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떨게 한 ‘뱅크데믹’…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3.27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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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체방크까지 쇼크…글로벌 금융시장 감염시킨 ‘연쇄공포’
뱅크런 가속화시킨 ‘디지털화’…당국 “특이 동향은 없다”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스위스 크레디트스위스(CS)에 이어 이번엔 독일 최대 투자은행 도이체방크가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주 도이체방크 주가는 장중 14% 이상 폭락하는 등 극심한 변동성을 보였다. 주말 사이 위기감이 일부 진화되며 최종 하락폭은 8.5%에 그쳤으나, 도이체방크까지 흔들리자 전 세계 금융시장엔 비상등이 켜진 상태다.

앞선 SVB와 CS 파산 사태와는 달리 도이체방크 주가 폭락의 핵심엔 ‘공포감’이 있다는 게 시장의 주요한 평가다. 은행 파산을 우려할 만한 대형 이슈가 없었는데도 ‘이 은행도 혹시’라는 막연한 불안감에 시장이 움직였다는 해석이다. 이를 두고 세계 금융시장에선 금융권 불안감이 전염병처럼 번진다는 의미의 신조어 ‘뱅크데믹(Bankdemic‧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이 거론된다.

도이체방크 ⓒ EPA·연합
도이체방크 ⓒ EPA·연합

내실 탄탄한데 위기 내몰린 도이체방크…“뱅크데믹에 몸살”

27일 글로벌 금융시장은 이번 도이체방크 주가 폭락 사태에 따른 후폭풍을 눈여겨보는 분위기다. 도이체방크는 총 자산만 1조3370억 유로(한화 약 1870조4000억원) 규모로, 파산한 SVB의 7배이자 UBS(스위스연방은행)에 인수된 CS의 2.5배 수준이다. 도이체방크는 10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는 등 내실이 탄탄한 은행으로 손꼽혔다. 그런 도이체방크마저 위기에 내몰리자, 전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상태다.

도이체방크의 위기는 이달 초 SVB 파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게 주효한 분석이다. 지난 12일 SVB 파산 이후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각국 은행의 유동성 위기가 고조됐다. 그 여파로 CS가 인수‧합병됐고, 이 과정에서 스위스 금융당국은 CS의 신종자본증권(AT1)을 전액 상각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CS의 AT1이 휴지 조각이 된 셈이다.

문제는 도이체방크가 AT1을 상대적으로 많이 발행했다는 점이다. 이에 도이체방크의 부도 가능성을 시사하는 CSD(신용부도스와프) 프리미엄이 급등하면서 주가를 끌어내렸다. SVB 파산과 CS 인수‧합병의 불똥이 도이체방크에까지 튀게 된 것이다.

다만 도이체방크의 재정건정성 등을 고려할 때 이 같은 시장의 우려는 ‘과하다’는 게 중론이다. 한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도이체방크는 CS와 달리 보통주 자본 비율이 13.4%로 자본 구성이 튼튼한 데다 유동성 커버리지도 142% 수준을 보이고 있고, 수익성 또한 견고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확대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도 “불안심리가 도이치뱅크로 옮겨 붙은 모습”이라며 “비이성적인 공포 심리가 크게 확산될 정도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금융시장과 불안감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최근 들어 공포감이 번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전례 없는 수준의 디지털화가 자리잡고 있다. SVB 파산 당시에도 모바일뱅킹을 타고 단 36시간 만에 뱅크런(대규모 인출사태)이 일어났다.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국경을 넘나들며 번지는 불안감에 더해, 언제 어디서든 돈을 인출할 수 있는 시스템까지 더해지며 공포감을 확산시킨다는 분석이다. 이를 두고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뱅크데믹이란 침울한 구름이 은행은 물론 자본 시장 전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평가했다.

27일 코스피는 8.98p(0.37%) 오른 2423.94로 시작했다. 코스닥은 3.84p(0.47%) 오른 827.95, 원/달러 환율은 0.2원 오른 1294.5원으로 개장했다. 사진은 이날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 연합뉴스
27일 코스피는 8.98포인트(0.37%) 오른 2423.94로 시작했다. 코스닥은 3.84포인트(0.47%) 오른 827.95, 원-달러 환율은 0.2원 오른 1294.5원으로 개장했다. 사진은 이날 명동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모습 ⓒ 연합뉴스

韓 세계 최고 모바일뱅킹의 역설…“투자 신중해야”

한국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한국은 세계 최고의 금융 디지털화 수준을 보이는 터라 역설적으로 뱅크런에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감독원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모바일뱅킹 활용은 2015년 11.7% 수준에서 지난해 39.7%로 높아졌다. 하루 평균 이용액은 14조1758억원으로 불어난 상태다. 국내 시중은행의 자본건정성은 우수한 편이라 SVB나 CS에 준하는 위기는 없을 것이란 게 금융권의 공통된 반응이지만, ‘뱅크데믹’이 번질 경우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미 국내증시에선 외국인을 중심으로 매도세가 나오고 있다. 이날(27일) 오후 1시50분 현재 외국인들은 유가증권시장에서 263억원 순매도 중이다. 금융지주와 은행 종목 9개를 편입한 ‘KRX(한국거래소) 은행’ 지수는 이달 들어 9.46%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금융시장 일각에선 당분간 위험자산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금리인하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여전히 과도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매수전략에 신중해야 한다”면서 “유럽 금융권 리스크가 확산될 경우 달러 강세로 인한 위험자산 회피심리 강화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서상영 미래에셋 연구원도 “무디스를 비롯한 여타 신용평가사들은 여전히 은행 리스크에 대한 우려를 지속적으로 언급하고 있고 그에 따른 경기 침체 이슈도 재부각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라며 “한국 증시는 지수보다 종목과 업종 중심으로 변화하는 종목 장세가 당분간 진행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당국은 일단 모니터링을 강화한다는 입장이다. 금융감독원이 지난주부터 시중은행과 인터넷전문은행 등 금융회사에 대한 입출금 동향을 점검한 결과, 뱅크런을 우려할 만한 특이한 움직임은 없는 것으로 보고됐다. 다만 당국은 시중의 불안감을 고려해 국내 은행권의 입출금 동향과 자산 현황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위기관리 수준을 강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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