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해방 일지] 치료보호기관 21곳 중 2곳만 운영…시설·의료진 턱없이 부족
  • 김현지 기자 (metaxy@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3 10:05
  • 호수 174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해 마약사범 2만여 명으로 ‘최다’… 정부, ‘마약 범죄 특별수사팀’ 가동

국내에서 붙잡힌 마약사범이 해마다 1만 명을 웃돌고 있지만, 마약중독자들을 위한 치료재활기관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정부가 지정한 마약 전담 치료보호기관 21곳 가운데 2곳만 운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단속과 처벌만이 아니라 중독자의 재활치료에 방점을 둔 대책을 정부가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1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체조 등을 통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연합뉴스
2001년 서울의 한 병원에서 체조 등을 통해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들 ⓒ연합뉴스

“마약중독 치료보호기관 13곳은 실적도 없어”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마약중독자 치료보호기관은 모두 21곳이다. 보건복지부가 이들 기관에 국가 예산으로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그런데 21곳 가운데 실적을 낸 곳은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뿐이었다. 2021년 기준 인천참사랑병원에서 치료보호를 받은 인원은 164명으로 가장 많았다. 2022년에는 인천참사랑병원에서 276명의 환자가 치료를 받았다.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2021년 107명·2022년 134명)을 제외한 나머지 기관의 치료보호 실적은 10명이 채 안 됐다. 심지어 치료 실적이 아예 없는 곳도 있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이 보건복지부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13곳의 치료보호기관은 실적이 아예 없었다. 이들 13곳은 2022년에도 환자를 받지 않았다. 인천참사랑병원과 국립부곡병원이 2021년(280명)에 이어 2022년(421명)에도 치료 보호를 받은 인원의 97%를 전담한 것이다.

재활치료기관이 부족한 만큼 국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보건복지부가 예산을 내려보내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의료진이나 시설 등 실질적인 지원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조성남 국립법무병원장은 2022년 10월6일 보건복지부 등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현재 기준으로 500명을 치료한다고 보더라도 20억~30억원이 필요하다”며 “민간병원의 경우 인원과 시설이 없어 치료비만 지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고 치료에 필요한 인원과 시설 지원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100만 명 이상의 마약중독자가 있지만 치료받고 있는 인원이 극히 일부라는 것이 문제”라고도 덧붙였다. 마약사범 재범률은 2021년 기준 36.6%다.

재활치료기관은 부족하지만, 국내 마약사범은 날로 늘어나고 있다. 2022년 한 해에만 적발된 마약사범이 2만 명에 이르렀다. 검찰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최다 기록이다. 대검찰청이 2월1일 공개한 ‘2022년 12월 마약류 월간 동향 자료’에 따르면, 국내 마약류사범은 2022년 기준 1만8395명이다. 마약사범은 2020년 1만8050명에서 2021년 1만6153명으로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했다. 대검찰청은 3월8일 ‘2023년 1월 마약류 월간동향’을 공개했는데, 올해 1월까지 단속된 마약사범은 1314명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2022년 12월27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 신년 특사 대상자를 발표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마약 청정국 지위 회복하려면…“재활치료 방점 둬야”

마약사범이 늘어나면서 ‘마약 청정국’을 가늠하는 마약지수(인구 10만 명당 검거된 마약사범 수)는 32를 넘긴 상황이다. 마약지수가 20을 넘으면 마약을 통제할 수 없는 사회에 진입했다고 본다. 즉, 인구 10만 명당 연간 마약사범이 20명(5000만 명 기준 1만 명) 이하여야 마약 청정국으로 불릴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1999년 마약사범이 처음 1만 명을 넘어서면서 마약 청정국 지위를 잃었다. 10·20대 젊은 층의 마약 투약은 또 다른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3월6일 서울 동대문구에서는 14세 여중생이 필로폰 0.5g을 구매해 집에서 투약한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2022년 적발된 마약사범(1만8395명) 가운데 10대는 2.6%(481명), 20대는 31.6%(5804명)다. 20대 마약사범 수는 30대(25.6%·4703명)나 40대(15.3%·2815명)를 비롯한 모든 연령층에서 가장 많았다.

정부는 칼을 빼들었다. 서울중앙·인천·부산·광주 등 전국 4대 검찰청에서 ‘범정부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을 2월21일 가동했다. 마약범죄 특별수사팀은 검찰 69명을 비롯해 관세청 6명, 식약처 3명, 서울시·인천시·부산시·광주시 각 1명, KISA(한국인터넷진흥원) 2명 등 모두 84명 4개 팀 규모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0월13일 대검찰청에 마약범죄에 대한 엄정 대응을 지시하면서 “전쟁을 치른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주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마약범죄로부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대한민국이 다시 마약 청정국의 확고한 지위를 신속하게 회복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검거 못지않게 재활과 치료 역시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천영훈 인천참사랑병원장은 “환자들이 병원을 나가면 교도소 친구 등과 마약을 다시 하는 경우도 많다”며 “미국은 치료공동체 등을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투자해 왔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마약중독자들은 교육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이고, 이들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국가가 최소 1년 이상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등 유관단체 역시 “마약 문제는 성교육처럼 예방교육을 하고, 마약사범에 대한 사후 교육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10대 마약중독 환자 수는 2017년 16명에서 2021년 21명으로 늘어났지만 같은 연령대의 마약사범 수는 119명에서 450명으로 278.2%나 폭증했다. 서영석 의원은 “마약중독에 대한 예방교육을 제대로 실행하고, 중독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및 재활을 실시해 이들이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