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효 ‘독주’와 김성한 ‘신중론’ 충돌이 빚은 외교 대혼선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3.3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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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사퇴 내막]
김태효와의 갈등‧정보 칸막이 의혹이 정설로…“한‧일 회담 전후 본격화”
총선 맞물려 5월 전후 개편‧개각 속도…박진‧권영세‧김대기 거론
윤석열 대통령이 3월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은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기에 경례를 하고 있다. 뒷줄 오른쪽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의 사퇴는 갑작스러웠다. 반면 대통령실 안팎에선 ‘예정된 결말’이었다는 평가도 조심스레 나온다. 외교·안보 라인 내 지속돼 온 삐걱거림이 지난 한‧일 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심화됐고, 이번 방미 일정을 조율하며 정점을 찍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실은 김 전 실장 후임자를 속전속결로 내정하는 등 수습에 나섰지만 이례적 상황에 대한 뒷말은 무성하다. 이번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이 5월 전후 대대적인 개편·개각을 단행할 거란 관측에도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3월29일 오후 김 전 실장은 입장문을 통해 “저로 인한 논란이 더 이상 외교와 국정운영에 부담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며 전격 사퇴했다. 김 전 실장 교체설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이 전면 부인한 지 불과 하루 만의 ‘반전’이었다. 전날 윤 대통령이 김 전 실장과 오찬을 하며 다독였다는 보도를 무색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김성한의 ‘정보 패싱’ vs 김태효의 ‘보고 패싱’

김 전 실장은 윤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분류돼왔기에 그의 사퇴에 더욱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그는 윤 대통령과 대광초등학교 동창으로, 윤 대통령이 대선 출마를 결심하던 순간부터 외교 분야 ‘가정교사’ 역할을 도맡아왔다. 윤 대통령이 당선 직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통화를 할 당시 김 전 실장의 휴대전화를 사용한 점은 두고두고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만큼 두 사람이 막역한 사이라는 데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시사저널 취재 결과, 이후 대통령 순방 등 주요 외교 일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김 전 실장이 이끄는 안보실을 향한 내부 불만들이 제기되기 시작한 것으로 확인된다. 김 전 실장이 ‘보안’을 이유로 대통령 비서실 등 다른 부서와 잘 공유하지 않는 이른바 ‘정보 칸막이’를 세워왔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이른바 ‘블랙핑크-레이디가가’ 사태가 발생하면서 김 전 실장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뢰가 급하강한 것으로 파악된다. 미국 측에서 윤 대통령 방미 행사로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와 미국 가수 레이디가가의 합동 공연을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 안보실 라인이 마땅한 조치나 보고도 없이 두 달 넘게 보류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3월 초 이 사실을 뒤늦게 파악한 윤 대통령이 격노했다. 실무격인 김일범 의전비서관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에 대한 문책성 교체가 이뤄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통령의 방미를 불과 한 달 앞둔 시기에 김 전 실장까지 문책하는 건 안 된다는 분위기가 대통령실 내 지배적이었다. 이를 뒤집은 건 김 전 실장의 직속부하인 동시에 윤석열 정부 외교·안보라인의 사실상 ‘실세’로 꼽히는 김태효 안보실 1차장과의 갈등 관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김 전 실장 사퇴에 대한 물음표를 따라가다 보면 어김없이 김태효 차장이 거론된다. 취재에 따르면, 김 전 실장과 김 차장은 정책 추진 등 업무 스타일이 달라 줄곧 갈등을 빚어왔다. 한마디로 김성한의 신중론과 김태효의 독주·승부사 기질이 사사건건 부닥쳤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김 차장이 상사인 김 전 실장을 ‘패싱’하고 윤 대통령에 자주 직보를 했다. 김 전 실장 역시 직속 부하인 김 차장에게 외교 관련한 주요한 진행 상황 및 정보를 ‘패싱’하며 소통의 장벽을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둘 사이 이러한 충돌은 지난 한·일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극명히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사정을 잘 아는 여권 핵심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한·일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김성한 전 실장은 신중론을 주장했다. 정치인인 박진 외교부 장관도 민감한 한·일 문제에 나서길 주저했다. 당시 (속도감 있는 해법을 원하는) 윤 대통령의 뜻을 가장 충실히 이행했던 사람은 김태효 차장이었다”며 “이번 김 전 실장 사퇴의 핵심 원인이 김성한-김태효 알력 다툼인 게 맞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김태효 차장이 최근 외교·안보에 있어 윤 대통령에게 가장 강한 영향력을 미쳐 온 참모임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 이번 사태를 거치며 새로 내정된 이충면 외교비서관, 그리고 조현동 주미대사 모두 김 차장과 이명박 정부 때부터 각별했던 사이로 확인된다.

하지만 이번 김 전 실장 사퇴를 계기로 대통령실 일각에서 김 차장 독주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 근거 중 하나로 김 전 실장 후임으로 조태용 주미대사를 후임 국가안보실장으로 임명한 점이 꼽힌다. 앞선 여권 핵심 관계자는 “김태효 차장이 차기 안보실장 자리를 노렸을 텐데 윤 대통령이 그를 배제하고 조태용 주미대사를 올린 점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김 차장에 대한 견제 필요성을 다들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출마 희망자 50여 명…개편 범위 커질 수도

어수선함 속에서 자연히 대통령실 참모진 개편 및 정부 부처 개각 가능성은 커지고 있다. 사실상 대통령실 외교·안보라인에 대한 개편은 이미 시작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지금의 분위기를 빠르게 전환하기 위해 윤 대통령이 4월 말 방미와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전에 개편과 개각을 순차적으로 단행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하반기부터 총선 모드가 본격화된다는 점도 개편·개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취재 결과, 현재 대통령실과 정부 부처 내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이들만 5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된다. 비서관급 이상 뿐 아니라 행정관급 일부도 대통령실을 나갈 가능성이 커 조직 전체의 대대적인 물갈이가 예상된다. 한 여권 관계자는 “대통령실 내 또 다른 삐걱거림이 있어 김대기 비서실장을 비롯해 일부 수석들의 교체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내각에선 당장 박진 외교부 장관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방미 이후 교체될 거란 얘기가 유력하게 나오고 있다. 박진 장관의 경우 지난 미국 순방 당시 ‘바이든-날리면’ 논란부터 최근 한·일 정상회담까지 잡음이 많아 교체설이 이어지고 있다. 권영세 장관 역시 10·29 이태원 참사와 박희영 용산구청장 사태로 지역구에 대한 불안감을 떠안고 있다. 이들이 물러날 경우 자연스럽게 외교‧안보라인의 연쇄 개편·개각이 이뤄질 전망이다. 일각에선 지난해 북한 무인기 대응 등 혼선을 빚은 국방 분야를 비롯해, 최근 실시된 장·차관 복무 평가를 근거로 전 부처에 걸친 추가 교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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