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대처하는 튀르키예 자세에서 배워야 할 것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08 12:05
  • 호수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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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명 이상 사망자 기록한 지진 이어 쌍둥이 적자까지
5월 대선 의식한 근시한적인 정부 대책으로 반발 키워

몇 년째 높은 인플레이션과 경상수지 적자로 어려움을 겪어온 튀르키예 경제가 오는 5월 치러질 대통령선거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2월 튀르키예 남부를 강타해 5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기록한 지진은 민심 이반에 직면한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에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진 이후 실시된 두 번의 여론조사에서도 에르도안 대통령은 야당의 공동 대통령 후보인 케말 킬리다로글루에게 4~10%포인트 이상 뒤지고 있다. 일방적인 여론 통제와 국가기관 동원에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는 점은 튀르키예 경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연합뉴스
높은 인플레이션과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로 어려움을 겪어온 튀르키예 경제가 5월 치러질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진으로 폐쇄된 튀르키예의 한 전통시장 ⓒ연합뉴스

에르도안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4~10% 뒤져

물론 튀르키예 현지를 방문한 사람들은 경제위기 상황을 잘 느끼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식당을 비롯한 상업 공간은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겉모습 이면에는 심각한 인플레이션이 자리 잡고 있다. 통화가치 급락으로 보유 현금을 저축 또는 투자하는 것보다 바로 써버리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을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튀르키예의 인플레이션은 지난해 말 85%에서 지난달 55%로 둔화됐다. 인플레이션은 약화됐지만 여전히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경기 활황 모습은 수출보다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려는 지속 불가능한 소비 급증 덕분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3월23일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8.5%로 동결했는데,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튀르키예의 대출 비용은 세계 어느 곳보다 저렴한 상황이다.

올해 튀르키예 경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기록적인 경상수지 적자다. 지난 1월 경상수지 적자는 전년 대비 43% 증가한 98억5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데이터가 처음 수집된 1984년 이후 월간 최고 수준이었다. 원인은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 때문이다. 수출이 수입 증가를 상쇄하지 못하면서 1월 무역적자는 38% 증가한 142억4000만 달러에 이르렀다. 2022년 튀르키예의 수출은 기록적 수준인 2540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수입 역시 3640억 달러로 급증하면서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상수지와 무역수지의 대규모 적자 원인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통화 및 환율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수출을 늘려 경제의 주요 취약점인 터키의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한국이 과거 1970년대 수출 확대를 통해 인위적으로 통화가치를 낮게 유지했던 것과 비슷한 전략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정 기간 동안은 무역수지 적자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출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무역수지가 흑자로 돌아설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입물가가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석유나 가스 등 에너지 비용 상승으로 인해 수입액 자체가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더해 가공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산업구조로 인해 튀르키예는 수출이 잘될수록 더 많은 중간재와 에너지를 수입해야 한다. 통화가치 하락을 통한 수출 확대가 경제성장 및 체질 개선에 미치는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튀르키예는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금리 인상 대신 금리 인하를 택했다. 상식적으로 납득되지 않는 이런 조치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확신 때문에 가능했다. 당연히 정통 경제학자들로 이뤄진 튀르키예 중앙은행은 저항했지만, 에르도안 대통령은 인사권을 통해 반발을 무력화시켜 왔다. 2021년 3월 에르도안 대통령의 이론을 수용한 중앙은행 총재가 임명된 후 기준금리를 10%포인트 이상 인하하면서 리라화 가치는 미국 달러 대비 약 60% 이상 폭락했다.

급격한 통화가치 하락을 멈추기 위해 튀르키예 정부와 중앙은행은 2021년 극단적인 비상조치를 실시했다. 리라화 하락은 2022년 중반 안정세를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다시 리라화가 하락하기 시작하자 튀르키예 금융 당국은 은행 대출에 대한 직접적인 개입과 함께 수십억 달러 상당의 외환을 매각했지만 외환보유고만 대폭 축소됐다. 더 큰 문제는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로 인해 통화가치가 더 하락해야 했지만 이를 인위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오히려 수출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통화 약세로 인한 수출 증가의 호황을 잠시 누렸던 튀르키예 기업들은 이제 리라화의 상대적 고평가로 인한 경쟁력 약화에 직면하고 있다.

튀르키예 중앙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1월 국제수지 가운데 특징적인 것은 12개월 만에 처음으로 출처가 불분명한 자금의 유입을 가리키는 ‘순오류 및 누락’이 기록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계적 오류라고 볼 수 있는 이런 항목은 2022년 경상수지 적자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경상수지 적자로 인한 문제를 상당 부분 완화해 줬다. 하지만 이제는 이마저 끝나가면서 경상수지 적자가 더욱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유례없는 위기와 정부 대응, 韓도 주목해야

일반 국민은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생활비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에르도안 정부 역시 이로 인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방안은 없다. 지난 3개월 동안 튀르키예 정부는 최저임금을 55% 인상했다. 기본연금 역시 두 배 이상 올렸고, 수백만 명의 터키인이 조기 퇴직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장의 어려움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문제를 뒤로 미뤄놓은 것에 불과했다. 에르도안 대통령과 집권당으로서는 경제체질 개선보다는 당장 5월14일 치러질 대통령선거를 위해 경제가 선거 때까지 계속 호황을 누리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는 1차 경선에서 절대 과반 득표자가 없을 경우 5월28일 결선을 치르는 형태다.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느낀 야당들이 결집하고 있으며, 단일 후보를 내세우는 데도 성공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장기인 대중 선동에 의존할 가능성이 높다. 이를 위해 해양 국경을 놓고 긴장관계인 그리스와의 대결 수위를 높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중동의 3대 강국 가운데 하나인 튀르키예의 대통령선거 결과는 중동 정세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그 변화의 핵심에는 경제와 물가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역시 유례없는 대규모 무역수지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선거와 정치가 아닌 장기적인 안목에서 제대로 된 경제정책을 수립·집행하고 있는지 돌이켜볼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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