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증가하는 불법촬영 범죄, 무엇이 문제일까 [김동진의 다른 시선]
  •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6 16:05
  • 호수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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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교육 필요해
당연시되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해야

지난해 6월 아주대 의과대학 건물의 탈의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학생들의 탈의 장면을 불법촬영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성 의대생이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피고인이 주장한 학업 스트레스와 우울증, 그리고 초범인 점 등이 집행유예 판결에 반영되었다. 또 지난해 7월 연세대 여자화장실에 몰래 숨어들어가 4일간 32차례에 걸쳐 옆칸 여학생들을 불법촬영한 전 연세대 의대생 역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기도 했다. 비단 의대생만의 문제인 게 아니라, 여성에 대한 불법촬영 사건은 최근 점점 증가하고 있다. 

최근 불법촬영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한 숙박업소에서 몰카 탐지를 하는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최근 불법촬영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은 경찰이 한 숙박업소에서 몰카 탐지를 하는 모습 ⓒ시사저널 박정훈

불법촬영 범죄, 하루 15건씩 매일 발생

텔레그램 n번방 성착취 사건이 한창 보도되고, 불법촬영물 및 불법 성착취물 관련 이슈가 사회를 뜨겁게 달구던 즈음이니 이미 몇 년 전의 일이다. 그때 강의실에서 만난 여자 대학생들이 필자에게 한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어떤 건물의 공중화장실에 들어가면 휴대폰 와이파이를 켜보라는 것이다. 휴대폰에 뜨는 와이파이망에 알파벳과 숫자가 이상하게 혼합된 긴 이름의 와이파이망이 혹시 뜬다면, 그 망은 십중팔구 그 화장실에 있는 불법촬영 카메라로부터 영상을 전송하는 망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당장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집을 나서면 어디든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매 순간 긴장하고 불안해하며, 여대생들은 그렇게 살고 있었다. 대학입시를 위해 매진하던 중·고등학생 시절을 보내다 이제 대학에 입학했으니 가장 즐겁고 행복할 거라고 여겨지는 대학생 시절인데, 여학생은 남학생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듯했다. 

앞서 언급한 의대생의 불법촬영 사건이 보도된 4월6일부터 거슬러 올라가 약 4주간 불법촬영 사건을 보도한 뉴스기사를 찾아보니, 일주일 평균 3~6건의 불법촬영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었다. 4주간 보도된 약 20건의 불법촬영 사건 중 남성이 남성화장실에서 불법촬영한 1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남성이 여성을 불법촬영한 건이었다. 불법촬영 장소는 대학교 여자화장실, 병원 탈의실, 지하철역, 건강검진센터 탈의실, 한의원 여자화장실, 미용실 여자화장실, 고등학교 교내 등 다양했다.

또한 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집계된 불법촬영 범죄 건수는 총 2만8049건으로 연평균 5610건 정도 된다. 그렇다면 전국에서 하루에 대략 15건의 불법촬영 사건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인 불법촬영 장소들을 보면 도대체 여성이 집을 나서 학교든 직장이든 병원이든 안전하게 다녀올 곳이란 없는 것 같아 막막해 보인다. 

이렇게 여성이 불안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이유, 남성들은 살지 않는 세계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의 몸을 몰래 촬영하는 범죄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불법촬영이라는 구체적인 범죄에서 범위를 더 확장해 그야말로 여성이 살아가는 세계를 살펴본다면, 여성은 온갖 종류의 성범죄뿐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차별과 일상적으로 마주하며 살아가야 함을 알 수 있다. 캐나다에서 오랫동안 사회 정의를 가르쳐온 두 명의 대학 교수 오슬렘 센소이(Özlem Sensoy)와 로빈 디앤젤로(Robin DiAngelo)는 《정말로 누구나 평등할까》(2016, 착한책가게)라는 책에서 차별과 억압의 구조를 편견과 고정관념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마주하는 고정관념·편견·차별

사회화란 이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들에게 기존 사회의 전통적인 가치관과 문화를 학습하게 해서 해당 사회에서 잘 적응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가 속한 사회의 사회화 과정을 거쳐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기에, 사회화 과정 안에 내장돼 있는 고정관념을 누구나 갖고 있다. 예컨대 ‘여성이라면 날씬한 몸을 가져야 예쁘다’고 여기는 것은 어린 시절부터 날씬한 몸매와 진한 화장을 한 여성 연예인을 미디어에서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의식중에 갖고 있는 고정관념일 수 있다. 

이 고정관념에 가치판단을 더하면 그것이 편견이 된다고 저자들은 설명한다. 즉, ‘여성인데 날씬하지 않다니, 그런 여성은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편견이다. 이 편견에 무엇이든 아주 작은 것이라도 행동을 더하면 그것이 곧 차별이 된다. 예컨대 살이 찐 여성에게 회사 직원들이 ‘○○씨는 다이어트 좀 하지 그래’라고 말한다거나, 명절에 모인 친척들이 ‘아이고, 우리 △△는 왜 그렇게 살이 쪘니, 살 좀 빼야겠네’라고 말하는 것 역시 가치판단이 실린 편견에 ‘행동’을 더한 것이므로 차별이 된다. 이렇듯 차별은 고정관념에 기반한 것이기에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의도와 무관하게 일어나며, 차별에는 무시·회피·조롱·농담·위협·폭력 등이 포함된다.

또한 고정관념에서 편견과 차별에 이르는 이 모든 과정이 제도적인 권력으로 뒷받침된다면 그것이 바로 억압(oppression)이다. 예컨대 어떤 직장에서 여성 직원들의 몸무게 기준을 정해 놓고 해당 몸무게를 초과할 경우 점수를 깎아 인사고과에 반영해 승진에서 제외시킨다면 그것이 바로 억압이라는 것이다. 몸무게까지는 아니겠지만 화장과 복장에 관한 규정을 엄격히 해서 점수를 매기고 승진에 반영하는 관행은 사실 과거에 국내 항공사 승무원 혹은 백화점의 화장품 판매원들에게  공공연히 행해져 오던 일이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우리 모두의 삶을 돌아본다면 일상생활에서 위와 같은 고정관념, 편견, 차별을 우리 모두 마주하며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억압이 특히 남성보다 과중한 것이 사실이지만, 남성 역시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지금까지 자기 자신에게 기대되었던 역할이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면 자기 삶에서 고정관념-편견-차별의 도식에 해당하는 내용을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불법촬영과 같은 범죄가 날로 증가하는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교육이다. 과거에는 교육이 사회화와 동의어로 이해되던 시기도 있었으나, 급변하는 사회에서 교육이 사회화 기능에만 머물러도 되는 시기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교육이란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게 하는 교육이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문화를 그대로 수용하고 좋지 않은 관습까지 재생산하게 하는 그런 교육이 아니라, 자기가 속한 사회와 자신과의 거리를 확보하고 자기가 속한 사회의 가치관을 비판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교육이다. 여기에 페미니즘 관점을 더한 페미니즘 교육이란, 우리 삶의 모든 일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젠더라는 렌즈로 들여다보게 하는 교육이다. 지금까지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온 것들에 대해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무의식중에 학습한 성별 고정관념을 발견하고, 해체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페미니즘 교육이 아닐까.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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