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출근하는 김 대리가 1만원 식대로 먹을 수 있는 것
  • 조문희 기자 (moonh@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4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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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물가 둔화세라지만 점심 물가는 고공행진
‘런치플레이션’에 점심 한 끼 1만5000원 ‘훌쩍’

“인플레이션이 잡혀간다는데 현실에선 전혀 체감이 안 됩니다. 밥 한 끼 사먹기 무서울 정도예요.”

광화문에 있는 한 금융기업에 5년째 재직 중인 김수지 대리의 말이다. 김 대리는 4일 점심으로 동료들과 곱창전골을 사먹었다. 술도 안 마셨는데, 1인당 지출 비용은 1만6000원. 회사에서 지원하는 식대 1만5000원을 초과했다. 김씨는 “처음 입사한 2018년까지만 해도 점심 먹고 커피에 후식까지 사먹었는데, 이제는 식대 내에서 한 끼 해결하기도 벅차다”고 말했다.

런치플레이션(점심+인플레이션) 상승세가 심상찮다. 이날 발표된 소비자 물가는 4% 초반대로 내려앉았지만 체감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 중이다. 식품업계가 원재료 가격 인상과 인건비 상승 등을 이유로 주요 먹거리 가격을 잇따라 올린 결과다. 매일 점심을 사먹어야 하는 직장인들 사이에선 비명이 나온다.

외식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6일 서울 명동 시내의 한 음식점 메뉴 가격표의 모습 ⓒ 연합뉴스
외식 물가 고공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6일 서울 명동 시내의 한 음식점 메뉴 가격표의 모습 ⓒ 연합뉴스

“1만원에 먹을 수 있는 점심 메뉴가 없어요”

점심 식대를 현금으로 제공하는 주요 기업들의 식대 지원 한도는 하루 평균 1만~2만원 선으로 알려졌다. 이 금액대로 평범한 직장인은 어떤 점심을 사먹을 수 있을까. 기업들이 몰려있는 광화문과 여의도 등 서울 주요 지역의 유명 식당을 기준으로 직장인의 점심값을 재구성해봤다.

서울 광화문에 위치한 한 유명 김치찌개집. 묵은지 김치찌개 1인분 값이 1만원이다. 여기에 라면 사리를 추가하거나 계란말이 등을 더 시키면 둘이서 3만원을 넘긴다. 매스컴을 탄 유명 냉면집의 물냉면 값은 한 그릇에 1만5000원이다. 치즈 돈까스나 연어 초밥 등 일식을 고르면 세트 메뉴를 기준으로 단가가 2만원으로 훅 뛴다. 이날 동료와 함께 을지로입구역 인근에서 샐러드를 사먹었다는 유민아씨는 “연어 샐러드 11500원에 스프까지 추가하면 인당 16000원이다. 음료까지 사들고 복귀하면 하루 평균 2만원은 족히 쓴다”고 말했다.

금융 기업이 몰려있는 서울 여의도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유명 한우곰탕집에서 국밥 한 그릇을 사먹으려면 1만5000원이 부족하다. 콩국수 한 그릇에 1만4000원, 칼국수는 인당 1만원 쯤이다. 쌀국수나 팟타이 등 베트남 음식도 1만2000원 선이다. 게임 회사가 몰려있는 판교에선 부대찌개가 1인당 1만2000원이다. 사리를 추가하거나 음료까지 시키면 4명의 팀이 함께 점심을 먹을 경우 6만원을 넘긴다.

ⓒ 시사저널 양선영
ⓒ 시사저널 양선영

그나마 점심엔 가게마다 ‘런치 할인’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지만, 저녁엔 제값을 받기 때문에 식사비용이 더 늘어난다. 저녁에 팀 회식을 한다고 가정하면 삼겹살 1인분 1만7000원에 소주‧맥주 1병당 6000원 선을 예상해야한다. 부서 회식비용을 지원받는 ‘부장님’의 카드 한도도 초과되기 일쑤다. 판교 IT회사에 근무하는 40대 부장 강아무개씨는 “저녁 회식 최소화하고 팀원들 점심만 주로 사주는데도 지원비는커녕 개인 돈을 쓰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이 운영하는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올해 2월 서울 기준 대표 외식품목 8개의 평균 가격은 1년 전보다 10.8% 올랐다. 1년 사이 16.5% 뛴 자장면을 비롯해 삼겹살(12.1%), 삼계탕(11.1%), 김밥(10.4%)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와 함께 비빔밥(8.7%), 냉면(7.3%), 김치찌개(7.5%) 등도 모두 상승세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4% 초반대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폭으로 둔화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 연합뉴스
지난달 물가 상승률이 4% 초반대로 1년 만에 가장 낮은 폭으로 둔화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시민들 ⓒ 연합뉴스

고물가에 지갑 닫는 직장인

사정이 이런 터라, 직장인들 사이에선 “지갑 열기 무섭다”는 반응이 나온다. 온라인상에서 ‘무지출 챌린지’가 유행하는 배경이다. 특정 기간 동안 돈을 쓰지 않고 생활해보려는 움직임이다. 집에서 도시락을 싸오거나, 포장 할인을 받아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나눠 먹는 것도 지갑 사정을 고려한 행동이다. 이날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컵라면을 2600원에 사서 먹었다는 김희주씨는 “재택을 할 수 있는 날엔 식비를 최대한 아끼려고 한다. 무지출 챌린지에 동참 중”이라고 했다.

실제 지갑을 닫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날 여신금융협회 자료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 신용‧체크‧선불카드 등 전체 카드 승인액은 87조5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3.3% 늘었지만, 평균 지출액은 4만3857원으로 2.2% 줄었다. 같은 기간 법인카드 평균 승인액은 12만8106원으로 전년 대비 9.5% 급감했다. 전체 카드 소비는 늘었지만 고물가 영향으로 씀씀이가 줄어들어 평균 지출액이 감소한 것이다.

다만 데이터 상으로 소비자물가는 잡혀가고 있다는 게 당국의 해석이다. 통계청이 4일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0.56으로 1년 전보다 4.2% 올랐다. 상승폭은 지난해 3월(4.1%) 이래 1년 만에 가장 낮았다. 국제유가 하락에 따른 석유류 가격이 큰 폭으로 내려가면서 전체 물가를 끌어내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항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서민이 체감하는 물가의 사정은 정반대다.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3% 올랐다. 지난해 10월(11.4%) 이후 5개월 만에 가장 크게 상승했다. 빵과 스낵과자 등 가공식품 물가 상승세도 9.1%에 달했고 외식 물가 상승률도 7.4%를 기록했다.

이와 관련해 통계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소비자물가 상승 흐름이 둔화하고 있고, 지난해 상반기에 많이 상승한 기저효과를 고려하면 하반기로 갈수록 물가가 안정화될 가능성은 높아 보인다”면서도 “공공요금 인상 요인과 석유류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 서비스 부문의 오름세가 아직 높은 수준을 유지해서 여러 불확실한 요인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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