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여성들을 ‘섭식장애’로 내몰았나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4 12: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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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몸매’ 지향, 개인의 내적 문제만이 아닌 복합적인 사회문화적 문제
사회의 지나친 외모 지향 메시지와 일상적인 외모 평가 문화 바꿔야

우리나라만큼 다이어트를 전 국민적으로, 특히 어린아이부터 나이 든 노인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이 이토록 신봉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요즘 어리고 젊은 여성들이 모이는 SNS에서는 ‘먹토(먹고 토하는)’ ‘씹뱉(씹고 뱉는)’ ‘무쫄(무식하게 쫄쫄 굶음)’이라는 단어를 쉽게 만날 수 있다. 또 극단적인 다이어트를 통한 체중 감량 방법을 공유하고 마른 몸매를 만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먹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섭식장애 환자 역시 급증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섭식장애 환자는 2017년에 비해 2021년 40.9% 증가했으며, 남성에 비해 여성의 발병률이 13배 높았다고 한다. 특히 20대 여성이 44.4%를 차지해 섭식장애가 가장 많은 집단으로 밝혀졌고 10대 여성은 8.3%에 이르렀다. 

ⓒfreepik

젊은 여성들 SNS 단어 ‘먹토’ ‘씹뱉’ ‘무쫄’ 

섭식장애(Eating Disorder)란 ‘마른 몸매에 대한 비정상적인 욕구로 먹는 행위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으로, 계속 굶거나 약을 먹어 부적절하게 체중을 조절하는 등 극단적 다이어트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는 질환이다. 섭식장애 환자들은 체중 증가와 함께 비만에 대해 강박적인 걱정과 신체상에 심한 왜곡을 가지고 있어 주로 거식증과 폭식증 양상으로 나타난다. 

주변에서는 쉽게 ‘먹는 것도 조절하지 못하냐’며 한 개인의 의지박약 정도로 치부하거나 강박적이고 완벽주의적인 개인의 성격 탓을 하지만, 사실 그 원인은 생물학적, 유전적·가족적, 심리·성격적, 대중매체와 사회문화적 영향 등 너무나 다양한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특히 10·20대 여성 사이에서는 ‘프로아나’ 현상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데, 이는 찬성이란 뜻의 ‘프로(pro)’와 거식증이란 단어 ‘애너렉시아(Anorexia)’의 합성어로 깡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것이다. 

온라인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프로아나 해시태그와  ‘굶으면 예뻐진다’는 짤, 극도로 마른 몸매의 아이돌 사진 등을 통해 마른 몸매를 이상적인 육체로 제시하고 강요함으로써 다양한 몸에 대한 상상력이 들어설 공간을 없애고 있다. 이렇게 마른 몸매를 동경하는 문화는 개인보다는 미디어의 지나친 외모 지향 메시지와 외모 평가를 당연시하는 사회구조적 문화에 더 책임이 있다. 우리 사회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일상적으로 마른 몸매에 강박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여성에 대해 심하게 외모 평가를 한다. 평균보다 뚱뚱하면 자기 관리가 안 되는 사람으로 매도할 뿐 아니라 입학·취업 등 모든 통로에 진입장벽이 된다. 

건강하지 못하다고 프로아나를 비난하는 다른 한편에서는 ‘굶어서 만들어진 마른 몸매’에 대해 ‘예뻐졌다’ ‘날씬해졌다’는 주변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진다. 또 스스로도 자신의 몸을 통제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이렇게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이 일상적으로 강요되는 사회에서 프로아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 필자는 외모 때문에 자해를 자주 하는 20대 여성을 상담한 적이 있는데, 그는 무척 성적이 좋았지만 못생긴 외모 때문에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성형 후 주변의 평가는 좋아졌지만, 문제는 너무 외모를 중요하게 생각하게 돼 거듭되는 성형과 함께 마른 몸매를 유지하려다 보니 거식과 폭식 증세가 같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는 음식 먹기를 극도로 혐오하고, 그러다 폭식을 하곤 토하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식도로 넘어온 위산 때문에 목소리도 변하고, 치아가 모두 상해 점점 더 상황이 나빠졌는데 정작 섭식장애에 대한 의료적 치료는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이렇게 섭식장애 환자들은 살이 찔까봐 무섭고, 자기가 음식을 먹을까봐 무섭고, 체중이 불어 사랑을(인정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극도로 먹기를 두려워하고, 먹는 양을 강박적으로 억제하며, 그러다가 급기야 음식을 삼키는 데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식욕을 못 참을 땐 물을 마시며 ‘먹방’을 보는 것으로 대리만족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먹게 되면 피자 한 판, 라면 여러 개를 한꺼번에 폭식하고 토하기를 반복한다.

음식을 먹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토하는 것으로 심리적 보상을 하는 것인데, 이렇게 거식과 폭식이 되풀이되다 보면 우울증뿐 아니라, 자존감이 떨어지고 급격히 기력이 쇠약해져 의식을 잃기도 하며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섭식장애가 심해지면 영양 부족과 뇌신경전달물질에 문제가 생기며, 빈혈·골다공증이 오기 쉽다. 또 음식을 거부하는 거식증으로 인한 치사율은 5% 정도로, 이는 정신질환 중 가장 높다.

외국에서도 섭식장애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의 아름다움과 행복의 상징이었던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왕실의 억압과 고립, 외로움 등으로 인한 섭식장애로 고통받았으며 그로 인해 여러 번의 자해와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에 세계가 놀랐다. 경악스러울 만큼 빼빼 마른 몸매로 화제를 모았던 프랑스의 모델 이사벨 카로라는 거식증으로 결국 사망해 섭식장애에 대해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폭식, 구토, 창백한 얼굴과 앙상한 몸’만 강조

최근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2015년 발의된 ‘애나 웨스틴법(Anna Westin Act)’이 의회의 연말 예산 패키지를 포함하고 바이든 대통령의 서명을 기다리고 있다. 애나 웨스틴은 16세에 거식증을 앓았으며, 치료를 받았으나 그 후 재발돼 입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보험회사의 보험 채택을 기다리다가 시간이 지체돼 2000년 21세의 나이에 안타깝게도 자살한 젊은 여성이다. 딸을 잃은 그의 어머니는 섭식장애 환자의 치료 여건 개선을 촉구하는 등의 활동을 펼쳐 드디어 2016년 오바마 대통령의 서명을 받아냈다. 호주와 영국에서도 섭식장애 당사자들이 중심이 돼 섭식장애 치료와 회복을 위한 정책 제정·연구·캠페인 등에 참여하고 있고,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3월24일부터 4월2일까지 인제대학교 섭식장애연구소 주최로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와 연구자, 치료자들이 모인 가운데 ‘섭식장애 인식주간’ 행사가 국내 처음으로 개최되었다. 이 행사는 섭식장애를 경험한 당사자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연구자와 치료자들의 경험담을 공유하고, 우리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고 문제를 제기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섭식장애는 환자 자신들이 ‘자신을 돌보고 사랑하게 되는’ 정서적인 치료만으론 회복할 수 없다. 국내에는 섭식장애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의료인이나 병원은 극소수이고, 각종 매체에서는 섭식장애 환자를 ‘폭식, 구토, 창백한 얼굴과 앙상한 몸’을 강조하면서 선정적으로 드러낼 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섭식장애 치료나 회복에 대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극도의 다이어트로 살을 빼려는 여성들에 대한 윤리적 비난에 앞서 사회의 지나친 외모 지향 추구와 ‘보여지는 몸으로만 사는’ 외모 평가를 멈춰야 한다.

또 여느 병과 마찬가지로 초기에 개입해 만성이 되는 것을 방지해야 하며, 섭식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는 전문 의료 시스템 및 기관이 필요하다. 전문적이고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섭식장애 치료를 위해 건강보험과 실손보험으로 보장 혜택을 마련해 환자들의 경제적인 부담을 덜어주고 치료와 회복으로 가는 희망의 문을 열어주어야 할 것이다.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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