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선택’…순창조합장선거 투표소·분향소 가리키는 곳은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3.03.1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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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장소선정 미숙’…트럭참사 인재·유족 2차 가해 논란
애초 투표소·분향소 최적지는…새 각광지 ‘구림면체육관’
유족 반발하자 합동분향소 통째로 뜯어 면체육관에 옮겨
​10일 오전, 전북 순창 구림면의 한 주민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웃사촌이었던 트럭사고 사상자를 추모·위로하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10일 오전, 전북 순창 구림면의 한 주민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이웃사촌이었던 트럭사고 사상자를 추모·위로하는 현수막을 쳐다보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최근 전북 순창 구림농협 조합장선거 투표소에서 1톤 트럭이 유권자들을 덮친 참사로 지역사회가 슬픔에 잠겼다. 이번 사고의 1차적 원인으로 고령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꼽히고 있다. 한편으론 안이한 투표소 설치에 따른 예고된 인재였다는 분석과 효율적인 투표소 관리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주장이 엇갈린다. 하지만 보다 안전한 ‘곳’을 놔두고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장소에 투표소를 설치할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 추진위원회 측이 합동분향소를 사고 현장에 설치하려 했다가 유족 측의 거센 반발로 분향소 개장 직전에 부랴부랴 이곳으로 분향소를 옮기는 소동을 빚으면서 추모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결과적으로 사고 발생이나 수습 단계에서 장소 선택의 불철저함을 드러냈다는 의견이 팽배하다. 그렇다면 조합장선거 투표소와 분향소가 모두 가리키는 이곳은 어디였을까. 

8일 오후 고령의 유권자가 제3회 전국동시 조합장선거 투표를 위해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순창 구림농협 자재집하장에 설치된 투표소를 향해 위태위태하게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8일 오후 고령의 유권자가 제3회 전국동시 조합장선거 투표를 위해 주위의 부축을 받으며 순창 구림농협 자재집하장에 설치된 투표소를 향해 위태위태하게 걸어가고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위험 도사린 농협 자재집하장에 투표소…안전 ‘뒷전’ 

제3회 농협조합장 선거 순창 구림면투표소는 농협 자재집하장에 설치됐다. 총선이나 지선, 대선과 같은 다른 선거와 달리 조합장 선거일은 임시 공휴일이 아니다. 이날 사고가 발생한 구림농협 자재집하장은 본격적인 영농철을 맞아 정상 운영되면서 각종 농자재를 구입하려는 농민들의 차량들이 빈번하게 출입하며 사고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처럼 위험이 도사린 자재창고에 투표소가 차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선관위 투표소 설치 기준을 보면 시설의 편의성과 접근성을 주요 선정 기준으로 삼고 있을 뿐 투표소를 찾는 유권자들의 ‘안전’에 대한 기준은 없다. 전국동시조합장선거라는 이름으로 선관위가 주관한 전국적인 투표였지만, 세심한 투표장 설치 등 ‘안전’은 결국 뒷전으로 밀렸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북선거관리위원회와 본지 취재에 따르면 구림농협 조합장 선거 투표소는 지난달 2일 최종 선정됐다. 선관위가 애초 사전답사를 통해 투표소로 염두에 둔 곳은 농협 길 건너편 구림초등학교 1층 강당이었다. 지난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까지 구림면에서 진행됐던 각종 투표장으로 쓰던 곳이다. 지난 2019년 조합장 선거 당시에도 이곳에 투표장이 마련됐다. 

8일 오전 10시 30분쯤 순창군 구림면 구림농협 주차장에서 1톤 트럭을 몰던 70대 중반의 운전자가 투표소 밖에 길게 줄을 서있던 유권자를 덮쳐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4명은 숨졌고 16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참혹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8일 오전 10시 30분쯤 순창군 구림면 구림농협 주차장에서 1톤 트럭을 몰던 70대 중반의 운전자가 투표소 밖에 길게 줄을 서있던 유권자를 덮쳐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4명은 숨졌고 16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참혹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시사저널 정성환

그러나 코로나 발생과 학생들 체육활동 등 학교 측의 입장에 따라 투표장이 변경됐다. 농협 측에 따르면 선관위 관계자가 이 같은 사정을 얘기하며 장소 추천을 요청해 고령층 유권자를 고려해 자재 집하장에 투표소가 마련됐다. 그렇다면 애초부터 제3의 장소인 농협 뒤 구림면체육관을 투표소로 검토했더라면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곳은 지난 2020년 12월 초 준공된 구림면체육관은 구림초등학교 대신 대선과 지방선거 등 각종 크고 작은 선거를 치르는 투표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유족들은 이번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인재(人災)라고 주장한다. 유족 전아무개(49)씨는 “왜 차량이 수시로 오가는 위험한 곳에 투표소를 설치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며 “농협 자재집하장에 투표소를 마련한 이유 등에 대해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는 위탁선거인 조합장 선거의 투표소 설치는 우선 해당 농협 소유의 사무실 등을 활용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전북도선관위 관계자는 “구림초 측에서 강당 이용에 난색을 표명해 농협 측과 많은 고민을 주고받은 끝에 선정한 투표소였다”며 “농협 2층 회의실 등에서 진행하려고 했으나 노약자와 장애인 유권자 등의 접근성 문제 등을 고려해 조합원이 익숙하고 접근성이 높은 곳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구림면체육관의 경우 주차장에서 투표소까지의 이동거리가 먼데다 지자체 시설로, 주민들의 일상적 체육활동에 불편을 주는 점 등을 고려해 불가피하게 농협 시설을 선택했다”고 덧붙였다.

10일 오전 11시30분쯤 ‘순창 농협투표소 참사’ 합동 분향소가 투표소가 차려졌던 순창군 구림농협 자재집하장에 설치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족이 ‘사고 현장에 분향소가 위치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반발하자 운영 시작 직전에 통째로 뜯어 인근 구림체육관으로 옮겼다. ⓒ시사저널 정성환
10일 오전 11시30분쯤 ‘순창 농협투표소 참사’ 합동 분향소가 투표소가 차려졌던 순창군 구림농협 자재집하장에 설치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유족이 ‘사고 현장에 분향소가 위치하는 게 부적절하다’고 반발하자 운영 시작 직전에 통째로 뜯어 인근 구림체육관으로 옮겼다. ⓒ시사저널 정성환

하필이면 사고현장서 분향소 운영…유족 반발 자초

합동분향소를 사고 현장에 설치했다가 유족 측의 반발로 뒤늦게 장소를 변경하는 소동도 빚었다. 구림농협 등 추진위원회는 10일 오전 합동분향소를 조합장 선거가 치러진 농협 자재집하장에 설치했다. 그러나 오전 11시 30분쯤, 완성단계였던 분향소를 통째로 뜯어내 농협 뒤편 구림체육관으로 옮겼다. 이로 인해 합동분향소는 애초 이날 낮 12시부터 운영될 계획이었지만, 장소를 옮기게 되면서 오후 3시께야 시작됐다.
  
앞서 순창군과 농협, 유족, 유관기관 등은 협의를 거쳐 전날 사고 장소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분향소 운영 시작을 앞둔 이날 오전, ‘사고 현장에 분향소가 위치하는 게 부적절하다’는 일부 유족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농협 측과 면사무소 관계자, 친척인 이장 등이 나서 유족을 설득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추진위원회에서 장소 변경을 수용했다. 분향소가 옮겨 간 구림면체육관은 일부에서 투표소 최적지로 꼽았던 곳이다. 결국 투표소와 분향소가 적지로 가리키는 곳은 ‘구림면체육관’이었다. 

8일 오전 10시 30분쯤 순창군 구림면 구림농협 주차장에서 1톤 트럭을 몰던 70대 중반의 운전자가 투표소 밖에 길게 줄을 서있던 유권자를 덮쳐 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 중 4명은 숨졌고 16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경찰은 비료를 싣고 나오던 운전자가 운전 조작 미숙으로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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