임을 윤 대통령은 인식해야 한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br>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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