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률만 40대 1…청년들은 왜 ‘반값 아파트’로 몰려갔을까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3.04.18 10:05
  • 호수 1748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00가구 모집에 2만여 명 몰린 고덕강일3단지 주목…인근 전셋값보다 저렴한 분양가에 청년층 호응

서울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경쟁률 40대 1을 기록했다. 토지 소유권이 없고 매월 수십만원의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는 장애물을 뚫고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특히 청년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사전예약 신청자 2만 명 중 8800여 명이 청년으로 절반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했다. 서울 준강남권 입지인 데다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돼 자금 여력이 부족한 청년들이 호응했다는 분석이다. 불안해진 주택시장 상황에 자산 증식보다 안정적인 주거를 원하는 심리가 확대된 점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분양가 3억원대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인 고덕강일지구3단지가 흥행 실패 우려에도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주목된다. 사진은 고덕강일3단지가 들어설 사업 예정지 ⓒ연합뉴스
분양가 3억원대의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인 고덕강일지구3단지가 흥행 실패 우려에도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해 주목된다. 사진은 고덕강일3단지가 들어설 사업 예정지 ⓒ연합뉴스

‘흥행 실패 우려’는 기우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따르면 사전예약을 마무리한 고덕강일지구3단지는 500가구 모집에 1만9966명이 몰려 평균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별공급과 일반공급 경쟁률은 각각 33.1대 1, 67대 1을 기록했다. 최근 민간이 공급하는 단지들이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을 통해 간신히 미분양을 면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고무적인 실적이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공급한 게 주효했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SH가 보유한 토지에 아파트를 지어 건물만 개인에게 분양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분양원가에서 60%를 차지하는 토지 가격이 제외되기 때문에 초기 분양가를 민간이 분양하는 가격의 30~6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이유다.

당초 시장에선 고덕강일3단지의 흥행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토지 임대료’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분양가에 토지 가격이 포함되지 않아 입주자는 공공에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 고덕강일3단지의 추정 토지 임대료는 월 40만원이다. 더구나 임대료가 본청약 시점에 더 오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후분양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청약은 공정이 90%가량 완료되는 2026년 하반기에 이뤄질 예정이다. 분양가 외에도 매달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해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임대주택 아니냐’ ‘반쪽짜리 소유권만 있는 아파트’라는 지적이 일었다.

의무거주 기간이 10년인 데다 추후 주택을 처분할 때 시세차익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도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현행법상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공공 환매 조건이 붙는다. 소유주는 이사 갈 때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만 집을 매각해야 한다. 이때 분양가에 물가상승률·정기예금 이자율을 붙인 가격으로만 팔 수 있다. 주택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세차익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인 셈이다. 이 밖에 건물 소유권만 있어 향후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다는 것도 단점으로 거론됐다.

이미 실패한 정책이란 평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 경기도 군포시 부곡지구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전용면적 84㎡ 임대료가 당초 예상보다 높게(40만원) 책정돼 ‘40만원짜리 월셋집’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미분양률이 80%를 웃돌며 결국 일반분양으로 전환됐다. 이후 2011년 서울 강남과 서초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역시 평균 경쟁률이 각각 평균 3.5대 1, 6.9대 1로 저조한 결과를 낳았다.

각종 우려에도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저렴한 공급가격 덕분이다. 고덕강일3단지 전용 59㎡ 분양가는 3억5500만원(본청약 시점 추정가격)이다. 인근 ‘강동리버스트4단지’ 전용 59㎡가 2월16일 7억5000만원에 실거래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말 그대로 ‘반값’이다. 해당 단지의 전세 최저 호가(4억원)보다도 낮은 금액이다. 반값 아파트에 반응한 건 청년층이다. 청년층은 전체 지원자 중 44%를 차지하며 흥행을 견인했다. 최고 경쟁률도 청년 특별공급에서 나왔다. 청년 특별공급은 75가구 모집에 8871명이 신청하며 경쟁률이 118.3대 1까지 치솟았다. 이번에 새로 도입된 청년 특별공급은 만 19~39세 무주택자, 청약저축 가입 6개월 이상, 6회 이상 납입, 도시근로자 가구원수별 가구당 월평균 소득 140% 이하(449만6958만원)면 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시장에선 현재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서울 모든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위치한 아파트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선 만큼 청년층의 주택 선택 기준이 임대료보단 분양가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평가한다. 서울 준강남권 입지에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이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40년간 거주 이후 재계약을 통해 최장 80년(40+40)까지 살 수 있다. 최근 전세 사기 문제가 불거지고 월셋값이 크게 올랐다는 점도 수요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주택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다 보니 청년층을 중심으로 자산 증식보다는 안정적인 주거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입지 경쟁력이 있는 곳에 작은 금액으로 집을 얻을 수 있는 만큼 현금 여력이 부족한 수요자에게 인기를 끈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SH, 전매제한 완화·시세차익 보장 추진

고덕강일3단지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추가 공급도 예상된다. 실제로 SH는 내년까지 서울 전역에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9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당장 5월에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역과 송정역 사이에 위치한 ‘마곡지구 10-2단지’와 신방화역과 마곡나루역 인근 마곡 2·4단지 북쪽 ‘택시차고지 부지’에서 500가구 안팎의 물량을 사전청약으로 공급한다. 분양가격은 고덕강일3단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여기에 SH는 노원 하계5단지, 상계마들, 마포구 성산 등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을 통해 5년 내 3만 가구를 더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모든 물량을 합하면 5년 내 약 4만 가구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풀린다. 또한 SH는 ‘제2의 고덕강일3단지’를 만들기 위해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의 단점을 보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전매제한 기간을 줄이고 시세차익의 상당 부분을 소유주가 가져갈 수 있도록 법안 개정을 추진 중이다. 개정에 성공한다면 청년층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진형 공동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MD비즈니스학과 교수)는 “전매제한 기간이 완화되고 시세차익이 보장되면 치명적인 단점들이 보완된다고 할 수 있다”며 “입지 경쟁력을 갖춘 곳들은 고덕강일3단지처럼 흥행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