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여파에 은행권 연체율마저 ‘꿈틀’
  • 김희진 시사저널e. 기자 (heehee@sisajournal-e.com)
  • 승인 2023.04.02 08:05
  • 호수 174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높은 금리에 따른 리스크로 시중은행 건전성 지표 일제히 악화 
“9월 상환유예 종료 시 잠재부실 가시화” 전망도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에 이어 1금융권인 시중은행에서도 연체율 상승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간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에 따른 금융지원 조치로 가려졌던 부실대출이 점차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 은행권에서도 고금리 리스크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연체율은 지난해 일제히 오름세를 나타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79개 저축은행의 평균 연체율은 4.12%다. 전년 말(3.42%) 대비 0.7%포인트나 상승한 수준이다. 저축은행 평균 연체율이 4%대에 진입한 것은 2021년 3월말 이후 약 2년 만이다. 카드사 연체율도 2021년 말 1.09%에서 0.11%포인트 상승한 1.20%를 기록하면서 악화됐다. 카드사 연체율은 2019년부터 하락세로 돌아선 후 2020년 1.29%, 2021년 1.09% 등으로 줄곧 내림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상승세로 돌아서며 4년 만에 흐름이 바뀌었다.

ⓒ연합뉴스
고금리 상황이 지속되면서 제2금융권뿐 아니라 1금융권인 은행의 연체율이 증가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전철역에 붙은 채무 관련 변호사 광고 ⓒ연합뉴스

카드사·저축은행 연체율 일제히 상승

카드사와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은 저신용·저소득자 등 취약차주들의 주요 대출 창구로 꼽힌다. 때문에 코로나19 사태로 자금난을 겪는 차주들이 카드사와 저축은행들의 대출을 많이 이용했는데 지난해 들어 기준금리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이자 부담이 확대됐고, 취약차주들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면서 연체율이 상승한 것으로 분석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중은행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중·저신용자들이 카드사나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 대출을 찾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은 고신용자 대비 대출 상환 능력이 상대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타격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난해 들어 제2금융권의 건전성 지표가 악화되기 시작한 것도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대출 부실이 증가함에 따라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제2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량차주 비중이 높은 은행권은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연체율이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안정적인 수준을 나타냈다. 그러나 하반기에 들어서는 은행권 연체율도 들썩이기 시작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6월말 0.20%를 기록하며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이후 7월부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소폭이지만 매달 오름세를 이어간 결과 국내 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 1월 0.31%까지 올라갔다. 이는 전월(0.25%) 대비 0.06%포인트, 전년 동월(0.23%) 대비 0.08%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시중은행별로 살펴보면 KB국민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연체율은 0.16%로 전년(0.12%) 대비 0.04%포인트 상승했다. 신한은행 역시 같은 기간 연체율이 0.19%에서 0.22%로 0.03%포인트 올랐다. 하나은행은 1년 새 0.16%에서 0.20%로 0.04%포인트, 우리은행은 0.19%에서 0.22%로 연체율이 0.03%포인트 악화됐다. 대출 부실 문제는 4대 시중은행뿐만 아니라 국내 은행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0.4%로 전분기(0.38%) 대비 0.02%포인트 상승했다.

국내 은행 부실채권 비율은 2020년 6월말 0.78%에서 0.71%로 하락한 후 9분기 연속 하락세를 지속하며 사상 최저치를 경신해 오다 2년9개월 만에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규모는 10조1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4.5%(4000억원) 증가한 반면, 총여신은 8조7000억원 감소했다.

그간 은행권 연체율이 하락세를 이어온 것은 대출 부실 위험이 실질적으로 낮아졌다기보다는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대출 만기연장 및 이자상환 유예 조치 등 코로나19 금융지원으로 차주들의 연체가 수치에 반영되지 않은 ‘착시효과’ 영향이 컸다. 코로나19 금융지원 조치 효과가 아직 이어지고 있음에도 은행권 연체율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한 이유는 지난해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대출금리가 크게 치솟으면서 은행 대출을 이용한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도 이자 부담을 피하기 어려워진 탓이다.

ⓒ연합뉴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2020년 9월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9차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TF 확대 온라인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권 연체율도 하반기 들어 상승세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 잔액 기준 예금은행의 대출금리는 5.06%로 작년 1월 3.12%에서 1.94%포인트 올랐다. 이는 2013년 5월(5.03%) 이후 약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금리 인상 속도가 빨라지면서 은행권 대출금리도 많이 올랐다”며 “대출금리 상승으로 이자 부담이 불어나면서 상환 능력이 약해진 한계차주가 늘어났고 그 결과 연체율이 상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3년 넘게 이어져온 금융지원 조치 중 원금과 이자 상환유예가 오는 9월말 종료된다는 점이다. 상환유예 조치를 이용 중인 차주는 이제부터 정상 상환 계획을 마련해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소상공인을 지원하기 위해 2020년 4월 도입된 금융지원 조치는 작년 9월까지 총 다섯 차례 연장된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원 조치가 3년 가까이 이어지면서 표면상 드러나지 않은 부실대출이 많이 쌓여 있을 것”이라며 “부실대출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연체 규모를 파악하는 것이 우선인데 만기 연장과 상환유예 조치가 이어지면서 원래라면 연체채권으로 분류돼야 할 대출도 정상채권으로 분류되는 등 잠재부실 파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는 9월부터 상환유예가 종료되면 누적된 잠재부실이 본격적으로 가시화하기 시작할 것”이라며 “연체율 등 은행의 건전성 지표도 지금보다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