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 패싱? 尹-민주 강대강 대치 속 타는 국민의힘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5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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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곡관리법 시작으로 ‘野 직회부-尹 거부권 행사’ 반복 조짐
“협상력도 대안 제시도 없어”…與 ‘당정일체’ 딜레마 빠져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김기현 대표 등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3월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신임 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김기현 대표 등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거대 야당의 법안 직회부와 이에 대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협치가 실종돼버린 우리 정치권의 새로운 공식이 될 전망이다. 쟁점 법안을 둘러싸고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사이 핑퐁싸움 속, 대통령과 각을 세우지 않는 의석수 열세의 집권여당은 그저 무력할 뿐이다. 전당대회 이전부터 내세워 온 ‘당정일체’ 기조가 되레 국민의힘의 입지를 날로 좁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전날 윤 대통령은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첫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앞서 여야 합의 없이 일방 처리된 법안에 대해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데 따른 결정이다. 민주당은 즉각 “입법권 침해”라며 재표결, 대체 입법 추진 등 다양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문제는 양곡관리법이 시작일 뿐이란 것이다. 민주당은 간호법, 의료법, 방송법 등도 양곡관리법과 같은 방식으로 처리를 예고하고 있다. 여권이 난색을 표하는 노란봉투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 등에 대해서도 직회부 할 방침이다. 이러한 법안 대부분에 대해 윤 대통령 역시 거부권 행사로 막아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용산과의 계속되는 강대강 대치 국면이 민주당으로선 마냥 부정적인 상황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많다. 부정 여론이 우세한 대통령과 입법을 둘러싼 선명한 대결 구도를 만드는 것이 현재로선 실보단 득이 더 많다는 계산이다. 이번처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몇 차례 반복될 경우, 그 자체로 ‘민생 법안’을 외면한 대통령, 삼권분립을 침해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가 강화될 거란 관측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대통령이 가장 먼저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 다른 것도 아닌 ‘양곡관리법’ 아닌가. 직관적으로 봤을 때, 농민들의 생계가 걸린 민생법안을 대통령이 거부한 것이다. 총선까지 농심(農心)은 물론이고 여론의 반감이 상당히 크게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정부‧여당이 우세를 점하려면 이번 거부에 대한 반짝거리는 대안을 내놓아야 할 텐데 지금 모습을 봤을 땐 그저 반대를 위한 반대로 보이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양곡관리법 거부와 관련해 여당은 쌀값 안정화를 위한 마땅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당내 ‘민생119’를 이끌고 있는 조수진 최고위원은 이날 KBS 라디오에 출연해, 양곡관리법의 대안으로 ‘밥 한 공기 다 먹기 운동’을 언급해 당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민주당은 총선까지 윤 대통령과의 일대일 대결 구도를 더욱 선명히 할 전망이다. 전당대회 이후 존재감 고민에 빠져 있는 집권여당 국민의힘으로선 결코 긍정적인 신호가 아니다. 여당이 존재감을 살리기 위해선 대통령실과 각을 세워 차별화를 꾀하거나, 야당을 향해 협상력을 발휘하는 방안이 있는데 현재로선 어느 쪽에도 분명히 서기 어려운 상황이란 지적이다.

이번 양곡관리법 사태에서도 국민의힘이 가장 먼저 보인 모습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하는 것이었다. 협상 과정에서 김진표 국회의장이 여야에 두 차례 중재안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여당은 ‘전면 거부’로 일관했다.

협상의 시도 없이 대통령 거부권으로 직행하는 모습에 대해선 여권 내에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원외 비주류 인사는 “법 자체에 대해 당연히 반대할 순 있다. 하지만 반대의 과정에서 입법부를 이끄는 집권여당으로서,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으로서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용산 대통령실과 여당이 수평적 관계로 보겠는가”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지도부가 정말 원했던 ‘당정일체’가 바로 이런 모습이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정부‧여당의 ‘역시너지’…“총선 다가오면 용산과 거리 둘 수도”

양곡관리법 이전에도 국민의힘은 몇 차례 대통령실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 왔다. 지난해 10‧29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의 조사 대상을 정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실의 불편한 의중을 파악한 주호영 원내대표가 합의 하루 만에 제동을 건 바 있다. 그보다 앞서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 논의 당시 권성동 원내대표의 합의 번복 사태도 있었다. 최근 ‘주69시간’ 개편안 사태에서도 여당의 메시지가 대통령실의 기조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줘 여론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정부와 여당이 한 몸처럼 움직여 국정의 시너지를 발휘하겠다는 취지의 ‘당정일체’가 날이 갈수록 여당의 입지와 존재감을 좁히는 딜레마를 낳고 있단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오히려 지지율 하락세를 동시에 맞는 ‘역시너지’가 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지속될 경우, 총선이 다가올수록 용산과 거리를 두려는 당내 목소리에 점차 힘이 실릴 거란 전망도 나온다. 여권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여당은 직접 총선을 뛰어 반드시 승리를 해야 한다.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느끼는 위기의식의 온도가 클 수밖에 없다”며 “이러한 위기의식이 커지다보면 용산을 향해 쓴소리를 하며 차별화를 하려는 당내 인사들이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조심스레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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