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불청객 아니라 ‘상춘객’ 된 황사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2 15: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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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농도 짙어지고 발생 횟수도 크게 증가
사촌 격인 미세먼지와 함께 독성 물질 몰고 와

삼재(三災)가 겹쳤다. 삼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이 우리 경제를 뒤흔들 듯 삼재(가뭄·산불·황사) 현상은 환경을 동시에 강타했다. 봄철 산불에 타들어가는 동해안은 올해도 ‘불의 고리’가 됐다. 남부지방의 역대급 가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올해도 어김없이 황사가 봄을 덮쳤다. 이번 황사의 진원지는 몽골과 고비사막. 토양이 바짝 마른 데다 겨울눈이 녹으면서 모래먼지가 강한 상승기류를 타고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3월22일 중국 베이징의 미세먼지 농도가 1500㎍/㎥을 넘어섰다. 베이징시는 실시간 대기지수(AQI)를 500, 레벨6의 ‘엄중 오염’을 공지했다. 창춘에서는 짙은 황사비가 내렸다. 중국발(發) 황사는 북서풍을 타고 3월23일 한반도에 상륙했다. 서해안 일부 지역의 미세먼지 농도는 평소의 10배를 넘었고, 대다수 도시가 잿빛에 휩싸였다. 당시 남부지방에는 모처럼 단비가 내렸다. 하지만 가뭄 해갈보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기상청이 황사비가 내릴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다. 황사비에는 온갖 유해물질이 섞여 있다. 고비사막 모래먼지가 중국 공업지역을 거치면서 중금속과 다이옥신을 품고 한반도로 넘어오기 때문이다. 

황사는 크기(10㎛)가 머리카락 굵기(50~70㎛)의 1/5~1/7에 불과해 침투력이 뛰어나고 산성비를 동반한다. 전문가들은 “황사비를 맞으면 두피 깊숙이 황사가 파고들어 탈모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문제는 황사비에 어떤 성분이 얼마나 포함돼 있는지 당국의 조사·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3월24일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 시가지 모습 ⓒ연합뉴스
3월24일 미세먼지로 뒤덮인 서울 시가지 모습 ⓒ연합뉴스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겹치면 최악의 상태

3월의 마지막 주말(26일)도 전국이 잿빛으로 변했다. 환경관리공단은 고비사막에서 넘어온 황사 탓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울릉도와 독도에서까지 황사가 관측됐다. 벚꽃 주말의 황사는 꽃샘추위에 한풀 꺾였다. 북쪽에서 찬 공기가 몰려오면서 우리나라를 엄습했던 황사를 남쪽으로 몰아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꽃샘추위가 물러난 3월29일 중부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고농도 초미세먼지가 나타났다. 환경과학원은 “대기 정체로 국내 발생 미세먼지가 축적되고, 국외 미세먼지가 유입되면서 농도가 짙어졌다”고 설명했다. 이제 황사는 봄의 불청객이 아닌 상춘객이 된 셈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황사 발생일수는 1970년대 2.3일, 1980년대 4.1일, 1990년대 7.7일, 2010년대에는 11.2일로 증가했고, 2021년엔 14일을 기록할 정도로 가파른 증가 추세다. 황사는 2∼4월에 주로 발생하는데 올해는 황사일수가 이미 8일이나 되고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기후변화로 황사 발원지가 갈수록 건조해지고 주변 지역의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매년 네이멍구·간쑤·신장 지역을 중심으로 2330㎢가량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했다. 무분별한 방목과 지하수 대량 개발, 가뭄으로 호수와 강이 말라붙기 시작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또 황사 발원지를 덮고 있던 눈이 기후변화로 빠르게 녹으면서 황사가 발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된 점도 규모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국내에 영향을 주는 고비사막(연강수량 100㎜)은 몽골에서도 비가 적게 내리고 저기압의 상승기류까지 자주 형성돼 희뿌연 모래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기상청은 최근 발표한 ‘3개월 기상전망’에서 발원지에서의 황사 발생이 평년보다 많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12월초 수도권에는 6년 만에, 전국적으로는 2011년 이후 10년 만에 황사 경보가 발효됐고, 3월23일에도 수도권에 또 황사 경보가 내려졌다. 신승숙 국립기상과학원 주무관은 “황사는 보통 4월에 많았는데 이렇듯 3월에 증가하는 경향은, 발원지 기후가 이른 봄에도 황사가 발원하기 좋은 조건이 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황사에 미세먼지까지 겹치면 최악의 상태가 된다. 실제로 그런 날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대기질은 삶의 질이고 그 중심에 황사가 있다. 황사는 기관지까지 침투해 각종 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당 초미세먼지(PM2.5)가 10㎍ 늘어나면 협심증·심근경색 같은 허혈성 심장질환 위험이 1.18배 높아지고, 장기간 노출되면 허혈성 심장질환 사망률까지 증가하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또 1㎥당 미세먼지가 5㎍ 증가하는 것만으로도 허혈성 심장질환 발생률이 13% 올라간다는 보고도 있다. 봄철 황사는 농작물에도 피해를 준다. 광합성을 억제하고 온도 상승을 지연시켜 생육에 악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독성 물질 있는지 성분 분석·연구 시급” 

황사와 미세먼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세먼지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분진·중금속·바이러스·세균 등으로 이뤄진 입자다. 발원지는 공장 굴뚝먼지와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다. 지름 10μm 이하를 미세먼지, 2.5μm 이하를 초미세먼지로 분류한다. 1μm는 0.001mm에 해당하니 미세먼지가 얼마나 작은 크기인지 알 수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미세먼지로 인해 매년 700만 명이 조기 사망한다며 1급 발암물질로 지정한 바 있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당 10μg 상승할 때마다 암 발생 확률이 12%, 기형아 낳을 확률은 16% 높아진다고 한다.

174년 신라에 흙비(雨土)가 내렸다는 《삼국사기》의 최초 기록이 보여주듯, 황사는 오래전부터 자연적인 풍화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모래·흙먼지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공업화·도시화로 공장 매연을 비롯한 온갖 대기 오염물질이 달라붙어 더 이상 순수한 흙먼지가 아니다. 먼지 입자가 조금 클 뿐 황사와 미세먼지는 사촌 격이다. 그래서 기상청과 환경부는 2014년부터 황사·미세먼지 예보를 함께 하고 있다. 황사가 짙어지면 미세먼지 농도는 급격하게 올라가고 황사가 물러나면 미세먼지 농도도 옅어진다.

황사나 미세먼지의 중국 영향을 48%로 보는 연구 결과도 있지만, 그보다 훨씬 크다는 의견도 많다. 문제는 먼지에 함유된 화학 성분의 유해성이다. 최성득 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수팀이 울산의 대기질을 분석한 결과 다환방향족 탄화수소(PAHs) 농도가 베이징 등 동북아 주요 도시보다 상당히 높게 검출됐다. PAHs는 미세먼지에 포함된 대표적 인체 독성 물질로 벤젠·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을 통칭한다. 국내 산업단지에서 배출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s)이 광화학반응을 거쳐 2차 생성 미세먼지의 재료가 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 교수는 “우리나라는 미세먼지 농도에만 집중하고 있는데 그 안에 어떤 독성물질이 있는지 성분 분석·연구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황사는 그저 흙가루지만 단순 모래먼지가 아니라 인체를 공격하는 ‘독성 먼지’란 사실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됐다. 황사는 한때 봄철에만 나타나는 ‘계절 한정’이었지만 최근에는 미세먼지와 함께 ‘사계절 불청객’이 된 지 오래다. 겨울 추위가 한풀 꺾일 때도, 벚꽃과 매화가 필 때도 어김없이 찾아온다. 

‘희뿌연 하늘에서 산성비가 내린다. 흙먼지가 온 세상을 뒤덮어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을 찾아 나선다.’ 기후변화를 소재로 한 영화 《인터스텔라》와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장면이다. 최근 황사와 미세먼지가 겹치면서 한반도 전역이 수시로 잿빛에 갇힌다. 우리가 영화 속의 지구로 들어온 게 아닌지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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