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범기업 대신 국내 자금으로…‘반쪽짜리’ 강제징용 배상해법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3.06 12:3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 강제징용 배상해법 발표…‘제3자 변제’ 공식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통해 판결금·지연이자 지급
“대법 판결 무시” 지적에 피해자 반발 예상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노역 피해배상을 핵심으로 한 해법을 공식 발표한 6일 오전, 역사 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이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긴급 항의 행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노역 피해배상을 핵심으로 한 해법을 공식 발표한 6일 오전, 역사 정의와 평화로운 한·일관계를 이한 공동행동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긴급 항의 행동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6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을 공식 발표했다. 한국 기업의 출연으로 재단을 설립해 피해 배상을 하는 게 골자다. 피고인 일본 전범 기업의 배상 참여 부분은 빠졌다. 정부는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자평했지만, 야권과 일부 피해자들의 반발은 불가피해 보인다.

외교부가 이날 언론에 배포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설명자료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사건 3건의 원고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들에게 지급할 금액은 약 40억원 규모로 알려졌다. 일본 피고기업 대신 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하는 이른바 ‘제3자 변제’ 방식이다.

재원 마련 방식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포스코와 한국도로공사, KT&G, 한국전력, KT 등 국내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이 우선 출연하게 된다.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하다는 게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다.

기쁨의 인사 건네는 日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94)씨와 고(故)김규수씨 아내 최정호(85.왼쪽)씨가 30일 오후 대법원을 나서며 감사의 손인사를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기쁨의 인사 건네는 日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 할아버지 -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 생존자 이춘식(94)씨와 고(故)김규수씨 아내 최정호(85.왼쪽)씨가 2018년 10월30일 오후 대법원을 나서며 감사의 손인사를 하는 모습 ⓒ 시사저널 최준필

그러나 일본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 미씨비시중공업의 참여는 담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당초 2018년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두 피고기업이 배상 의무를 지게 됐지만, 일본 정부가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강제징용 배상 책임이 끝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현재까지 배상이 이뤄지지 않았다.

대신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은 차후 한‧일 재계 단체가 공동 기금을 조성하는 데 참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한‧일 간엔 ‘미래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청년 교류 증진’ 등 사업을 위해 한국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일본 게이단렌(경제단체연합회)이 공동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두 피고기업은 게이단렌 회원사다.

일본 피고기업의 배상 참여는 끌어내지 못했지만, 한국의 ‘대승적 결단’으로 해법 마련의 기회를 열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번 해법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국위에 걸맞은 우리의 주도적 대승적 결단이다. 정부가 이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고 책임감을 갖고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자평했다.

향후 정부는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정부 해법안과 이후 절차를 직접 설명하고 판결금 수령에 대한 동의를 구할 예정이다. 박 장관은 “정부는 그동안 해법 모색을 위해 피해자 및 유족과 직간접적으로 소통해왔다”며 “많은 유족께서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 이해를 표해주셨고 상당수 유족분들은 이 문제가 조속히 종결되길 바란다는 의견을 주셨다. 정부와 재단은 피해자 유족들과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마친 후 집무실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진 외교부 장관이 6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일제 강제징용 피해배상 해법 발표를 마친 후 집무실로 이동하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부 피해자 측과 야권의 반발은 이어지고 있다. 피해자 측인 강제징용 소송 법률대리인인 임재성 변호사는 SNS를 통해 “한국 기업 돈으로 강제동원 피해자들 채권이 소멸되는 꼴”이라며 “강제동원 문제에는 1엔도 낼 수 없다는 일본의 완승”이라고 비판했다. 야권도 윤석열 정부에 ‘친일 프레임’을 꺼내들며 “외교 참사의 끝판왕”이란 취지로 공세 수위를 높였다.

한편 피해자들이 요구해왔던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는 기시다 일본 총리의 ‘김대중-오부치(小淵) 선언’ 계승 방침 표명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인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1998년10월 일본 도쿄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가 공동으로 발표한 것으로, 이 선언에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가 명기돼 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