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적반하장’ 태도에 난처해진 尹대통령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3.04.12 1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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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韓정부 기대 달리 ‘언론 플레이‧역사 왜곡’ 논란 반복
관건은 경제?…“日 ‘물 컵 절반’ 채우지 않으면 역풍” 전망도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3월16일 오후 일본 도쿄 긴자의 오므라이스 노포에서 친교의 시간을 함께하며 생맥주로 건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도 이에 걸맞은 행동에 나서야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6일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제징용 문제 해결은 한국 정부가 국익의 관점에서, 국민을 위해 대국적 차원에서 내린 결단”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3월21일 제12회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관계 정상화는 결국 우리 국민에게 새로운 자긍심을 불러 일으킬 것”이라며 야권 일각에서 제기된 ‘한‧일 정상회담은 굴욕 회담’이었단 평가를 반박했다.

과연 윤 대통령의 공언대로 일본 측은 ‘걸맞은 행동’에 나섰을까. 현 시점에서는 물음표가 찍힌다. ‘제3자 변제안’을 앞세운 윤 대통령의 ‘통 큰 양보’에도 일본 측이 되레 ‘독도 영유권 분쟁’에 불을 댕기고, 강제징용 문제는 외면하면서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일 정상회담을 발판 삼아 경제 분야에서 괄목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정부 여당이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온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지난 11일 열린 각의(閣議·국무회의)에서 ‘2023 외교청서’를 보고했다. 일본 정부는 매년 4월에 최근 국제정세와 일본의 외교활동을 기록한 백서인 외교청서를 발표한다.

올해 외교청서는 한‧일이 작년 5월 한국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외교당국 간 의사소통과 한일 정상회담 등을 통해 강제징용 문제 조기 해결을 모색해왔다고 썼다. 문제는 각서에 ‘과거에 대한 사과와 반성’ 내용은 누락한 채 ‘한국 정부의 선제적 조치’의 의의와 배경만 강조했다는 점이다.

일본 외교청서는 “3월6일 한국 정부는 옛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징용 노동자의 일본식 표현) 문제에 관한 자신의 입장(제3자 대위 변제 해법)을 발표했다”고 기술했다. 이어 “(하야시 외무상이) 한국 정부가 발표한 조치는 2018년 대법원 (징용 배상) 판결에 의해 매우 엄중한 상태에 있던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기 위한 것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이번 발표를 계기로 조치의 실행과 함께 한‧일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분야에서 교류가 강력히 확대돼 나갈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외교청서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외교청서에서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도 이어갔다. 외교청서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는 역사적 사실에 비춰봐도 국제법상으로도 명백한 일본 고유의 영토”라며 “한국은 경비대를 상주시키는 등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 없이 다케시마 불법 점거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표현은 2018년 외교청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6년째 유지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우리 외교부는 즉각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고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인 독도에 대한 부당한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며, 이를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외교부는 11일 구마가이 나오키(熊谷直樹) 주한일본대사관 대사대리(총괄공사)를 초치하고 항의했다.

그러나 일본 측의 입장은 완고했다. 일본 정부는 되레 한국 정부의 항의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12일 지지통신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 대변인인 마쓰노 히로카즈(松野博一) 관방장관은 이날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일본 2023년판 외교청서 독도 기술에 관해 항의한 데 대해 “(한국 측에게) 받아들일 수 없다는 취지로 반론(반박)했다”고 밝혔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일 정상회담 후 일본 정부가 전향적이지 않은 ‘모호한 입장’을 되풀이하거나, 기대에 못 미치는 성과가 도출될 경우 정부‧여당에 역풍이 불 수 있단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외교통일위원회 소속의 국민의힘 한 의원은 “한‧일 외교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회담 한 번에 모든 문제가 풀릴 리는 없다”면서도 “어떤 식으로든 국익에 ‘플러스’가 되는 회담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현재 한‧일 외교는 우리 정부가 먼저 컵에 물을 반 채워 넣고, 일본 정부가 마저 반을 따르기를 기대하는 상황”이라며 “윤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체면을 세워준 만큼 일본 정부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 되레 (정상회담 뒤) ‘사과는 없다’ ‘강제동원은 없었다’는 등의 입장만 고수한다면 정부의 ‘외교 완패’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일본 측의 성의있는 조치로 ▲화이트리스트 복원 ▲주요 정부 간 협의체 복원 ▲한·중·일 3국 협의채널 복원 등을 기대하고 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선 차기 총선을 앞두고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경제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내지 못하거나, 역사 왜곡 논란이 계속될 경우 윤석열 정부가 대일 외교 노선을 전면 수정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른바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은 ‘친일 외교’ 논란을 무릅쓰고 한‧일 정상회담을 성사시켰지만, 이후에도 일본 정부의 ‘우향우’가 계속되면서 MB 정부는 코너에 몰렸다. 일본 주요 정치인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고, 독도‧강제징용 문제 관련 망언들이 이어지면서다. 이런 가운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추진했던 이명박 정부는 ‘밀실 추진’이라는 여론의 비판에 직면해 이를 포기했다. 결국 민심은 악화됐고, 2012년 8월10일 이 전 대통령은 독도를 전격 방문했다. 임기 초 대일 외교 노선을 임기 막판에 수정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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