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해방 일지] 필로폰·펜타닐·프로포폴…“난 이렇게 마약에서 벗어났다”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3 07:35
  • 호수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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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래퍼부터 30대 여성, 50대 가장 등 마약 극복자 밀착 취재
“병원 치료와 나를 잡아주는 사람들의 도움 덕이 컸다”

2022년 한 해에만 적발된 국내 마약사범이 2만여 명을 기록했다. 검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최다 기록이다. 최근 유명 영화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37)의 마약 투약 논란까지 터지면서 마약 문제의 심각성이 재조명됐다. 그러나 초점은 마약범죄의 단속·처벌에만 맞춰졌다. 이에 시사저널은 중독자들이 어떻게 재활치료에 성공해 사회에 복귀했는지를 들여다봤다. 3월7일 서울·경기 인근에서 마약중독에서 해방된 세 명을 차례로 접촉했다. 다음은 이들이 말하는 중독 과정과 극복기다.

2018년 10월15일 서울지방경찰청 주차장에 대량의 필로폰 등 압수품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2018년 10월15일 서울지방경찰청 주차장에 대량의 필로폰 등 압수품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자신이 중독자임을 인정하라” 상담사가 된 중독자의 조언

무려 10년이다. 현재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와 마약 전담 치료보호기관인 인천참사랑병원에서 회복상담사로 활동 중인 한창길씨(51)가 필로폰에 빠져있던 시간이다. 소위 ‘뽕’이라고도 불리는 필로폰은 코카인, 헤로인과 함께 ‘3대 마약’으로 분류된다. 한씨가 필로폰에 처음 손을 댄 건 2007년이다. 서울 강남구에서 오락실을 운영하던 그는 가게 손님이 필로폰을 판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한씨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억했다.

“10대 시절, 우연히 본드를 흡입했다. 성인이 되고서는 일본에 건너가 대마를 해보기도 했다. 필로폰은 어떤지 궁금했다. ‘딱 한 번만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약을 조절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게 화근이었다.”

한씨는 가게에 있던 손님, 즉 마약 판매책에게 필로폰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판매책은 그 자리에서 “나를 뭘로 보느냐”며 화를 냈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판매책은 한씨에게 전화를 걸어 “ㅇㅇㅇㅇㅇ모텔 1408호로 오라”고 말했다. 그곳에서 처음 필로폰을 마주했다. 한씨는 약물이 혈관을 타고 몸에 들어온 순간 ‘한 번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필로폰을 본격적으로 찾게 됐고, 어느 순간 170cm가 넘는 그의 몸무게는 40kg대까지 떨어졌다. 끼니를 거를 때가 다반사였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위기의 순간에 기회가 찾아왔다. 2017년 3월, 한씨는 결국 마약사범으로 구속됐다. 역설적이게도 수감생활이 그를 살렸다. 한씨가 교도소에서 만난 마약 판매책은 한씨의 얼굴을 보더니 “여기 안 들어왔으면 곧 죽었겠다”고 말했다. 한씨는 1년여의 수감생활 동안 마약을 하려야 할 수 없었다. 교도소 내 교육 과정에서 만난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지도실장은 그의 은인이 됐다. 박 실장은 수감자들에게 “25년 마약 중독자로 살았지만, 20년째 단약 중”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한씨는 이 말을 잊을 수 없었다. 2019년 1월, 한씨는 수감생활을 마치자마자 박 실장을 찾았다.

“출소하고 갈 데가 없었다. ‘출소뽕’(출소한 직후 필로폰을 투약하는 것을 의미하는 은어)이라고, 다시 약을 찾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살기 위해 박 실장을 찾아갔다. 투약하면, 혀가 말려서 기도를 막는다. 온몸이 안 움직이게 된다. 저체온증도 여러 부작용 가운데 하나다. 약을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잃을 것을 생각했다. 마약을 하면 순간의 쾌락은 얻겠지만, 잃을 것이 더 많다는 걸 깨달았다. 무엇보다 사랑하는 아들이 생각났다.”

ⓒfreepik

한씨는 어떻게 필로폰을 이겨냈을까. 먼저 주변 정리부터 시작했다. 한씨는 “마약사범 교도소 동기들이 출소 후 소통하며 마약을 사고파는 경우가 허다하다”면서 “마약과 관련된 사람들과의 연락을 모두 차단하는 대신, 가족과 친구처럼 가까이 있는 이들에게 마약 투약 사실을 털어놨다”고 설명했다. 인천참사랑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한씨는 약을 끊은 지 4년이 넘은 지금도 한 달에 한 번 병원을 찾는다. 익명의 사람들이 마약중독에서 회복하기 위해 모이는 ‘NA모임(Narcotic Anonymous)’, 한국마약퇴치본부 강의 활동 등도 이어오고 있다.

“마약에서 해방되려면 자신이 중독자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죽을 때까지 중독과 싸워야 한다. 단약에 잠시 성공했어도 자만해서는 안 된다. 사회는 중독자들을 치료 대상으로 봐야 한다. 중독자들도 고통이 심하기 때문에 단약을 하고 싶어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치료기관과 인력은 턱없이 부족하고, 예방교육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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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타닐에 손댄 20대 래퍼 “‘마약 친구’ 단절하라”

20대 남성 하상우씨(가명·23)의 중독 기간은 3년이었다. 하씨가 손댄 마약류는 강력한 의존성으로 미국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펜타닐이다. 펜타닐은 말기 암환자처럼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들에게만 투약하는 마약성 진통제다. 중독성이 워낙 강하다 보니 중환자에게도 신중하게 처방한다. 펜타닐은 병·의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다. 2017년 무렵, 미국에서 건너온 펜타닐이 국내 음악계에 퍼졌다고 한다. 래퍼 활동을 했던 하씨 역시 음악을 하는 동료에게서 펜타닐을 처음 받았다. 2018년 2월의 일이다.

하씨는 펜타닐 흡입을 반복했다. 펜타닐 패치 조각에 호일을 씌우고, 호일에 불을 붙인 뒤 연기를 흡입하는 것이다. 그는 “한여름에 패딩을 입고 뜨겁게 데워진 전기장판 위에 누워있어도 극심한 오한에 시달렸다”고 회상했다. 고통을 견디기 위해 펜타닐을 찾았고, 다시 고통을 느꼈다. 그러다 2020년,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함께 마약을 한 친구와 심하게 다퉈 경찰 조사를 받았다. 한 달 후에는 당시 18세였던 친한 동생이 약물 과다복용으로 사망했다. 이를 직접 목격했다. 하씨 본인도 펜타닐 때문에 심폐소생술(CPR)을 받기도 했다. 그가 약을 끊기로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다음과 같았다.

“음악하며 만난 가장 친했던 형이 있었다. 우리가 속한 모임이 있었는데, 약을 끊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본 형은 ‘모임에서 나가라’고 했다. 믿었던 사람에게 배제됐다는 생각에 충격이 컸다. 그 무렵, 경찰 조사도 받았다. 집까지 찾아온 경찰을 본 부모님이 우는 모습을 봤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소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2021년 새해 다짐으로 약을 참아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일주일, 그다음에는 한 달, 그 후에는 두 달로 기간을 늘렸다. 마약을 하는 주변인들도 모두 차단했다. 마약중독자들에게는 어떤 사람과 관계를 맺는지가 정말 중요하다. 병원 치료도 필수다.”

물론 고비는 있었다. 하씨는 “펜타닐을 찾기 위해 나도 모르게 휴지통을 뒤지고 있었다”고 기억했다. 그러나 가족과 병원 의료진의 도움으로 2년째 단약 중이다. 하씨가 금단 증상 탓에 하는 이상행동을 가족들이 만류했고, 인천참사랑병원은 그에 대한 치료를 이어갔다. 하씨는 일기를 쓰며 자신을 되돌아봤다. 주변 환경에도 변화를 줬다. 매일 한 시간 이상 산책을 시작했다. 하씨는 현재 마약중독의 부작용 가운데 하나인 ‘틱 증상’을 없애기 위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다. 작사 활동과 음악 공부도 병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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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과에서 시작된 프로포폴…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살렸다”

배우 유아인의 투약으로 알려진 약물인 프로포폴. 30대 여성 오미영씨(가명·38)도 프로포폴 중독자였다. 프로포폴은 수술이나 검사 시 전신마취제로 사용되는데, 오·남용하면 중독될 수 있다. 오씨가 처음 프로포폴을 알게 된 건 2018년이었다. 오씨가 다니던 피부과에서는 간단한 시술에도 수면마취제를 사용했다.

그 과정에는 오씨의 중학교 동창 김영미씨(가명·38)가 있었다. 오씨는 당시 김씨와 함께 살았는데, 김씨는 프로포폴 주사를 놓는 병원만 찾아다니는 ‘중독자’였다. 김씨와 피부과, 성형외과를 다니던 그는 어느덧 프로포폴이 없으면 잠을 잘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다. 하루에 5곳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주사를 맞기도 했다. 2년간 이러한 상황이 이어졌다. 2019년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프로포폴을 과다 처방한 병·의원을 적발했는데, 오씨는 이때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다.

오씨는 조사를 받은 후 약을 끊으려고 했지만 여러 번 실패했다. 일부러 밤을 새운 뒤 동틀 무렵에야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병·의원이 운영되는 낮 시간에 잠이 들면 프로포폴을 못 찾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달 만에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결국 경찰은 2021년 오씨를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가 있다며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투약 횟수를 의심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던 것이다. 오씨의 이야기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우연히 경찰 조사 사실을 알게 된 남자친구가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먼저 중학교 동창과 나를 분리시켰다. 친구와 함께 살던 집에서 떨어져 나와 중독 재활치료를 받게 했다. 2021년 8월부터 4개월 동안 병원에 입원도 했다. 친구도 이 무렵 함께 입원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친구는 더욱 잘못됐다. 퇴원한 후 강한 내성의 필로폰을 한 것이다. 그 친구와 차이가 있다면, 내게는 잘못된 길을 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오씨는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지난해 검정고시를 통과한 데 이어, 대학교에도 입학했다. 그는 현재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있다. 과거의 자신처럼 약물로 망가진 이들을 돕기 위해서다.

“마약중독자들에게 ‘완전한 회복’은 없는 것 같다. 한순간에 다시 마약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입원했을 때 매일 일기를 쓰고 심리치료를 받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퇴원한 후부터 지금까지도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의료진이 늘 관심을 쏟아주는 것 역시 감사한 일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 마약 문제는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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