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심’도 소용없다? ‘꼼수’로 얼룩진 선거제 개편 ‘흑역사’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0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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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문재인, ‘선거제 개편’ 시도했지만 결과는 ‘무산‧개악’
尹대통령, ‘중대선거구제’ 화두 띄웠으나 여야 간 이견 첨예

우리나라에는 몇 명의 국회의원이 필요할까. 지금처럼 1개 지역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게 옳은 방법일까. 비례대표의 수는 더 많아야 할까 혹은 더 적어야 할까. 과연 지금의 선거제도를 2024년 총선에 그대로 적용하는 게 ‘최선의 방법’일까.

이 난제를 풀기 위해 여야 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내년 총선을 만 1년 남겨둔 10일 국회에서는 선거제 개편을 주제로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 ‘소선거구제’에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도 ‘중대선거구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부정적 전망도 제기된다. 지난 국회에서도 선거제도 개편을 시도했지만 각 정당과 현역의원들의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 탓에 개혁이 번번이 무산돼서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1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거제 개편, 노무현‧문재인도 실패

전원위는 300명의 의원이 모두 참여해 특정 주제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다. 2004년 이라크 파병 연장을 논의한 이후 약 19년 만이다. 여야는 이날부터 13일까지 4차례의 전원위 집중토론을 통해 선거제 개편 합의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이들은 앞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마련한 결의안을 중심으로 토론을 벌일 예정이다. 결의안은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소선거구제+권역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 등 3가지 안을 담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중대선거구제 도입 및 비례대표제 확대 여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선거구제 개편이 정치권 화두에 오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선거구제 개편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지역구도 타파를 위해선 선거구제 개편이 필수적이라고 봤다. 쉽게 말해 TK(대구‧경북)에서도 민주당 의원이 당선되고, 전라도 광주에서 국민의힘 의원이 당선될 수 있는 선거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당선 직후였던 2002년 12월23일 “2004년 총선에서 중대선거구제로 지역 편중성이 극복됐을 때 과반수 의석을 획득한 정당 또는 과반수 연합에 총리를 넘기겠다는 약속은 여전히 지켜야 한다”며 강조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의 포부와 달리 선거구제 개편은 시작과 동시에 난관에 봉착했다. 여야 모두 ‘텃밭표 잠식’을 우려하며 선거구제 개편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다. 이런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우군’으로 분류됐던 민주노동당도 “중대선거구제는 일본에서도 고비용정치의 주범으로 폐기된 제도”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2005년 대연정까지 제안하며 막판 설득에 나섰지만 선거구제 개편 공약은 결국 무산됐다.

이후 선거구제 개편은 박근혜 정부에서 다시 한 번 화두에 오른다. 2014년 10월 헌법재판소가 ‘선거구 간 인구편차를 2대 1 이하로 줄여야 한다’며 공직선거법의 헌법불합치를 결정하면서다. 이후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석패율제 도입’이 대안으로 거론됐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누고 인구 비례에 따라 의석수를 배정한 뒤 그 의석을 정당득표율에 따라 나누자는 안이다. 석패율제는 지역구에서 아깝게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구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이 거세게 반대했다. 논란 끝에 여야는 2016년 2월 기존 선거제도를 유지한 채 비례대표 의석수를 줄여 지역구 의석수를 7석 늘리는(지역구 246석→253석, 비례대표 54석→47석) 안에 합의했다. ‘비례대표제 확대’를 두고 시작된 논의가 ‘비례대표제 축소’라는 전혀 다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제시했지만, 되레 ‘선거구제 개악’으로 이어졌다는 혹평이 나온다. 선거법 개정에 반대했던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비례대표 전용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창당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시키면서다. 여기에 민주당도 대응한다는 명분으로 위성정당인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정당득표율에 따른 비례성을 기대했던 정의당이 입법 취지를 무력화하는 ‘꼼수’라며 강하게 반발했지만, 이미 선거법 개혁이 이뤄진 뒤였다. 

ⓒ시사저널 양선영
ⓒ시사저널 양선영

여야 ‘변화’ 공감대…이번에는 다를까

과연 이번에는 여야 모두가 공감하는 선거구제 개편에 성공할 수 있을까. 전망은 낙관적이지 않다. 선거제도 개편의 유불리를 놓고 여야 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일례로 국민의힘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부작용을 확인한 만큼 병립형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민주당은 위성정당 등 폐해를 바로잡는 개선을 통해 준연동제를 유지하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여기에 같은 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입장이 갈린다. 민주당 한 원내관계자는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당론이 없는 이유는 그만큼 다양한 의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며 “다만 현 선거구제에 문제가 있다는 인식은 여야 모두가 갖고 있다. 전원위를 통해 그 대안을 찾길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최선의 선거구제’에 대한 의견은 엇갈리는 모습이다. 다만 거대 양당의 기득권을 깨야만 더 나은 국회가 될 것이란 주장에는 이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교수는 “선거 방식에 따라 여야가 서로 유리한 조합을 만들고 불리한 조합을 빼려고 할 것”이라며 “정당 간 경쟁 체제가 온전히 자리 잡으려면 ‘다당 체제 구축’에 개혁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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