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핵으로 푸틴의 핵 위협 억누른다는 美 ‘압도 시나리오’
  •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1 10:05
  • 호수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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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핵전쟁’ 시사 
미국의 대러 핵 억제 위한 핵무기 운용전략 봤더니…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1년이 넘도록 뚜렷한 전과를 거두지 못한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또다시 핵전력을 앞세운 서방 겁주기에 나서면서 지구촌을 공포와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 관심은 과연 러시아의 핵전력 사용 시 이에 대한 미국과 유럽의 대응 전략이 무엇일지에 쏠려 있다.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푸틴이 핵 사용을 강행할지 여부는 서방의 핵전쟁 대응 시나리오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은 3월25일 “벨라루스에 전술핵을 배치하기로 양국이 합의했으며, 7월1월까지 핵무기 저장시설을 완공할 것”이라고 국영 ‘러시아24’ 방송에 밝혔다.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이웃 동맹국으로 우크라이나는 물론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폴란드·라트비아·리투아니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전술핵무기는 아군이 적과 접촉하고 있는 인접지역, 즉 전방의 목표물을 타격하는 비교적 폭발력이 작은 무기체계다. 원칙적으로는 전황을 뒤집을 목적으로 사용한다. 푸틴은 지난해 2월4일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과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그동안 여러 차례 선제 핵타격 가능성이나 핵무기 기반시설 건설 등을 거론하며 핵을 앞세운 위협을 해왔지만, 이번이 가장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REUTERSⓒ연합뉴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2월17일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관저에서 루카센코 벨라루스 대통령과 회담하고 있다. ⓒREUTERS

“러시아의 위협은 허세일 가능성” 

푸틴은 이미 2월22일 뉴스타트(신전략무기감축조약)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뉴스타트는 미·러가 2010년 체결한 것으로 핵탄두와 운반체의 감축, 양국 핵시설에 대한 주기적인 상호 사찰을 규정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대한 맞대응 차원에서 자국의 핵탄두 숫자를 러시아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3월29일 러시아의 세르게이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관영 스푸트니크통신에 “뉴스타트에 따라 이뤄지던 러·미 간 모든 정보 이전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전이 중단된 정보에는 핵무기 시험발사도 들어있어 우발적인 전쟁 위험을 높인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날 러시아는 시베리아의 세 곳에서 사거리 1만2000km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야르스를 동원한 핵전력 기동연습을 했다.

이런 러시아의 핵 위협에 대해 미국은 한마디로 평가절하하고 있다. 미 국무부는 “징후가 없고 현실성이 낮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와 폴리티코는 “핵 블러핑(허세)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지원을 끊을 의도로 벌이는 역정보 작전”이라고 분석했다. 재래식 전쟁에서 밀리니까 궁여지책으로 핵 위협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보유한 러시아와 미국이 서로 상대가 한 대 치면 나도 맞받아치는 ‘팃 포 탯(Tit for Tat)’으로 대응 수위를 계속 높이면 글로벌 핵 불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미 무기통제위원회에 따르면 미국은 핵탄두 5428발을 보유하고 1644발을 실전 배치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5977발을 보유하고 1588발을 배치 중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러시아의 핵 도발에 어떤 대응을 준비하고 있을까. 미국과 러시아 모두 전략핵무기를 운반하는 지상발사용 ICBM, 공중투하용 전략폭격기, 수중발사용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삼원핵전력’(Nuclear Triad·‘핵삼축’이라고도 한다)을 갖추고 있다. 이처럼 운반수단을 다양화하는 목적은 적이 핵공격 제1격으로 아군이 보유한 핵무기를 모두 파괴하지 못하도록 막아 핵 보복을 위한 제2격이 실질적으로 가능하게 함으로써 상대의 핵 사용을 억제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를 위해 현재 항공기 투하용 핵폭탄 두 종류와 ICBM·SLBM에 장착하는 여섯 종류의 핵탄두를 운용한다. 운반체로는 전략폭격기 B-52 스트래토포트리스와 B-1B 랜서, 그리고 B-2 스피리트를 운용했으나 B-52에는 더 이상 투하용 핵폭탄은 장착하지 않으며, B-1B에선 핵무장 능력을 제거했다. 이를 위해 1963년 실전 배치한 TNT 350kt(킬로톤·1kt은 TNT 1000톤의 위력) 위력의 B61 수소폭탄과 1983년 실전 배치한 170kt 위력의 B83 수소폭탄을 장착한다.

미국은 현재 ICBM인 미니트맨 Ⅰ·Ⅱ·Ⅲ용으로는 170kt 위력의 W62, 335~350kt의 W78, 300~475kt의 W87 핵탄두를 각각 운용한다. SLBM인 트라이던트용으로는 100kt의 W76, 475kt의 W88 등 두 종류의 핵탄두를 보유했다. 순항미사일인 토마호크와 현재 개발 중인 LRSO(장거리 원격 핵 순항미사일)를 위해서는 150kt의 W80을 쓴다.

ⓒREUTERSⓒ연합뉴스
러시아군이 2022년 5월5일(현지시간) 블라디보스토크 인근 동해에 주둔 중인 태평양함대 소속 초계함 '그레마쉬'에서 훈련용 수중 목표물을 향해 오트베트 대잠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술 혁신 통해 핵탄두와 발사체 수준 높여

미국의 대러시아 핵 억제를 위한 핵무기 운용전략은 지난해 10월27일, 4년8개월 만에 새로 발행한 ‘핵태세 검토보고서(NPR)’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미국의 로이드 우스틴 국방부 장관은 2022 NPR을 국가방위전략(NDS)·미사일방어검토보고서(MDR)와 함께 발표하면서 “이는 핵전략과 자원의 단단한 연결”이라고 자평했다. 미국이 러시아나 중국을 압도하는 핵무기 기술과 전력을 보유하고 있음을 강조한 발언이다. 

미국은 NPR에서 “핵 역량과 다양성 측면에서 가장 큰 경쟁자인 러시아는 대규모 또는 제한적 공격 등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핵무기에 대응하기 위해 B61-12 핵폭탄과 W76-2 핵탄두, 그리고 발사 플랫폼으로는 LRSO를 탑재한 F-35A 다목적 전투기 등 현대화된 핵전력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2022 NPR의 제7장에선 기존의 핵전력을 현대화한 새로운 무기체계로 교체하는 구상에 대해 자세히 소개했다. 우선 ICBM인 미니트맨Ⅲ를 2029년 이후 대체하게 될 센티넬 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을 계속 지원하고, 기존의 오하이오급 SSBN(탄도미사일잠수함)을 2030년까지 신형 컬럼비아급으로 교체하며, B-52H 전략폭격기 현대화도 계속한다. 

푸틴의 핵 위협에 대한 미국의 대응 시나리오는 이처럼 탄두 수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핵탄두와 발사체의 수준을 지속적으로 높여 핵전력에서 러시아를 압도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실제 국제 군사전문가들은 지금의 미국이 이를 위한 기술과 경제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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