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식량 가격 떨어지는데 장바구니 물가는 왜 안 내리나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8 11:05
  • 호수 17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격 내리는 데 소극적인 기업이 일차적인 문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가격 오르는 ‘킹의 법칙’도 원인

한 끼에 8000원 하던 백반집이 있었다. 작년 말 9000원으로 올랐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지난 3월부터는 1만원이다. 가격표는 매직펜으로 덧칠을 해놓았다. 여차하면 또 바꿀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지난해 국제 곡물 가격의 급등으로 촉발된 식품 가격의 상승이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서울 지역의 짜장면, 김치찌개, 비빔밥 등 8대 외식 상품 가격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1년 전보다 평균 10.4% 올랐다. 5.1%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던 지난해에도 식품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6.9% 올랐는데, 2005년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상승률이었다.

ⓒ연합뉴스
우크리아나 전쟁 발발 직후 최고치를 기록했던 세계식량가격지수가 최근 12개월 연속 하락했지만, 식품 가격에는 전혀 반영되지 않아 배경이 주목된다. 사진은 서울의 한 마트에서 장을 보는 소비자 ⓒ연합뉴스

세계식량가격지수 12개월째 하락 중

오르기만 하던 식품 물가가 이제 조금 가라앉을 수 있을까.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발표한 지난달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6.9로 2월의 129.7보다 2.1% 하락했다. 품목별로는 곡물과 유지류 가격이 많이 내렸다. 육류와 설탕 가격은 올랐지만, 가격 상승 폭이 크진 않았다. 세계식량가격지수는 2014부터 2016년까지의 평균 가격을 100으로 해서 나타낸 수치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직후인 지난해 3월 159.7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12개월째 하락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애그플레이션’은 급격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주된 원인이 돼 물가를 올려놓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곡물 가격이 오르면 당연히 식품값은 오른다. 곡물이 주원료인 사료 가격 상승은 축산물 생산비용 증가로 이어져 육류와 달걀, 유제품 등 축산제품 가격 상승을 압박한다. 요식업에도 원가 부담을 늘리는 것은 물론이다. 지난해부터 많은 식품기업이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는 이유로 가격을 인상했다. 가공식품에서 원재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체로 40∼60% 수준이다. 품목별로 원재료비 비중을 보면 식용유 60%, 오렌지주스 59%, 제빵 51%, 가공유 50% 수준이고 라면 49%, 육가공 제품 45% 정도다. 과자류와 청량음료, 빙과류 등도 40% 수준이다. 거의 모든 원재료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우리나라다. 국제 가격이 안정되고 있다는 건 확실히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계 식량 가격이 하락했다고 국내 식품 물가까지 떨어지기를 바라기는 어렵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가격을 내리는 데는 언제나 소극적인 기업의 문제가 있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식품기업은 가격을 올려야 할 때는 빠르지만 내려야 할 때는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는다. 과거의 예를 보면 원자재 가격과 무관하게 가격을 올린 사례도 적지 않다. 치킨값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닭고기 가격은 줄곧 오르기만 했던 게 아니다. 치킨 프랜차이즈 업체들이 주로 사용하는 닭고기(생닭) 9~10호 연평균 시세는 2015년 3297원에서 2020년에는 2865원까지 내렸지만, 치킨 가격이 내렸던 적은 없다. 라면 원재료인 밀가루와 팜유의 수입가격은 2012년부터 2019년까지 하락했지만, 라면값이 떨어진 적도 없다. 농촌경제연구원이 분석한 결과를 보면 원자재 가격이 오를 때는 국내 물가에 바로 반영되지만 반대로 하락할 때는 통계학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이 나타난 적이 없다고 한다. 

물론 내리지 않는 식품 물가가 모두 기업의 탐욕 때문이라고만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시장의 구조를 생각해 보자. 우선 원자재 가격이 제품 시장에 반영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세계식량가격지수가 내려간다고 해서 당장 가격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하락한 가격에 맞춰 새로 계약한 원재료는 이전에 구매하기로 한 물량을 다 소화한 다음에 써야 한다. 새로 계약한 원재료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많은 기업이 현재 한창 비쌀 때 들여온 물품에 대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 흔히 원자재 가격 변동이 제품 시장에 반영되는 데는 3~6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따지고 보면 원재료 가격이 크게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저 작년과 비교해 내린 것뿐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식용 곡물 수입단가지수(CIF·원화 기준)는 167.8로 지난해 4분기 193.7보다는 많이 하락했지만, 고물가 국면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21년 1분기 지수였던 100.6과 비교하면 무려 66%나 높다. 올 2분기 식용 곡물 수입단가지수도 163.7 정도로 전망되고 있다. 고환율 상황도 원가 부담을 높이는 이유다. 달러로 계산하면 곡물 가격이 하락했다고 해도 우리 돈으로 계산하면 별로 내린 것이 아니다.

인건비와 물류비, 전기와 가스요금 등 다른 생산비용이 크게 올랐다는 점도 영향을 미친다. 유가 상승 탓에 국제 해상운임이 올라도 원가 부담은 늘어난다. 전기나 가스요금은 앞으로도 더 오를 것이고 교통요금을 비롯한 다른 공공요금 인상도 기다리고 있다. 제품 가격 인상의 이유는 원자재 가격만이 아니라 인건비와 물류비, 각종 공공요금까지 모두 오른 탓이기도 하다. 더구나 외식비는 원자재보다는 임대료와 인건비를 비롯한 다른 부분의 영향이 더 크다. 음식점은 원가에서 식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잘해야 30%에서 40%라고 한다.

 

식품 가격의 상승 추세는 계속될 전망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문제도 있다. 식량시장은 구조적으로 수급 불안 요인을 가지고 있다. 수요는 언제나 일정한데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이유는 너무 많다. 가뭄이나 이상고온 현상은 여차하면 가격 불안으로 이어지고 국제 곡물시장의 투기자금이 벌이는 장난도 있다. 농산물은 대표적인 ‘비탄력적’ 상품이다. 비탄력적 상품은 수요가 공급을 조금만 초과해도 가격이 매우 가파르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17세기 영국의 통계학자인 그레고리 킹(Gregory King)은 곡물 수확량이 수요와 비교해 10% 부족하면 가격은 30% 상승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곡물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면 곡물 가격은 산술급수적으로 오르는 게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는 ‘킹의 법칙(King’s Law)’ 때문이다. 잠시 하락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확신하기 힘든데 원재료 가격의 시세를 바로 반영하기는 어렵다.

식품 가격의 상승 추세는 여전하다. 지난 3월 전년 대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4.2%로 조금 낮아졌지만, 품목별로 보면 채소류 13.8%, 가공식품은 9.1% 오르며 먹거리는 여전히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외식비 상승률도 7.4%로 2월의 7.5%와 큰 차이가 없다. 상황에 큰 변화가 없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 식량 가격 하락의 효과가 시장에도 차츰 나타날 것이다. 하지만 많이 기대하기는 어렵다. 1만원으로 값을 올린 백반집이 더 올리지만 않아도 다행이겠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