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자 ‘간첩 혐의’로 체포한 푸틴…“서방과 결별 의지”
  • 김지원 디지털팀 기자 (skylarkim0807@hotmail.com)
  • 승인 2023.03.3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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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에 간첩 혐의 적용, 냉전 이후 처음
NYT “공개적인 대립의 시대”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간첩 혐의로 체포한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 에반 게르시코비치(32) 특파원의 모습 ⓒ AP=연합뉴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이 간첩 혐의로 체포한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 에반 게르시코비치(32) 특파원의 모습 ⓒ AP=연합뉴스

러시아가 미국인 기자를 간첩 협의로 체포하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격화한 서방과 러시아 간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30일(현지 시각) 러시아 인테르팍스, 스푸트니크통신 등은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 소속 기자가 러시아에서 간첩 혐의로 체포됐다고 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이날 WSJ 모스크바 지국 소속의 미국 국적 에반 게르시코비치(32) 특파원을 간첩 혐의로 러시아 중부 도시 예카테린부르크에서 구금했다고 밝혔다.

2017년부터 러시아를 취재한 게르시코비치 기자는 WSJ 합류 전 AFP 모스크바 지국에서 활동했으며, 이전에는 영어 뉴스 웹사이트인 더 모스크바 타임스의 기자였다. 러시아 출신으로 미국에 거주 중인 부모를 둔 그는 영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

러시아가 미국 기자에게 간첩 혐의를 공식적으로 적용해 구금한 것은 냉전 종식 이후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 조치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전 세계에 보내는 일종의 신호로 해석했다. 러시아와 서방의 단절을 더욱 강화한다는 의도를 명확히 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NYT는 서방과 갈등을 겪는 중에도 서방 언론사에 계속 문을 열어두려고 했던 러시아의 태도가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전까지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 와중에도 자신의 메시지를 서방에 전달하려고 노력하면서 일부 공감을 얻을 것을 기대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게르시코비치 기자 체포는 푸틴 대통령이 서방과 소통 창구를 닫음으로써 정치적·경제적·문화적으로 결별하겠다는 뜻을 보인 것일 수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202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러시아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는 NYT에 “공개적인 대립의 시대가 시작했다”고 말했다.

무라토프는 미국과 냉전을 벌인 옛 소비에트연방(소련) 지도자들조차도 인권 탄압에 관한 서방의 비난을 피하려 했지만, 현 러시아 정부는 전 세계에서 규탄의 목소리가 나올 것을 알면서도 게르시코비치 기자를 체포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러시아 정부가 서방과 갈등이 커지는 것을 오히려 반기는 모양새라고 주장했다.

NYT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까지 군사적 중립을 지키던 핀란드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이 눈앞으로 다가오는 등 서방 군사동맹이 확장세를 보이는 것과 대조적으로 러시아는 갈수록 고립이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러시아 정부가 허위 정보 등을 이용해 서방 여론을 움직이려는 노력은 계속하겠지만 주류 언론을 장악하려는 것은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미국인 기자 체포는 고립되고 있는 러시아가 핵 위협과 함께 서방의 대러제재에 대응해 보일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선택지 중 하나였을 수도 있다고 NYT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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